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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삼국지에 관한 글로 블로깅을 하게 되네요. 
사실 제 삼국지 두번째 포스팅에 이미 언급이 되었던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조운, 과연 과장된 장수 인가?” 편에서는 조운의 실제 능력이 어땠을까 하고 적어보았습니다. 
그 글에서는 조운의 능력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말을 몇마디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의 무력 자체를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 (1 : 1000 만 놓고보더라도 대군인 겁니다) 을 상대로 유선을 구했다는 점,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써 황충을 구하고 위장계를 써서 조조를 대패시킨 점등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우, 장비, 마초 그리고 황충보다 (이상 관장마황) 직위가 낮다는 점이나 
조운의 직위인 “순평후” 마저도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늦게 수여되었다는 점을 들어 바로 
조운이 다른 소위 말해 “오호대장” 마저도 못한 장군이라고 이야기들을 하고는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 안목이 높다는 유비가 살아생전에는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은 점을 생각해보면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어떤 사령관보다는 선봉장에 가깝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통솔력이나 군을 이끄는 능력은 관우, 장비, 심지어 마초, 황충보다 못하다는 공식이
설립되고 있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과연 파헤쳐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과연 장군이자 총사령관의 능력으로 볼때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못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먼저 유비의 안목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유비에 안목에 관해서는 마속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장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유비는 죽기전에 제갈량에게 마속에게 중대사를 맡기지 말 것을 명령했는데,
제갈량은 마속을 신뢰했던 터라 그런 유비의 말을 무시하고 가정 전투를 맡겼고
결국에는 가정에서 마속이 대패하는 바람에 촉군의 북벌을 실패하게 되었죠.

그 일로 인해 "유비의 안목은 정확하다" 라는 공식이 서게 된 것이지요. 
그런 유비가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았기에 조운이 장군으로써
실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유비의 안목은 완벽했던 것일까요? 

유비군 내에서 가장 많이 대군을 이끌었던 관우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삼국지연의> 에서는 유비의 의형제이고 정사서도 유비군 제2인자로 여겨지는 관우는
사실 유비의 장수들 모두를 통틀어 가장 많은 패배를 경험한 장군입니다.
형주에서의 관우의 전투를 살펴보면 (유비가 익주로 떠나기 전후 모두다) 승리한 전투가 없거든요.

적벽대전 이후에 관우는 유비의 명령으로 강릉을 탈환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지만,
오히려 문빙에게 격파 당하는 일이 있었고, 지원군으로 이통이 달려오기에 그를 막아보려 했으나,
사실 이통을 저지하는데도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유비가 익주를 점령한 후에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 반환을 요구했고, 
유비가 거부하자 손권이 공격했는데 그 후에 반격을 하려 했으나 감녕과 노숙의 방어에 섣불리
공격을 하지도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비와 손권이 협정을 맺은 후에 관우는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조인의 번성을 치는데,
번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으며 후에는 서황의 지원군에 의해 철저히 격파 당하게 됩니다.
관우가 형주에 있는 동안 거둔 승리는 방덕과 우금이 지원군으로 왔을때 홍수가 일어나서
그들을 붙잡은게 유일한 승리 기록입니다.
이렇게 패배기록이 수두룩 한 관우에게 유비는 큰 군권을 맡긴 것입니다.
이런 유비의 안목이 완벽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왜 조운에게만 "유비의 안목" 을 적용하는지 참 궁금한 점입니다. 
오히려 관우, 장비와 같은 경우에는 더 오랫동안 유비와 함께 했기에
유비가 군권을 더 많이 줬다고 생각을 해볼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조운보다 더 늦게 들어온 마초나 황충의 경우는 어떨까요?
물론 이들은 조운이 맡지 못한 대군을 거느렸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조운보다 더 뛰어난 장군으로써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까?

황충 같은 경우에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살해하는 (일대일이라기 보다는 전장에서) 공을 세우긴 하지만,
그 역시 조운에게 구원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초 역시 한중전에서 장비와 함께 패배해 자신의 부장인 오란을 전쟁에서 잃었던 실적이 있습니다. 
사실 관장마황의 전적을 비교해보면 큰 군대를 맡았다 뿐이지 정작 조운보다 나은 실적을 
보여준 면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장수로써 관장마황이 조운 보다 낫다는 의견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비는 조운에게 큰 군원을 일임하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유비만이 알겠지만 아마 다른 장수들보다 조운이 내부의 일과 집안통솔을 
더 잘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주방에 요리사가 있는데 한 명은 웬만하면 요리를 하지 않고, 
음식재료 체크, 주문 등에 신경쓴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바로 그 한명의 요리사가  다른 네 명보다 요리를 못한다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본다면, 
그 주문, 음식재료 체크 등을 맡은 요리사가 다른 요리사보다 더 그면에서는 능숙하기에
그 면을 맡아서 하는 경우 일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조운은 주로 유비 군의 내부적인 통솔과 관리를 하고는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유비의 가족문제에도 개입을 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미 유비의 부인을 보호하고
모신 관우가 있는데도 조운에게 그 책임이 주로 돌아갔다는 점이지요.  
군주가 자기의 가족을 맡길 정도의 신뢰심이 있다는 건 아주 중하게 쓴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유비가 익주로 참정을 할때 손부인 (손상향) 의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그녀의 시위녀들이 자주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일이 자자했는데 유비는 조운에게 손부인의 감시와 함께
내부적인 일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겨놓았습니다.
그 당시에 관우와 장비가 버젓이 형주에 있었는데도 조운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을 보면 그만큼
조운이 
내부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했고 그 부면으로는 장비, 관우보다 위에 있었기에
조운에게 그 일이 돌아갔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말을 정리해보자면 조운이
큰 군권을 얻지 못한 이유는 굳이 그의 능력부족이라는 것보다,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내부적인 일이나 오늘날로 말하자면 경호대장 및 비서실장으로써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유비는 그 적임자로 조운을 생각했고 조운을 그쪽으로 임명했기에,
굳이 조운이 큰 군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장군으로써 못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추리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실제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실적이 어떠했을까요? 
조운은 큰 군을 다스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군권이 주어졌을때
절대 실패하지 않는 철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안을 항복시킨 장비에 묻히기는 했지만,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삼 군의 지휘장중 하나로써
깔끔하게 익주로 진입을 해서 유비를 도와주었습니다. 

또 이미 언급한 한중전투에서 수십기만 을 가지고 조운은 황충을 구출해내고 거기에 더해
위장계로 
조조를 퇴각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릉전투에서 유비를 쫓아오는 손권군을 상대로 조운은 그들의 진격을 막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반격을까지 해서 손권군을 물려서 휴전상태로 만들어 놓는데도 일을 하기도 했지요. 
유비 생전에도 조운은 군이 주어졌다하면 패배한적이 없는 뛰어난 장군이었습니다. 


 
유비가 죽자 조운은 그제서야 유비에게 군권을 부여받습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유비는 영리하게도 그 상태에서 조운에게
군권을 일임했죠.
세력이 커져가는 제갈량을 견제한 유비의 한 수였다고도 볼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 시점까지는 조운은 전장에서 한차례도 패한적이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후에 북벌에서는 조운이 이끄는 군사가 유일하게 패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바로 기곡에서 조진이 이끄는 대군에 맞서서 조운이 패배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전투에서 조운에게 패전의 책임이 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를,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조운의 패배에 이유에 관해 제갈량이 마속에게 공을 세워주기 위해서 약한 군사들을 
조운과 등지에게 맡기고 자신과 마속이 정예병을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곡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조운은 장군으로써, 그리고 군의 총사령관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어렵다는 퇴각에서 “퇴각의 귀신” 이라고 불리는 제갈량마저도
깜짝 놀라게 한 
깔끔한 퇴각을 보여준 것이지요. 

추격군의 선봉장들의 목숨을 앗았을 뿐만 아니라 군량물자를 하나 잃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퇴각했다는 점을 보면 조운이 장군이자 총사령관으로써의
능력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장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고, 심지어 패배해서 퇴각하는데도 한치의
오차와 실수없이 깔끔하게
퇴각하는 장군이었던 조운이 굳이 군을 통솔하는 능력이
관장마황보다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촉의 장수들을 언급할때 흔히 촉나라 장수들은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촉의 장수들 중에 특히 관우가 가장 부풀려졌다는 건 파헤쳐보면 맞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제갈량과 조운 같은 경우에는 파보면 파볼수록 소설과 가까웠던 사람 내지 소설보다
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운 같은 경우는 소설과 정사가 거의 겹치는 사람입니다.
단 연의에서 유비를 만나기 전의 인생이 조금 더 미화되었다는 점 (국의를 한칼에 죽인점이나,
문추와 대등하게 싸웠다는 점이나) 이 조운을 과대평가 장수로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삼국지 시대에 가장 실수가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가 바로 조운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더 잘 알 수 있는 부면이지요.

이런 조운을 삼국지 시대에 가장 완벽한 장수 라고 부르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과장이 아깝지 않은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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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삼국지에 관한 글로 블로깅을 하게 되네요. 
사실 제 삼국지 두번째 포스팅에 이미 언급이 되었던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조운, 과연 과장된 장수 인가?” 편에서는 조운의 실제 능력이 어땠을까 하고 적어보았습니다. 
그 글에서는 조운의 능력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말을 몇마디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의 무력 자체를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 (1 : 1000 만 놓고보더라도 대군인 겁니다) 을 상대로 유선을 구했다는 점,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써 황충을 구하고 위장계를 써서 조조를 대패시킨 점등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우, 장비, 마초 그리고 황충보다 (이상 관장마황) 직위가 낮다는 점이나 
조운의 직위인 “순평후” 마저도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늦게 수여되었다는 점을 들어 바로 
조운이 다른 소위 말해 “오호대장” 마저도 못한 장군이라고 이야기들을 하고는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 안목이 높다는 유비가 살아생전에는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은 점을 생각해보면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어떤 사령관보다는 선봉장에 가깝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통솔력이나 군을 이끄는 능력은 관우, 장비, 심지어 마초, 황충보다 못하다는 공식이
설립되고 있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과연 파헤쳐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과연 장군이자 총사령관의 능력으로 볼때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못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먼저 유비의 안목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유비에 안목에 관해서는 마속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장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유비는 죽기전에 제갈량에게 마속에게 중대사를 맡기지 말 것을 명령했는데,
제갈량은 마속을 신뢰했던 터라 그런 유비의 말을 무시하고 가정 전투를 맡겼고
결국에는 가정에서 마속이 대패하는 바람에 촉군의 북벌을 실패하게 되었죠.

그 일로 인해 "유비의 안목은 정확하다" 라는 공식이 서게 된 것이지요. 
그런 유비가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았기에 조운이 장군으로써
실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유비의 안목은 완벽했던 것일까요? 

유비군 내에서 가장 많이 대군을 이끌었던 관우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삼국지연의> 에서는 유비의 의형제이고 정사서도 유비군 제2인자로 여겨지는 관우는
사실 유비의 장수들 모두를 통틀어 가장 많은 패배를 경험한 장군입니다.
형주에서의 관우의 전투를 살펴보면 (유비가 익주로 떠나기 전후 모두다) 승리한 전투가 없거든요.

적벽대전 이후에 관우는 유비의 명령으로 강릉을 탈환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지만,
오히려 문빙에게 격파 당하는 일이 있었고, 지원군으로 이통이 달려오기에 그를 막아보려 했으나,
사실 이통을 저지하는데도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유비가 익주를 점령한 후에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 반환을 요구했고, 
유비가 거부하자 손권이 공격했는데 그 후에 반격을 하려 했으나 감녕과 노숙의 방어에 섣불리
공격을 하지도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비와 손권이 협정을 맺은 후에 관우는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조인의 번성을 치는데,
번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으며 후에는 서황의 지원군에 의해 철저히 격파 당하게 됩니다.
관우가 형주에 있는 동안 거둔 승리는 방덕과 우금이 지원군으로 왔을때 홍수가 일어나서
그들을 붙잡은게 유일한 승리 기록입니다.
이렇게 패배기록이 수두룩 한 관우에게 유비는 큰 군권을 맡긴 것입니다.
이런 유비의 안목이 완벽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왜 조운에게만 "유비의 안목" 을 적용하는지 참 궁금한 점입니다. 
오히려 관우, 장비와 같은 경우에는 더 오랫동안 유비와 함께 했기에
유비가 군권을 더 많이 줬다고 생각을 해볼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조운보다 더 늦게 들어온 마초나 황충의 경우는 어떨까요?
물론 이들은 조운이 맡지 못한 대군을 거느렸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조운보다 더 뛰어난 장군으로써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까?

황충 같은 경우에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살해하는 (일대일이라기 보다는 전장에서) 공을 세우긴 하지만,
그 역시 조운에게 구원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초 역시 한중전에서 장비와 함께 패배해 자신의 부장인 오란을 전쟁에서 잃었던 실적이 있습니다. 
사실 관장마황의 전적을 비교해보면 큰 군대를 맡았다 뿐이지 정작 조운보다 나은 실적을 
보여준 면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장수로써 관장마황이 조운 보다 낫다는 의견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비는 조운에게 큰 군원을 일임하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유비만이 알겠지만 아마 다른 장수들보다 조운이 내부의 일과 집안통솔을 
더 잘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주방에 요리사가 있는데 한 명은 웬만하면 요리를 하지 않고, 
음식재료 체크, 주문 등에 신경쓴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바로 그 한명의 요리사가  다른 네 명보다 요리를 못한다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본다면, 
그 주문, 음식재료 체크 등을 맡은 요리사가 다른 요리사보다 더 그면에서는 능숙하기에
그 면을 맡아서 하는 경우 일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조운은 주로 유비 군의 내부적인 통솔과 관리를 하고는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유비의 가족문제에도 개입을 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미 유비의 부인을 보호하고
모신 관우가 있는데도 조운에게 그 책임이 주로 돌아갔다는 점이지요.  
군주가 자기의 가족을 맡길 정도의 신뢰심이 있다는 건 아주 중하게 쓴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유비가 익주로 참정을 할때 손부인 (손상향) 의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그녀의 시위녀들이 자주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일이 자자했는데 유비는 조운에게 손부인의 감시와 함께
내부적인 일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겨놓았습니다.
그 당시에 관우와 장비가 버젓이 형주에 있었는데도 조운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을 보면 그만큼
조운이 
내부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했고 그 부면으로는 장비, 관우보다 위에 있었기에
조운에게 그 일이 돌아갔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말을 정리해보자면 조운이
큰 군권을 얻지 못한 이유는 굳이 그의 능력부족이라는 것보다,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내부적인 일이나 오늘날로 말하자면 경호대장 및 비서실장으로써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유비는 그 적임자로 조운을 생각했고 조운을 그쪽으로 임명했기에,
굳이 조운이 큰 군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장군으로써 못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추리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실제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실적이 어떠했을까요? 
조운은 큰 군을 다스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군권이 주어졌을때
절대 실패하지 않는 철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안을 항복시킨 장비에 묻히기는 했지만,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삼 군의 지휘장중 하나로써
깔끔하게 익주로 진입을 해서 유비를 도와주었습니다. 

또 이미 언급한 한중전투에서 수십기만 을 가지고 조운은 황충을 구출해내고 거기에 더해
위장계로 
조조를 퇴각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릉전투에서 유비를 쫓아오는 손권군을 상대로 조운은 그들의 진격을 막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반격을까지 해서 손권군을 물려서 휴전상태로 만들어 놓는데도 일을 하기도 했지요. 
유비 생전에도 조운은 군이 주어졌다하면 패배한적이 없는 뛰어난 장군이었습니다. 


 
유비가 죽자 조운은 그제서야 유비에게 군권을 부여받습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유비는 영리하게도 그 상태에서 조운에게
군권을 일임했죠.
세력이 커져가는 제갈량을 견제한 유비의 한 수였다고도 볼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 시점까지는 조운은 전장에서 한차례도 패한적이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후에 북벌에서는 조운이 이끄는 군사가 유일하게 패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바로 기곡에서 조진이 이끄는 대군에 맞서서 조운이 패배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전투에서 조운에게 패전의 책임이 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를,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조운의 패배에 이유에 관해 제갈량이 마속에게 공을 세워주기 위해서 약한 군사들을 
조운과 등지에게 맡기고 자신과 마속이 정예병을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곡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조운은 장군으로써, 그리고 군의 총사령관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어렵다는 퇴각에서 “퇴각의 귀신” 이라고 불리는 제갈량마저도
깜짝 놀라게 한 
깔끔한 퇴각을 보여준 것이지요. 

추격군의 선봉장들의 목숨을 앗았을 뿐만 아니라 군량물자를 하나 잃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퇴각했다는 점을 보면 조운이 장군이자 총사령관으로써의
능력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장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고, 심지어 패배해서 퇴각하는데도 한치의
오차와 실수없이 깔끔하게
퇴각하는 장군이었던 조운이 굳이 군을 통솔하는 능력이
관장마황보다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촉의 장수들을 언급할때 흔히 촉나라 장수들은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촉의 장수들 중에 특히 관우가 가장 부풀려졌다는 건 파헤쳐보면 맞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제갈량과 조운 같은 경우에는 파보면 파볼수록 소설과 가까웠던 사람 내지 소설보다
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운 같은 경우는 소설과 정사가 거의 겹치는 사람입니다.
단 연의에서 유비를 만나기 전의 인생이 조금 더 미화되었다는 점 (국의를 한칼에 죽인점이나,
문추와 대등하게 싸웠다는 점이나) 이 조운을 과대평가 장수로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삼국지 시대에 가장 실수가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가 바로 조운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더 잘 알 수 있는 부면이지요.

이런 조운을 삼국지 시대에 가장 완벽한 장수 라고 부르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과장이 아깝지 않은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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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는 블로그에 저는 단지 "연예블로그" 에서 탈피해서 좋아하는 주제인 삼국지와
여러 스포츠 포스팅도 도전해보기로 약속드린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스포츠는 손도 못댔지만 삼국지 포스팅은 어느정도 시작을 했어요.
뭐... 반응이 뜨거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적고 싶은 글을 적고 일부 공유도 같이 하고 있기에
즐거운 포스팅들이 될 것 같네요..

오늘은 최근에 즐겨본 2010년판 신삼국지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는 최근에 2012년에 여러번 방송하기도 했고 가장 최근 방송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를 대상으로 두 가지 TV 시리즈가 나왔는데 1994년도에 왕부림 감독이 제작한
삼국지 (삼국연의) 가 있고 2010년에 가오시시 감독이 제작한 2010년이 삼국지가 (삼국) 있습니다.
두 시리즈 다 본 사람으로써 둘 시리즈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1994년은 소설 "삼국지" 자체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큰 줄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도원결의, 호로관 전투 (유비 삼형제 vs 여포), 관도대전, 적벽대전,
제갈량의 남만정벌 등의 모든 스토리들을 구성을 했었지요.
인물 자체보다는 주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삼국지연의가 그랬듯이
주로 유비와 제갈량의 촉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반면에 2010년 삼국지는 (삼국) 은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개개인의 캐릭터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아마 예산에도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것때문에 제갈량의 남만정벌이 통채로
날라가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보통의 삼국지 작품들과는 달리 흥미롭게 주 초점이 위나라와 사마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소설이 아닌 역사 삼국지정사 에서의 주인공은 진나라와 (사마씨) 위나라 (조씨)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조와 사마의가 아주 구체적으로 잘 그려져 있으며 다소 위치가 어정쩡했던
조비의 캐릭터도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입니다.
대체적으로 동양 역사에서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많이 적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삼국지에는 사실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어느정도 등장합니다. 
일단 연환계로 너무 유명한 초선이 있구요, 유비와의 결혼으로 유명한 손상향,
유비의 형주 출입을 막았던 채부인 등이 있습니다.

2010년 삼국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을 아무나에게 주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존 삼국지 작품들보다 상당히 많이 부각되고 별 의미 없어보이는 캐스팅이 아닌
많은 경쟁을 했던 캐스팅이 많거든요.
특히 손상향의 캐릭터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그 캐릭터를 놓고 한명이 먼저 캐스팅되었다가
바뀌기도 하고 주문이 많이 들어온 캐릭터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를 보고 흥미롭게 보았던 여성 인물들을 열거해보려고 합니다.
긴 포스팅이니 천천히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나마 여배우들의 얼굴이 많아서 천천히 읽는데 도움은 될지 모르겠네요.



1) 초선 (진호 / Chen Hao)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들중 가장 인기많고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가 바로 초선입니다.
삼국연의의 캐릭터를 따라서 연환계를 성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탁의 죽음 이후 초선의 생사에 대해서 참 논란들이 많은데, 1994년도 판에서는
연환계 성공후에 바로 자결을 한 것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보통 조조전 같은 게임에서는 여포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아 조조를 섬기지요.
이 버전에서는 여포가 죽은 후에 그 사신 앞에서 자결을 합니다.



2) 동귀비 (백회/ Bai Hui)


동승의 딸로써 황제의 뜻을 따라 유비를 궁으로 불러서 황제와 알현하게 합니다.
이 계기로 조조 암살 사건이 계획되었지만 결국 발각되어서 동승과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임신까지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조는 동귀비를 무참하게 죽여버림으로써
이 일로 인해 조조는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삼국지에서 가장 불쌍한 장면의 주인공의 하나로 헌제가 보는 앞에서 
조조의 군사들에 의해 목졸라 죽임을 당합니다.
헌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하는 어찌보면 찌질이라고 할정도로 화가나게 하는
무력함을 보여주는 가장 답답하면서 분노케 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시점으로 헌제가 가장 무능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 감부인 / 미부인 (당자제 [Tang Zi Ji] / 상억사 [Shang Yi Sha]) 


유비의 첫번째 / 두번째 부인입니다.
감부인은 나중에 소열황후 (유비의 소열황제와 동일하게) 라는 황후직을 얻고 (사망후에) 
미부인은 그저 미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황후로 추존되지는 않습니다)
유선의 어머니가 바로 감부인입니다. 
정사에 보면 조운의 그 유명한 장판파 전투때 감부인만 구출된 것으로 나옵니다.
미부인은 그 전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감부인은 이미 구출된 상태였고 미부인이 아두를 안고 가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조운을 만났는데 그 사이에 조운은 적병사들에게 둘러 쌓여있었습니다.
조운이 자신까지 데리고 갈 수 없음을 인지한 미부인은 근처에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습니다.


 
4) 대교 (유경 / Liu Jing)


"강남이교" 라고 불리는 교씨의 딸들 중 장녀 입니다. 
연의에서는 한나라의 신하였던 교현의 딸이었지만 정사에서는 그저 교씨 집안의 딸로 알려집니다.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대교는 손책에게 결혼을 했습니다. 
손책이 암살당해 죽은 뒤의 인생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손책의 아들로 손소가 있는데 대교가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장소가 후계문제로 인해 강동이 혼란에 빠지지 않기를 이야기하자,
아들을 데리고 강동을 떠나버립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 소교 (조가 / Zhao Ke)


"강남이교" 의 둘째 딸로 주유와 결혼했습니다.
역시 언니와 함께 미모와 함께 음악에 출중한 여인입니다.
역사에서는 그닥 언급이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주유에게 조언하기도 하고,
특히 제갈량과 관련해서 "제갈량을 죽이지 말라" "자존심이 너무 세다" 라는 등의
돌직구 발언으로 주유를 언짢게 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6) 채부인 (조희문 / 
Cao Xi Wen)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유비가 형주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인물입니다.
유기를 헐뜯고 유종을 세우려는 점은 정사 / 연의와 일치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채모보다 오히려 채부인이 더 머리를 굴리며 유비를 견제하고 유기를 없애려 합니다.
연의에서는 유종이 항복한 후에 북쪽으로 보내지던 중 우금에 의해 살해되지만,
역사에는 그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유종과 채부인이 딱히 죽임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7) 손상향 (임심여 / Lin Xin Ru / Ruby Lin)


초선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삼국지의 여인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손견과 오국태의 딸로써 무예가 출중하고 항상 호위 여인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영리하고 똑똑했다고도 알려집니다.
유비와 정략 결혼을 하였으며 후에 유비가 익주로 전쟁을 하러 간사이에 손권은
그녀를 불러들입니다.
유선을 같이 데리러 가려고 했으나 조운과 장비가 개입해 실패하였고, 역사에서는 그 이후에
손상향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손상향은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되고 나중에 이릉전투때,
손권은 그녀를 보내어 화친을 하려 하나 유비는 "손권을 정복한뒤 다시 되찾을 것이다" 하고
거절하고, 그 말을 들은 손상향은 한때 좋아했던 유비를 생각하며 고민을 합니다.
유비가 죽자 얼마 안있어 유비를 뒤따라 사망합니다.



8) 헌목황후 조절 (유재교 / Liu Zi Jiao)

헌제의 황후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 입니다.
조조의 딸이며 조비, 조식, 그리고 조창의 큰누나 입니다.
조조가 동귀비를 무참하게 살해한 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조절을 황후자리에 앉힙니다.
그 탓에 헌제에게 즉위 내내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조조와 조비와는 달리 한황실에 충실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고, 
헌제가 심하게 대해도 끝까지 아내이자 황후로써 헌제의 기를 살려주고 헌제를 위했습니다.
역사에서도 조비가 황후의 도장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자 몇번을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내주었습니다.
후에 헌제가 산양공이 되자 헌제와 함께 살았으며 헌제가 죽은 이후에도 26년을 혼자 살다가
황후로 대접을 받으며 헌제 곁에 묻혔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조조의 신하중 유일하게 한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헌제에게 압박을 하러온 조홍과 조휴를 꾸짖고 (연의에서도 있던 일), 헌제를 위해 동생인 조비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실패했습니다.
조비는 암살시도에도 그녀를 살려주었고, 후에 헌제가 황위를 내준후에 조비에게 자신의 암살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자기가 탄 배에 구멍을 뚫어서 죽을때 헌제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헌제는 강압적으로 조절을 황후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후에는 그녀를 자신의 황후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뜻을 함께 합니다. 



9) 정수 (이의효 / Li Yi Xiao)


역사에서도 연의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이 시리즈의 특별한 가공인물입니다.
이 시리즈 후반부의 주인공인 사마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조비의 몸종이었으나 조비가 사마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사마의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마의의 행동을 감당하고 몰래 보고하는 역할이었으며,
사마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 정수를 이용하여 조씨 가문을 안심시켜,
결과적으로 사마의가 승자가 되게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마의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조비의 내시와의 대화에서 환관은 사마의가 정수를 죽였냐 묻고 사마의는
임신도중에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약을 주어서 자신이 죽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정수를 미운정 고운정으로 좋아했던 사마의의 진의는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2010년의 삼국이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캐릭터를 하나하나 부각을 잘 시켰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촉의 관점이 아닌 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항상 역대 최악의 캐릭터로 불렸던 조조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완전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철저했던 조조를 진건빈은 아주 휴머있는 인물로 그려놓았습니다.
특히 중간에 철저하다가도 "헤헤~" 짓는 헛웃음은 조조를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탈바꿈 시켜놓았지요.

삼국지 매니아들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시리즈가 이 시리즈이며 촉의 삼국지에 질리거나
너무 연의에서만 부각되었던 촉과 무시당했던 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언급이 된 여인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삼국지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에서 여배우로써는 임심여를 재발견했고,
마지막 충신이었던 조절을 다시 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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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는 블로그에 저는 단지 "연예블로그" 에서 탈피해서 좋아하는 주제인 삼국지와
여러 스포츠 포스팅도 도전해보기로 약속드린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스포츠는 손도 못댔지만 삼국지 포스팅은 어느정도 시작을 했어요.
뭐... 반응이 뜨거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적고 싶은 글을 적고 일부 공유도 같이 하고 있기에
즐거운 포스팅들이 될 것 같네요..

오늘은 최근에 즐겨본 2010년판 신삼국지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는 최근에 2012년에 여러번 방송하기도 했고 가장 최근 방송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를 대상으로 두 가지 TV 시리즈가 나왔는데 1994년도에 왕부림 감독이 제작한
삼국지 (삼국연의) 가 있고 2010년에 가오시시 감독이 제작한 2010년이 삼국지가 (삼국) 있습니다.
두 시리즈 다 본 사람으로써 둘 시리즈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1994년은 소설 "삼국지" 자체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큰 줄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도원결의, 호로관 전투 (유비 삼형제 vs 여포), 관도대전, 적벽대전,
제갈량의 남만정벌 등의 모든 스토리들을 구성을 했었지요.
인물 자체보다는 주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삼국지연의가 그랬듯이
주로 유비와 제갈량의 촉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반면에 2010년 삼국지는 (삼국) 은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개개인의 캐릭터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아마 예산에도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것때문에 제갈량의 남만정벌이 통채로
날라가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보통의 삼국지 작품들과는 달리 흥미롭게 주 초점이 위나라와 사마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소설이 아닌 역사 삼국지정사 에서의 주인공은 진나라와 (사마씨) 위나라 (조씨)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조와 사마의가 아주 구체적으로 잘 그려져 있으며 다소 위치가 어정쩡했던
조비의 캐릭터도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입니다.
대체적으로 동양 역사에서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많이 적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삼국지에는 사실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어느정도 등장합니다. 
일단 연환계로 너무 유명한 초선이 있구요, 유비와의 결혼으로 유명한 손상향,
유비의 형주 출입을 막았던 채부인 등이 있습니다.

2010년 삼국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을 아무나에게 주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존 삼국지 작품들보다 상당히 많이 부각되고 별 의미 없어보이는 캐스팅이 아닌
많은 경쟁을 했던 캐스팅이 많거든요.
특히 손상향의 캐릭터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그 캐릭터를 놓고 한명이 먼저 캐스팅되었다가
바뀌기도 하고 주문이 많이 들어온 캐릭터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를 보고 흥미롭게 보았던 여성 인물들을 열거해보려고 합니다.
긴 포스팅이니 천천히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나마 여배우들의 얼굴이 많아서 천천히 읽는데 도움은 될지 모르겠네요.



1) 초선 (진호 / Chen Hao)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들중 가장 인기많고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가 바로 초선입니다.
삼국연의의 캐릭터를 따라서 연환계를 성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탁의 죽음 이후 초선의 생사에 대해서 참 논란들이 많은데, 1994년도 판에서는
연환계 성공후에 바로 자결을 한 것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보통 조조전 같은 게임에서는 여포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아 조조를 섬기지요.
이 버전에서는 여포가 죽은 후에 그 사신 앞에서 자결을 합니다.



2) 동귀비 (백회/ Bai Hui)


동승의 딸로써 황제의 뜻을 따라 유비를 궁으로 불러서 황제와 알현하게 합니다.
이 계기로 조조 암살 사건이 계획되었지만 결국 발각되어서 동승과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임신까지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조는 동귀비를 무참하게 죽여버림으로써
이 일로 인해 조조는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삼국지에서 가장 불쌍한 장면의 주인공의 하나로 헌제가 보는 앞에서 
조조의 군사들에 의해 목졸라 죽임을 당합니다.
헌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하는 어찌보면 찌질이라고 할정도로 화가나게 하는
무력함을 보여주는 가장 답답하면서 분노케 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시점으로 헌제가 가장 무능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 감부인 / 미부인 (당자제 [Tang Zi Ji] / 상억사 [Shang Yi Sha]) 


유비의 첫번째 / 두번째 부인입니다.
감부인은 나중에 소열황후 (유비의 소열황제와 동일하게) 라는 황후직을 얻고 (사망후에) 
미부인은 그저 미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황후로 추존되지는 않습니다)
유선의 어머니가 바로 감부인입니다. 
정사에 보면 조운의 그 유명한 장판파 전투때 감부인만 구출된 것으로 나옵니다.
미부인은 그 전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감부인은 이미 구출된 상태였고 미부인이 아두를 안고 가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조운을 만났는데 그 사이에 조운은 적병사들에게 둘러 쌓여있었습니다.
조운이 자신까지 데리고 갈 수 없음을 인지한 미부인은 근처에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습니다.


 
4) 대교 (유경 / Liu Jing)


"강남이교" 라고 불리는 교씨의 딸들 중 장녀 입니다. 
연의에서는 한나라의 신하였던 교현의 딸이었지만 정사에서는 그저 교씨 집안의 딸로 알려집니다.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대교는 손책에게 결혼을 했습니다. 
손책이 암살당해 죽은 뒤의 인생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손책의 아들로 손소가 있는데 대교가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장소가 후계문제로 인해 강동이 혼란에 빠지지 않기를 이야기하자,
아들을 데리고 강동을 떠나버립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 소교 (조가 / Zhao Ke)


"강남이교" 의 둘째 딸로 주유와 결혼했습니다.
역시 언니와 함께 미모와 함께 음악에 출중한 여인입니다.
역사에서는 그닥 언급이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주유에게 조언하기도 하고,
특히 제갈량과 관련해서 "제갈량을 죽이지 말라" "자존심이 너무 세다" 라는 등의
돌직구 발언으로 주유를 언짢게 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6) 채부인 (조희문 / 
Cao Xi Wen)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유비가 형주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인물입니다.
유기를 헐뜯고 유종을 세우려는 점은 정사 / 연의와 일치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채모보다 오히려 채부인이 더 머리를 굴리며 유비를 견제하고 유기를 없애려 합니다.
연의에서는 유종이 항복한 후에 북쪽으로 보내지던 중 우금에 의해 살해되지만,
역사에는 그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유종과 채부인이 딱히 죽임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7) 손상향 (임심여 / Lin Xin Ru / Ruby Lin)


초선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삼국지의 여인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손견과 오국태의 딸로써 무예가 출중하고 항상 호위 여인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영리하고 똑똑했다고도 알려집니다.
유비와 정략 결혼을 하였으며 후에 유비가 익주로 전쟁을 하러 간사이에 손권은
그녀를 불러들입니다.
유선을 같이 데리러 가려고 했으나 조운과 장비가 개입해 실패하였고, 역사에서는 그 이후에
손상향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손상향은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되고 나중에 이릉전투때,
손권은 그녀를 보내어 화친을 하려 하나 유비는 "손권을 정복한뒤 다시 되찾을 것이다" 하고
거절하고, 그 말을 들은 손상향은 한때 좋아했던 유비를 생각하며 고민을 합니다.
유비가 죽자 얼마 안있어 유비를 뒤따라 사망합니다.



8) 헌목황후 조절 (유재교 / Liu Zi Jiao)

헌제의 황후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 입니다.
조조의 딸이며 조비, 조식, 그리고 조창의 큰누나 입니다.
조조가 동귀비를 무참하게 살해한 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조절을 황후자리에 앉힙니다.
그 탓에 헌제에게 즉위 내내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조조와 조비와는 달리 한황실에 충실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고, 
헌제가 심하게 대해도 끝까지 아내이자 황후로써 헌제의 기를 살려주고 헌제를 위했습니다.
역사에서도 조비가 황후의 도장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자 몇번을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내주었습니다.
후에 헌제가 산양공이 되자 헌제와 함께 살았으며 헌제가 죽은 이후에도 26년을 혼자 살다가
황후로 대접을 받으며 헌제 곁에 묻혔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조조의 신하중 유일하게 한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헌제에게 압박을 하러온 조홍과 조휴를 꾸짖고 (연의에서도 있던 일), 헌제를 위해 동생인 조비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실패했습니다.
조비는 암살시도에도 그녀를 살려주었고, 후에 헌제가 황위를 내준후에 조비에게 자신의 암살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자기가 탄 배에 구멍을 뚫어서 죽을때 헌제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헌제는 강압적으로 조절을 황후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후에는 그녀를 자신의 황후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뜻을 함께 합니다. 



9) 정수 (이의효 / Li Yi Xiao)


역사에서도 연의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이 시리즈의 특별한 가공인물입니다.
이 시리즈 후반부의 주인공인 사마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조비의 몸종이었으나 조비가 사마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사마의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마의의 행동을 감당하고 몰래 보고하는 역할이었으며,
사마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 정수를 이용하여 조씨 가문을 안심시켜,
결과적으로 사마의가 승자가 되게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마의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조비의 내시와의 대화에서 환관은 사마의가 정수를 죽였냐 묻고 사마의는
임신도중에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약을 주어서 자신이 죽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정수를 미운정 고운정으로 좋아했던 사마의의 진의는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2010년의 삼국이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캐릭터를 하나하나 부각을 잘 시켰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촉의 관점이 아닌 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항상 역대 최악의 캐릭터로 불렸던 조조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완전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철저했던 조조를 진건빈은 아주 휴머있는 인물로 그려놓았습니다.
특히 중간에 철저하다가도 "헤헤~" 짓는 헛웃음은 조조를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탈바꿈 시켜놓았지요.

삼국지 매니아들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시리즈가 이 시리즈이며 촉의 삼국지에 질리거나
너무 연의에서만 부각되었던 촉과 무시당했던 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언급이 된 여인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삼국지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에서 여배우로써는 임심여를 재발견했고,
마지막 충신이었던 조절을 다시 보게 되었네요.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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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는 블로그에 저는 단지 "연예블로그" 에서 탈피해서 좋아하는 주제인 삼국지와
여러 스포츠 포스팅도 도전해보기로 약속드린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스포츠는 손도 못댔지만 삼국지 포스팅은 어느정도 시작을 했어요.
뭐... 반응이 뜨거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적고 싶은 글을 적고 일부 공유도 같이 하고 있기에
즐거운 포스팅들이 될 것 같네요..

오늘은 최근에 즐겨본 2010년판 신삼국지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는 최근에 2012년에 여러번 방송하기도 했고 가장 최근 방송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를 대상으로 두 가지 TV 시리즈가 나왔는데 1994년도에 왕부림 감독이 제작한
삼국지 (삼국연의) 가 있고 2010년에 가오시시 감독이 제작한 2010년이 삼국지가 (삼국) 있습니다.
두 시리즈 다 본 사람으로써 둘 시리즈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1994년은 소설 "삼국지" 자체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큰 줄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도원결의, 호로관 전투 (유비 삼형제 vs 여포), 관도대전, 적벽대전,
제갈량의 남만정벌 등의 모든 스토리들을 구성을 했었지요.
인물 자체보다는 주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삼국지연의가 그랬듯이
주로 유비와 제갈량의 촉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반면에 2010년 삼국지는 (삼국) 은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개개인의 캐릭터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아마 예산에도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것때문에 제갈량의 남만정벌이 통채로
날라가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보통의 삼국지 작품들과는 달리 흥미롭게 주 초점이 위나라와 사마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소설이 아닌 역사 삼국지정사 에서의 주인공은 진나라와 (사마씨) 위나라 (조씨)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조와 사마의가 아주 구체적으로 잘 그려져 있으며 다소 위치가 어정쩡했던
조비의 캐릭터도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입니다.
대체적으로 동양 역사에서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많이 적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삼국지에는 사실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어느정도 등장합니다. 
일단 연환계로 너무 유명한 초선이 있구요, 유비와의 결혼으로 유명한 손상향,
유비의 형주 출입을 막았던 채부인 등이 있습니다.

2010년 삼국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을 아무나에게 주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존 삼국지 작품들보다 상당히 많이 부각되고 별 의미 없어보이는 캐스팅이 아닌
많은 경쟁을 했던 캐스팅이 많거든요.
특히 손상향의 캐릭터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그 캐릭터를 놓고 한명이 먼저 캐스팅되었다가
바뀌기도 하고 주문이 많이 들어온 캐릭터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를 보고 흥미롭게 보았던 여성 인물들을 열거해보려고 합니다.
긴 포스팅이니 천천히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나마 여배우들의 얼굴이 많아서 천천히 읽는데 도움은 될지 모르겠네요.



1) 초선 (진호 / Chen Hao)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들중 가장 인기많고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가 바로 초선입니다.
삼국연의의 캐릭터를 따라서 연환계를 성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탁의 죽음 이후 초선의 생사에 대해서 참 논란들이 많은데, 1994년도 판에서는
연환계 성공후에 바로 자결을 한 것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보통 조조전 같은 게임에서는 여포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아 조조를 섬기지요.
이 버전에서는 여포가 죽은 후에 그 사신 앞에서 자결을 합니다.



2) 동귀비 (백회/ Bai Hui)


동승의 딸로써 황제의 뜻을 따라 유비를 궁으로 불러서 황제와 알현하게 합니다.
이 계기로 조조 암살 사건이 계획되었지만 결국 발각되어서 동승과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임신까지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조는 동귀비를 무참하게 죽여버림으로써
이 일로 인해 조조는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삼국지에서 가장 불쌍한 장면의 주인공의 하나로 헌제가 보는 앞에서 
조조의 군사들에 의해 목졸라 죽임을 당합니다.
헌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하는 어찌보면 찌질이라고 할정도로 화가나게 하는
무력함을 보여주는 가장 답답하면서 분노케 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시점으로 헌제가 가장 무능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 감부인 / 미부인 (당자제 [Tang Zi Ji] / 상억사 [Shang Yi Sha]) 


유비의 첫번째 / 두번째 부인입니다.
감부인은 나중에 소열황후 (유비의 소열황제와 동일하게) 라는 황후직을 얻고 (사망후에) 
미부인은 그저 미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황후로 추존되지는 않습니다)
유선의 어머니가 바로 감부인입니다. 
정사에 보면 조운의 그 유명한 장판파 전투때 감부인만 구출된 것으로 나옵니다.
미부인은 그 전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감부인은 이미 구출된 상태였고 미부인이 아두를 안고 가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조운을 만났는데 그 사이에 조운은 적병사들에게 둘러 쌓여있었습니다.
조운이 자신까지 데리고 갈 수 없음을 인지한 미부인은 근처에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습니다.


 
4) 대교 (유경 / Liu Jing)


"강남이교" 라고 불리는 교씨의 딸들 중 장녀 입니다. 
연의에서는 한나라의 신하였던 교현의 딸이었지만 정사에서는 그저 교씨 집안의 딸로 알려집니다.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대교는 손책에게 결혼을 했습니다. 
손책이 암살당해 죽은 뒤의 인생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손책의 아들로 손소가 있는데 대교가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장소가 후계문제로 인해 강동이 혼란에 빠지지 않기를 이야기하자,
아들을 데리고 강동을 떠나버립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 소교 (조가 / Zhao Ke)


"강남이교" 의 둘째 딸로 주유와 결혼했습니다.
역시 언니와 함께 미모와 함께 음악에 출중한 여인입니다.
역사에서는 그닥 언급이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주유에게 조언하기도 하고,
특히 제갈량과 관련해서 "제갈량을 죽이지 말라" "자존심이 너무 세다" 라는 등의
돌직구 발언으로 주유를 언짢게 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6) 채부인 (조희문 / 
Cao Xi Wen)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유비가 형주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인물입니다.
유기를 헐뜯고 유종을 세우려는 점은 정사 / 연의와 일치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채모보다 오히려 채부인이 더 머리를 굴리며 유비를 견제하고 유기를 없애려 합니다.
연의에서는 유종이 항복한 후에 북쪽으로 보내지던 중 우금에 의해 살해되지만,
역사에는 그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유종과 채부인이 딱히 죽임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7) 손상향 (임심여 / Lin Xin Ru / Ruby Lin)


초선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삼국지의 여인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손견과 오국태의 딸로써 무예가 출중하고 항상 호위 여인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영리하고 똑똑했다고도 알려집니다.
유비와 정략 결혼을 하였으며 후에 유비가 익주로 전쟁을 하러 간사이에 손권은
그녀를 불러들입니다.
유선을 같이 데리러 가려고 했으나 조운과 장비가 개입해 실패하였고, 역사에서는 그 이후에
손상향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손상향은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되고 나중에 이릉전투때,
손권은 그녀를 보내어 화친을 하려 하나 유비는 "손권을 정복한뒤 다시 되찾을 것이다" 하고
거절하고, 그 말을 들은 손상향은 한때 좋아했던 유비를 생각하며 고민을 합니다.
유비가 죽자 얼마 안있어 유비를 뒤따라 사망합니다.



8) 헌목황후 조절 (유재교 / Liu Zi Jiao)

헌제의 황후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 입니다.
조조의 딸이며 조비, 조식, 그리고 조창의 큰누나 입니다.
조조가 동귀비를 무참하게 살해한 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조절을 황후자리에 앉힙니다.
그 탓에 헌제에게 즉위 내내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조조와 조비와는 달리 한황실에 충실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고, 
헌제가 심하게 대해도 끝까지 아내이자 황후로써 헌제의 기를 살려주고 헌제를 위했습니다.
역사에서도 조비가 황후의 도장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자 몇번을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내주었습니다.
후에 헌제가 산양공이 되자 헌제와 함께 살았으며 헌제가 죽은 이후에도 26년을 혼자 살다가
황후로 대접을 받으며 헌제 곁에 묻혔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조조의 신하중 유일하게 한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헌제에게 압박을 하러온 조홍과 조휴를 꾸짖고 (연의에서도 있던 일), 헌제를 위해 동생인 조비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실패했습니다.
조비는 암살시도에도 그녀를 살려주었고, 후에 헌제가 황위를 내준후에 조비에게 자신의 암살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자기가 탄 배에 구멍을 뚫어서 죽을때 헌제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헌제는 강압적으로 조절을 황후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후에는 그녀를 자신의 황후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뜻을 함께 합니다. 



9) 정수 (이의효 / Li Yi Xiao)


역사에서도 연의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이 시리즈의 특별한 가공인물입니다.
이 시리즈 후반부의 주인공인 사마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조비의 몸종이었으나 조비가 사마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사마의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마의의 행동을 감당하고 몰래 보고하는 역할이었으며,
사마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 정수를 이용하여 조씨 가문을 안심시켜,
결과적으로 사마의가 승자가 되게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마의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조비의 내시와의 대화에서 환관은 사마의가 정수를 죽였냐 묻고 사마의는
임신도중에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약을 주어서 자신이 죽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정수를 미운정 고운정으로 좋아했던 사마의의 진의는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2010년의 삼국이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캐릭터를 하나하나 부각을 잘 시켰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촉의 관점이 아닌 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항상 역대 최악의 캐릭터로 불렸던 조조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완전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철저했던 조조를 진건빈은 아주 휴머있는 인물로 그려놓았습니다.
특히 중간에 철저하다가도 "헤헤~" 짓는 헛웃음은 조조를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탈바꿈 시켜놓았지요.

삼국지 매니아들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시리즈가 이 시리즈이며 촉의 삼국지에 질리거나
너무 연의에서만 부각되었던 촉과 무시당했던 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언급이 된 여인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삼국지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에서 여배우로써는 임심여를 재발견했고,
마지막 충신이었던 조절을 다시 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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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는 블로그에 저는 단지 "연예블로그" 에서 탈피해서 좋아하는 주제인 삼국지와
여러 스포츠 포스팅도 도전해보기로 약속드린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스포츠는 손도 못댔지만 삼국지 포스팅은 어느정도 시작을 했어요.
뭐... 반응이 뜨거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적고 싶은 글을 적고 일부 공유도 같이 하고 있기에
즐거운 포스팅들이 될 것 같네요..

오늘은 최근에 즐겨본 2010년판 신삼국지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는 최근에 2012년에 여러번 방송하기도 했고 가장 최근 방송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를 대상으로 두 가지 TV 시리즈가 나왔는데 1994년도에 왕부림 감독이 제작한
삼국지 (삼국연의) 가 있고 2010년에 가오시시 감독이 제작한 2010년이 삼국지가 (삼국) 있습니다.
두 시리즈 다 본 사람으로써 둘 시리즈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1994년은 소설 "삼국지" 자체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큰 줄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도원결의, 호로관 전투 (유비 삼형제 vs 여포), 관도대전, 적벽대전,
제갈량의 남만정벌 등의 모든 스토리들을 구성을 했었지요.
인물 자체보다는 주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삼국지연의가 그랬듯이
주로 유비와 제갈량의 촉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반면에 2010년 삼국지는 (삼국) 은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개개인의 캐릭터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아마 예산에도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것때문에 제갈량의 남만정벌이 통채로
날라가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보통의 삼국지 작품들과는 달리 흥미롭게 주 초점이 위나라와 사마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소설이 아닌 역사 삼국지정사 에서의 주인공은 진나라와 (사마씨) 위나라 (조씨)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조와 사마의가 아주 구체적으로 잘 그려져 있으며 다소 위치가 어정쩡했던
조비의 캐릭터도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입니다.
대체적으로 동양 역사에서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많이 적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삼국지에는 사실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어느정도 등장합니다. 
일단 연환계로 너무 유명한 초선이 있구요, 유비와의 결혼으로 유명한 손상향,
유비의 형주 출입을 막았던 채부인 등이 있습니다.

2010년 삼국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을 아무나에게 주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존 삼국지 작품들보다 상당히 많이 부각되고 별 의미 없어보이는 캐스팅이 아닌
많은 경쟁을 했던 캐스팅이 많거든요.
특히 손상향의 캐릭터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그 캐릭터를 놓고 한명이 먼저 캐스팅되었다가
바뀌기도 하고 주문이 많이 들어온 캐릭터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를 보고 흥미롭게 보았던 여성 인물들을 열거해보려고 합니다.
긴 포스팅이니 천천히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나마 여배우들의 얼굴이 많아서 천천히 읽는데 도움은 될지 모르겠네요.



1) 초선 (진호 / Chen Hao)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들중 가장 인기많고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가 바로 초선입니다.
삼국연의의 캐릭터를 따라서 연환계를 성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탁의 죽음 이후 초선의 생사에 대해서 참 논란들이 많은데, 1994년도 판에서는
연환계 성공후에 바로 자결을 한 것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보통 조조전 같은 게임에서는 여포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아 조조를 섬기지요.
이 버전에서는 여포가 죽은 후에 그 사신 앞에서 자결을 합니다.



2) 동귀비 (백회/ Bai Hui)


동승의 딸로써 황제의 뜻을 따라 유비를 궁으로 불러서 황제와 알현하게 합니다.
이 계기로 조조 암살 사건이 계획되었지만 결국 발각되어서 동승과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임신까지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조는 동귀비를 무참하게 죽여버림으로써
이 일로 인해 조조는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삼국지에서 가장 불쌍한 장면의 주인공의 하나로 헌제가 보는 앞에서 
조조의 군사들에 의해 목졸라 죽임을 당합니다.
헌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하는 어찌보면 찌질이라고 할정도로 화가나게 하는
무력함을 보여주는 가장 답답하면서 분노케 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시점으로 헌제가 가장 무능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 감부인 / 미부인 (당자제 [Tang Zi Ji] / 상억사 [Shang Yi Sha]) 


유비의 첫번째 / 두번째 부인입니다.
감부인은 나중에 소열황후 (유비의 소열황제와 동일하게) 라는 황후직을 얻고 (사망후에) 
미부인은 그저 미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황후로 추존되지는 않습니다)
유선의 어머니가 바로 감부인입니다. 
정사에 보면 조운의 그 유명한 장판파 전투때 감부인만 구출된 것으로 나옵니다.
미부인은 그 전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감부인은 이미 구출된 상태였고 미부인이 아두를 안고 가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조운을 만났는데 그 사이에 조운은 적병사들에게 둘러 쌓여있었습니다.
조운이 자신까지 데리고 갈 수 없음을 인지한 미부인은 근처에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습니다.


 
4) 대교 (유경 / Liu Jing)


"강남이교" 라고 불리는 교씨의 딸들 중 장녀 입니다. 
연의에서는 한나라의 신하였던 교현의 딸이었지만 정사에서는 그저 교씨 집안의 딸로 알려집니다.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대교는 손책에게 결혼을 했습니다. 
손책이 암살당해 죽은 뒤의 인생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손책의 아들로 손소가 있는데 대교가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장소가 후계문제로 인해 강동이 혼란에 빠지지 않기를 이야기하자,
아들을 데리고 강동을 떠나버립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 소교 (조가 / Zhao Ke)


"강남이교" 의 둘째 딸로 주유와 결혼했습니다.
역시 언니와 함께 미모와 함께 음악에 출중한 여인입니다.
역사에서는 그닥 언급이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주유에게 조언하기도 하고,
특히 제갈량과 관련해서 "제갈량을 죽이지 말라" "자존심이 너무 세다" 라는 등의
돌직구 발언으로 주유를 언짢게 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6) 채부인 (조희문 / 
Cao Xi Wen)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유비가 형주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인물입니다.
유기를 헐뜯고 유종을 세우려는 점은 정사 / 연의와 일치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채모보다 오히려 채부인이 더 머리를 굴리며 유비를 견제하고 유기를 없애려 합니다.
연의에서는 유종이 항복한 후에 북쪽으로 보내지던 중 우금에 의해 살해되지만,
역사에는 그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유종과 채부인이 딱히 죽임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7) 손상향 (임심여 / Lin Xin Ru / Ruby Lin)


초선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삼국지의 여인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손견과 오국태의 딸로써 무예가 출중하고 항상 호위 여인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영리하고 똑똑했다고도 알려집니다.
유비와 정략 결혼을 하였으며 후에 유비가 익주로 전쟁을 하러 간사이에 손권은
그녀를 불러들입니다.
유선을 같이 데리러 가려고 했으나 조운과 장비가 개입해 실패하였고, 역사에서는 그 이후에
손상향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손상향은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되고 나중에 이릉전투때,
손권은 그녀를 보내어 화친을 하려 하나 유비는 "손권을 정복한뒤 다시 되찾을 것이다" 하고
거절하고, 그 말을 들은 손상향은 한때 좋아했던 유비를 생각하며 고민을 합니다.
유비가 죽자 얼마 안있어 유비를 뒤따라 사망합니다.



8) 헌목황후 조절 (유재교 / Liu Zi Jiao)

헌제의 황후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 입니다.
조조의 딸이며 조비, 조식, 그리고 조창의 큰누나 입니다.
조조가 동귀비를 무참하게 살해한 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조절을 황후자리에 앉힙니다.
그 탓에 헌제에게 즉위 내내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조조와 조비와는 달리 한황실에 충실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고, 
헌제가 심하게 대해도 끝까지 아내이자 황후로써 헌제의 기를 살려주고 헌제를 위했습니다.
역사에서도 조비가 황후의 도장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자 몇번을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내주었습니다.
후에 헌제가 산양공이 되자 헌제와 함께 살았으며 헌제가 죽은 이후에도 26년을 혼자 살다가
황후로 대접을 받으며 헌제 곁에 묻혔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조조의 신하중 유일하게 한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헌제에게 압박을 하러온 조홍과 조휴를 꾸짖고 (연의에서도 있던 일), 헌제를 위해 동생인 조비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실패했습니다.
조비는 암살시도에도 그녀를 살려주었고, 후에 헌제가 황위를 내준후에 조비에게 자신의 암살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자기가 탄 배에 구멍을 뚫어서 죽을때 헌제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헌제는 강압적으로 조절을 황후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후에는 그녀를 자신의 황후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뜻을 함께 합니다. 



9) 정수 (이의효 / Li Yi Xiao)


역사에서도 연의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이 시리즈의 특별한 가공인물입니다.
이 시리즈 후반부의 주인공인 사마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조비의 몸종이었으나 조비가 사마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사마의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마의의 행동을 감당하고 몰래 보고하는 역할이었으며,
사마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 정수를 이용하여 조씨 가문을 안심시켜,
결과적으로 사마의가 승자가 되게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마의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조비의 내시와의 대화에서 환관은 사마의가 정수를 죽였냐 묻고 사마의는
임신도중에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약을 주어서 자신이 죽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정수를 미운정 고운정으로 좋아했던 사마의의 진의는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2010년의 삼국이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캐릭터를 하나하나 부각을 잘 시켰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촉의 관점이 아닌 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항상 역대 최악의 캐릭터로 불렸던 조조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완전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철저했던 조조를 진건빈은 아주 휴머있는 인물로 그려놓았습니다.
특히 중간에 철저하다가도 "헤헤~" 짓는 헛웃음은 조조를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탈바꿈 시켜놓았지요.

삼국지 매니아들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시리즈가 이 시리즈이며 촉의 삼국지에 질리거나
너무 연의에서만 부각되었던 촉과 무시당했던 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언급이 된 여인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삼국지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에서 여배우로써는 임심여를 재발견했고,
마지막 충신이었던 조절을 다시 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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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는 블로그에 저는 단지 "연예블로그" 에서 탈피해서 좋아하는 주제인 삼국지와
여러 스포츠 포스팅도 도전해보기로 약속드린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스포츠는 손도 못댔지만 삼국지 포스팅은 어느정도 시작을 했어요.
뭐... 반응이 뜨거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적고 싶은 글을 적고 일부 공유도 같이 하고 있기에
즐거운 포스팅들이 될 것 같네요..

오늘은 최근에 즐겨본 2010년판 신삼국지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는 최근에 2012년에 여러번 방송하기도 했고 가장 최근 방송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를 대상으로 두 가지 TV 시리즈가 나왔는데 1994년도에 왕부림 감독이 제작한
삼국지 (삼국연의) 가 있고 2010년에 가오시시 감독이 제작한 2010년이 삼국지가 (삼국) 있습니다.
두 시리즈 다 본 사람으로써 둘 시리즈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1994년은 소설 "삼국지" 자체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큰 줄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도원결의, 호로관 전투 (유비 삼형제 vs 여포), 관도대전, 적벽대전,
제갈량의 남만정벌 등의 모든 스토리들을 구성을 했었지요.
인물 자체보다는 주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삼국지연의가 그랬듯이
주로 유비와 제갈량의 촉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반면에 2010년 삼국지는 (삼국) 은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개개인의 캐릭터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아마 예산에도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것때문에 제갈량의 남만정벌이 통채로
날라가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보통의 삼국지 작품들과는 달리 흥미롭게 주 초점이 위나라와 사마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소설이 아닌 역사 삼국지정사 에서의 주인공은 진나라와 (사마씨) 위나라 (조씨)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조와 사마의가 아주 구체적으로 잘 그려져 있으며 다소 위치가 어정쩡했던
조비의 캐릭터도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입니다.
대체적으로 동양 역사에서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많이 적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삼국지에는 사실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어느정도 등장합니다. 
일단 연환계로 너무 유명한 초선이 있구요, 유비와의 결혼으로 유명한 손상향,
유비의 형주 출입을 막았던 채부인 등이 있습니다.

2010년 삼국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을 아무나에게 주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존 삼국지 작품들보다 상당히 많이 부각되고 별 의미 없어보이는 캐스팅이 아닌
많은 경쟁을 했던 캐스팅이 많거든요.
특히 손상향의 캐릭터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그 캐릭터를 놓고 한명이 먼저 캐스팅되었다가
바뀌기도 하고 주문이 많이 들어온 캐릭터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를 보고 흥미롭게 보았던 여성 인물들을 열거해보려고 합니다.
긴 포스팅이니 천천히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나마 여배우들의 얼굴이 많아서 천천히 읽는데 도움은 될지 모르겠네요.



1) 초선 (진호 / Chen Hao)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들중 가장 인기많고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가 바로 초선입니다.
삼국연의의 캐릭터를 따라서 연환계를 성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탁의 죽음 이후 초선의 생사에 대해서 참 논란들이 많은데, 1994년도 판에서는
연환계 성공후에 바로 자결을 한 것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보통 조조전 같은 게임에서는 여포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아 조조를 섬기지요.
이 버전에서는 여포가 죽은 후에 그 사신 앞에서 자결을 합니다.



2) 동귀비 (백회/ Bai Hui)


동승의 딸로써 황제의 뜻을 따라 유비를 궁으로 불러서 황제와 알현하게 합니다.
이 계기로 조조 암살 사건이 계획되었지만 결국 발각되어서 동승과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임신까지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조는 동귀비를 무참하게 죽여버림으로써
이 일로 인해 조조는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삼국지에서 가장 불쌍한 장면의 주인공의 하나로 헌제가 보는 앞에서 
조조의 군사들에 의해 목졸라 죽임을 당합니다.
헌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하는 어찌보면 찌질이라고 할정도로 화가나게 하는
무력함을 보여주는 가장 답답하면서 분노케 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시점으로 헌제가 가장 무능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 감부인 / 미부인 (당자제 [Tang Zi Ji] / 상억사 [Shang Yi Sha]) 


유비의 첫번째 / 두번째 부인입니다.
감부인은 나중에 소열황후 (유비의 소열황제와 동일하게) 라는 황후직을 얻고 (사망후에) 
미부인은 그저 미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황후로 추존되지는 않습니다)
유선의 어머니가 바로 감부인입니다. 
정사에 보면 조운의 그 유명한 장판파 전투때 감부인만 구출된 것으로 나옵니다.
미부인은 그 전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감부인은 이미 구출된 상태였고 미부인이 아두를 안고 가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조운을 만났는데 그 사이에 조운은 적병사들에게 둘러 쌓여있었습니다.
조운이 자신까지 데리고 갈 수 없음을 인지한 미부인은 근처에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습니다.


 
4) 대교 (유경 / Liu Jing)


"강남이교" 라고 불리는 교씨의 딸들 중 장녀 입니다. 
연의에서는 한나라의 신하였던 교현의 딸이었지만 정사에서는 그저 교씨 집안의 딸로 알려집니다.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대교는 손책에게 결혼을 했습니다. 
손책이 암살당해 죽은 뒤의 인생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손책의 아들로 손소가 있는데 대교가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장소가 후계문제로 인해 강동이 혼란에 빠지지 않기를 이야기하자,
아들을 데리고 강동을 떠나버립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 소교 (조가 / Zhao Ke)


"강남이교" 의 둘째 딸로 주유와 결혼했습니다.
역시 언니와 함께 미모와 함께 음악에 출중한 여인입니다.
역사에서는 그닥 언급이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주유에게 조언하기도 하고,
특히 제갈량과 관련해서 "제갈량을 죽이지 말라" "자존심이 너무 세다" 라는 등의
돌직구 발언으로 주유를 언짢게 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6) 채부인 (조희문 / 
Cao Xi Wen)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유비가 형주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인물입니다.
유기를 헐뜯고 유종을 세우려는 점은 정사 / 연의와 일치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채모보다 오히려 채부인이 더 머리를 굴리며 유비를 견제하고 유기를 없애려 합니다.
연의에서는 유종이 항복한 후에 북쪽으로 보내지던 중 우금에 의해 살해되지만,
역사에는 그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유종과 채부인이 딱히 죽임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7) 손상향 (임심여 / Lin Xin Ru / Ruby Lin)


초선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삼국지의 여인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손견과 오국태의 딸로써 무예가 출중하고 항상 호위 여인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영리하고 똑똑했다고도 알려집니다.
유비와 정략 결혼을 하였으며 후에 유비가 익주로 전쟁을 하러 간사이에 손권은
그녀를 불러들입니다.
유선을 같이 데리러 가려고 했으나 조운과 장비가 개입해 실패하였고, 역사에서는 그 이후에
손상향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손상향은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되고 나중에 이릉전투때,
손권은 그녀를 보내어 화친을 하려 하나 유비는 "손권을 정복한뒤 다시 되찾을 것이다" 하고
거절하고, 그 말을 들은 손상향은 한때 좋아했던 유비를 생각하며 고민을 합니다.
유비가 죽자 얼마 안있어 유비를 뒤따라 사망합니다.



8) 헌목황후 조절 (유재교 / Liu Zi Jiao)

헌제의 황후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 입니다.
조조의 딸이며 조비, 조식, 그리고 조창의 큰누나 입니다.
조조가 동귀비를 무참하게 살해한 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조절을 황후자리에 앉힙니다.
그 탓에 헌제에게 즉위 내내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조조와 조비와는 달리 한황실에 충실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고, 
헌제가 심하게 대해도 끝까지 아내이자 황후로써 헌제의 기를 살려주고 헌제를 위했습니다.
역사에서도 조비가 황후의 도장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자 몇번을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내주었습니다.
후에 헌제가 산양공이 되자 헌제와 함께 살았으며 헌제가 죽은 이후에도 26년을 혼자 살다가
황후로 대접을 받으며 헌제 곁에 묻혔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조조의 신하중 유일하게 한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헌제에게 압박을 하러온 조홍과 조휴를 꾸짖고 (연의에서도 있던 일), 헌제를 위해 동생인 조비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실패했습니다.
조비는 암살시도에도 그녀를 살려주었고, 후에 헌제가 황위를 내준후에 조비에게 자신의 암살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자기가 탄 배에 구멍을 뚫어서 죽을때 헌제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헌제는 강압적으로 조절을 황후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후에는 그녀를 자신의 황후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뜻을 함께 합니다. 



9) 정수 (이의효 / Li Yi Xiao)


역사에서도 연의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이 시리즈의 특별한 가공인물입니다.
이 시리즈 후반부의 주인공인 사마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조비의 몸종이었으나 조비가 사마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사마의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마의의 행동을 감당하고 몰래 보고하는 역할이었으며,
사마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 정수를 이용하여 조씨 가문을 안심시켜,
결과적으로 사마의가 승자가 되게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마의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조비의 내시와의 대화에서 환관은 사마의가 정수를 죽였냐 묻고 사마의는
임신도중에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약을 주어서 자신이 죽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정수를 미운정 고운정으로 좋아했던 사마의의 진의는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2010년의 삼국이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캐릭터를 하나하나 부각을 잘 시켰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촉의 관점이 아닌 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항상 역대 최악의 캐릭터로 불렸던 조조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완전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철저했던 조조를 진건빈은 아주 휴머있는 인물로 그려놓았습니다.
특히 중간에 철저하다가도 "헤헤~" 짓는 헛웃음은 조조를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탈바꿈 시켜놓았지요.

삼국지 매니아들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시리즈가 이 시리즈이며 촉의 삼국지에 질리거나
너무 연의에서만 부각되었던 촉과 무시당했던 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언급이 된 여인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삼국지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에서 여배우로써는 임심여를 재발견했고,
마지막 충신이었던 조절을 다시 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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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삼국지 시리즈 입니다.
제가 주로 삼국지 글을 썼을때는 주로 소설과 역사를 비교하는 글들을 많이 썼었어요.
실제 삼국시대에 살았던 장수들이 과장된 경우도 많았고 어떤 경우는 비하된 경우도 많았기에
그것에 대한 해명글을 적어보고자 해서 적어본 글들입니다.
과소평과된 서황과 과대평가되었다고 여겨지는 조운에 대해서 지난번에 적어봤죠.  
1. 서황, 나관중에 의해 일그러진 위나라의 대들보
2. <삼국지> 조운은 과연 과대평가된 장수였을까?
  
이번에는 조금 초점을 바꿔서 삼국지 최대의 멍청이로 알려진 유선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글은 삼국지 최대의 논란장수 강유에 대해서 적어볼 계획이었으나 그걸 적으려다보니까
유선의 군주로써의 자질이 먼저 생각이 났고, 그래서 강유 이야기를 적기 앞서서 
유선에 대해서 먼저 깔고 적어보는게 낫지 않을까 해서 유선에 대해서 적어봅니다. 




일단 유선은 어떤 인물일까요?
촉 초대 황제이자 삼국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유비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입니다.
물론 유비가 유봉을 양자로 거느리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유봉보다는 유선이 유비의 뒤를
인물로 여겨져왔습니다.
아두라고도 알려진 유선은 역사속에서도 조운에 의해서 장판파에서 구해졌고,
그 장판파 전투로 인해서 유선에 대한 농담이 (현 시대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 되고 있긴 합니다.
유비가 유선을 던져 버리는 바람에 유선이 멍청해졌다는 그런 농담...?

실제 유선의 아이큐가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역사속에 실제 인물이 정말 잘생겼는지 아닌지처럼 말입니다.
단 배송지의 삼국지주에서는 오나라에서 촉으로 보낸 사신이어던 설후가 유선을 가르켜
"무능한자다" 라고 묘사한 바는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무능한건지 군주로써의 무능함을 이야기한 것인지 알수가 없다는 점과
또 역사 자체가 관점에 의해 다르다는 것을 보면 확담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놓고볼때
유선의 군주로써의 무능함은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말하기를 유선은 "뛰어난 신하들이 있을때는" 현명한 군주였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 제갈량의 섭정부터 비위의 섭정에 이르기까지는 딱히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요. 
물론 군주로써 현명하고 뛰어난 신하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뒤집어 놓고 말하자면 "뛰어난 신하가 있을때" 라고 이야기 한다면 
신하가 무능하면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는 군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유선이 그런 군주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것도 어느정도 감안할만 합니다.
그렇기에 초반에는 당연히 신하들에게 의존하는 정치를 필수 밖에 없었지요.
물론 그렇게 된 이유에는 제갈량의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것도 존재합니다.
알아서 척척 잘하는 제갈량이 있으니 딱히 유선이 할 것도 많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어찌보면 그게 유선에게 독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뛰어난 제갈량이 출사전까지는 알아서 해줬고 출사 이후로는 이엄이 안에서
내정을 담당해줬으며, 장완, 비위가 다 담당해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는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고 보는게 맞다고 봅니다.


사실 그 시기에는 유선도 어느정도 의견을 내고 정치를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제갈량이라는 훌륭한 신하가 유선에게 비위, 동윤, 곽유지, 향총 등을
권해주었고 그 신하들이 잘 유지해주었기에 촉이라는 나라가 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선이 잘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면이 있지만 사실 이 시점에서는 촉은 "유선의 나라" 라기보다는
"제갈량의 나라" 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갈량이 죽고나서도 다행이 촉은 장완과 비위라는 훌륭한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장완과 비위는 제갈량 못지 않게 훌륭하게 내정을 소화해냈습니다.
제갈량이 괜히 장완과 비위에게 후사를 맡긴게 아닙니다.
장완과 비위가 제갈량 보다 못했던 부분은 단 한가지... 군사적인 면입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유선이 거의 정치에서 손을 띄었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은 환관 황호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제 유선의 통치의 망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지요.


사실 황호의 등장을 굉장히 경계하는 여러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동윤은 암적인 존재인 황호를 경계해서 실제로 동윤 생존 당시에는 
황호가 전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제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윤이 죽기 시작하면서 정치는 흐트러 지키 시작합니다.

동윤의 수차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첨의 달인인 황호에 점점 유선은 말을 듣기 시작했고,
승상이었던 비위가 암살 당한 이후에는 황호의 세력은 통제가 안될 정도로 거세졌습니다.
강유가 섭정을 할 권한이 쥐어졌다고 하지만 사실 군사적으로만 섭정이 가능한 대장군의
직위로서 제한되어 있던 상황에서 황호는 내정적인 권위를 손에 쥐은채 정사를 농락했습니다.

한번은 강유가 적위 허위정보에 잘 속아넘어가는 황호를 상대로 여러번 허위정보를 흘려
정사를 그르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강유는 황호라는 간적을 없애버리기 위해 유선에게 황호를 처형할 것을 권했지만,
유선은 이 간언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오히려 황호를 보호해주기 위해 "이 자는 그저 환관일 뿐이다" 라고 한뒤 계속해서 황호와함께
그저 주색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전념을 했었지요.



후에 논란이 되는 위연의 방어진은 강유가 버리고 조금 더 위험성이 높은 방어진을 선택했을때,
유선에게 원군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유선은 초반에 황호의 어설픈 점성술만 믿고,
거절을 했다고 보내준 일만 봐도 얼마나 유선이 황호에게 의존해서 나라를 맡겨버렸는지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강유의 논란이 되는 위연의 방어진의 버림은 나중에 적어볼까 합니다)


그 이후로도 유선은 계속해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도처에 드러내게 됩니다. 
실제로 촉이 멸망된 해인 263년 초에 위나라가 쳐들어왔을때 유선은 강유에 의존해
전쟁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강유가 연속으로 패배를 거두면서 검각으로 몰리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강유는 종회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만, 군사적으로 강유만 못한 제갈첨은
등애에게 면죽관에서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유선은 여전히 원군을 보내주지 않고 "알아서 잘 막겠거니" 하고
방관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등애의 군대는 숫자가 그렇게 많을 수도 있는 군대는 아니었습니다.
아주 험준한 산 음평, 무도를 넘어가는 동안에 유선이 군대와 적절한 장수들을 보내주었더라면
제갈첨과 함께 등애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전략적으로 뛰어난 등애는 제갈첨과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제갈첨의 패배후 등애가 진격해오자 유선은 싸움 한번 안하고 항복해버리고 맙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행동이 촉의 백성들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선이 얼마나 군주로써의 자긍심이 없는지도 보여주는 바입니다.
이렇듯 유선은 군주가 되고나서 딱히 정치에 대해 나라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지 못한채,
그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지켜보던 아둔한 군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강유가 촉을 망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몇 주전에도 유투브에서 이 점과 관련해서 토론을 펼친적이 있씁니다.
개인적으로 그 때는 강유에 초점을 맞춰보느라 성공적인 토론이 되지는 못했지만,
만약 유선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더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강유가 촉의 멸망을 초래하는데 지나친 북벌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군주라면 그런 강유를 통제하고 동시에 강유의 치명점을 파악한뒤,
그 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과 강유를 맞춰주었어야 했습니다.
비위와 장완같은 사람 말이지요.

하지만 유선은 그런 인재를 구할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신하들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는데도 원군을 어디다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조언을 구하면서 나라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저 주색에 빠져 즐기는 일에만 급급했습니다.
이러니 강유가 통제가 되지 않았던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결과적으로 촉의 멸망은 강유의 잘못이 아닌 유선의 잘못입니다.
유선이 유비의 반만 닮았더라면 강유가 저렇게 통제불능이 되지도 않았을것이며,
환관 황호에 놀아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촉의 인재는 더 많이 늘어나 촉의 수명이 길었을겁니다.

하지만 군주의 본분을 잊고 인사를 등한히 한점, 황관의 정치에 놀아난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번의 지지를 하지 않고 주색에 빠진점은 왜 유선이 군주로써의
자격이 없는지 잘 보여주는 바이고 그렇기에 촉한의 멸망의 잘못은
유선에게 있다는 점을 생각해봅니다.  

이 점을 생각해볼 때 강유에 대한 오해가 더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수와 손성은 강유를 비평하고 비난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관점은 위나라를 진의 전시로 보았고,
사마소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강유이기에 강유에 평가에 더 절박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촉의 멸망은 결과적으로 강유가 아니라 유선때문이라는 생각이 크며,
왜 강유는 촉의 멸망과 관련해서 그 온갖 비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선은 동시에
오히려 "현명한 군주였다"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상대적으로 덜 비판을 받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하네요.
혹시나 이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분 있으면 얼마든지 댓글토론 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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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캐릭터 중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해? 라고 말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 을 서슴없이 고르고는 합니다.
흔히 <삼국지> 로 알려진 <삼국지연의>에서의 조운은 거의 완벽하다고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삼국 연의에서는 “무패장수” 라고 불릴 정도로 거의 패한적이 없으며 (강유에게 패한 정도밖에는),
지략도 뛰어날 뿐더러 충성심도 굉장히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 게임들에서 나온 조운은 얼굴까지 잘 생겼습니다.
관우나 장비에 비해서 조운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꽃미남의 얼굴을 가지고 젊게 나오기도 하죠.
결국 조운은 현재로 말하자면 뭐 하나 못하는게 없는 좋게 말하자면 오늘날의 엄친아 이며,
조금 심하게 표현자면 “말도 안되는 개사기 캐릭터” 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삼국지연의> 가 아닌 <정사> 로 평가하자!” 라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위나라, 오나라 장수들은 많이 부각되는 반면에 촉나라 장수들은 많이 평가가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나관중 자체가 <삼국지연의> 를 기록할때 “촉나라만세” 주의로 기록을 했고 실제로 많은
촉나라 장수가 위나라 그리고 오나라 장수들보다 훨씬 더 과대포장되는 일이 있긴했죠.

흔히 가장 많이 과장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삼인방이 있으니 바로 관우, 제갈량, 그리고 조운입니다.
일단 평균적으로 말하자면 셋다 부풀려진 부분이 많습니다.
허나 제갈량같은 경우는 오히려 기록되지 정사와 역사 속에서는 언급되지만 연의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많기에 쌤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우와 조운이 저울대에 매달리는데 이번에는 조운에 관해서 적어보고자 합니다.


조운이 과대평가 논란에 시달리는 이유가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정사에서 관우나 장비에 비해서 저술된 양이 적다
2) 정사에서 조운의 직위는 다른 장수들에 비해서 낮다 정도로 압축이 됩니다.

그렇기에 조운은 무력실력은 별로이고, 공도 별로 인도 그저 유선을 구했기에 공로를 인정받았고,
나관중에 삼국지에 의해서 다시 태어났다 정도로 접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조운은 정말로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일단 정사의 기록양을 놓고 그 장수가 훌륭했는지 안 훌륭했는지는 논할 수가 없습니다.
단 조운전의 양이 적은 이유는 바로 조운이 수행했던 임무의 특성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삼국지연의와 다르게 조운은 전장에서의 공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조운의 직업이 바로 “경호실장” 정도 되었던 것이지요.

조운의 직책은 유비를 호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딱히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호위대장이 군주를 버리고 전장에 나가는 것을 보셨나요?
호위장수의 임무는 군주의 옆에서 군주를 보호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조운은 그런 호위장수의 임무를 수행했기에 상대적으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등에 비해서
전장에 나갈기록이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였습니다.

비슷한 예로 최근에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셨다면 김유신(엄태웅)이 밖에서 전쟁하며 상장군이니,
병부령이니 하면서 인기가 늘어나고 월야(주상욱)까지 화장군의 지위를 얻는 동안에
알천(이승효)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선덕여왕 곁에서 여왕을 지키고 있었죠.


그렇다면 조운의 무력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평가받고 있을까요?
물론 <삼국지연의> 에서 나온 조운의 무장은 심하게 과장되어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이름이 있는 무장과 붙어서 싸운 경우가 상당히 적었습니다.

사실 전장에 나갔어도 조운은 후방에 있어서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서는 일이 적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어쨋든 유명한 장수를 벤 적이 없다고 해서 그 장수의 무력이 낮다고 평가할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적어내려가는 증거들을 보면 조운의 무예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저 착하게만 알려진 유비지만 사실 유비의 인용술은 조조 못지 않았습니다.
그런 유비가 자신의 호위를 관우, 장비가 아닌 조운에게 맡기게 됩니다.
실제 조운은 유비를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또한 장판파 전투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운은 유비의 가족의 경호를 맡았습니다.
한 나라의 군주가 자신과 자신의 몸을 맡길 장수로 그저 그런 무력을 가진 장수를 선택하겠습니까? 
 

2) 장판파전투가 과장된 것은 사실입니다.
조운이 상대한 군대는 당연히 80만이 아닌 한 5000명의 정예기병으로 추정됩니다.
80만 vs 1 을 듣다가 5000 vs 1을 들으면 당연히 약해빠져보입니다.
허나 홀몸도 아닌 아이를 안고 가는 상황에서는 한명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듭니다.
만약 조운이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본인과 유선히 무사히 돌아올 수가 있었을까요?
(물론 일부는 차라리 유선이 무사하지 않았었으면 하기도 합니다만...)

3)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게 조운의 한중전입니다.
조조가 총애했던 하후연이 황충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서 조조가 직접 참전을 하고,
사실 황충은 큰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운은 약 몇십명을 이끌고 조조의 대군을 상대하죠.
물론 여기서 “얼마나 대군이었느냐?” 라는 논란도 한참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적어도
천여명 정도로 여겨질때 수십기만 가지고 황충을 구해낼 수 있었다면 조운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잘 알려주는 부면입니다.

4) 마지막으로 조운의 무예의 활약은 그의 나이 70세에 가까웠을 때입니다.
제갈량이 마속을 앞세우고 조운과 등지를 위병으로 사용했던 그 전쟁에서 조운은 조예군의
청년 장교  5명을 살해하는 큰 공을 세웁니다. (연의에서는 이 장수가 한덕과 그의 아들들로 묘사되죠)
70살이나 먹은 노인이 청년 장교 5명을 살해할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그가 애초에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는 장수임을 시사합니다.

이 외에도 그 짧은 기록을 한 진수 역시 조운을 “유방의 하후영과 같다” 라고 칭찬하였고,
그를 아주 뛰어난 장수로 유비도 온 몸이 담력 덩어리다 라고 칭찬을 한 점을 보면 절대
그의 무력이 낮았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 실제의 조운은 어떤 장수였을까요?
정사의 기록이 너무 적지만 그 뒤에 별주를 넣은 배송지의 삼국지주의 따르면
그는 지장이며 시국을 보는 눈이 뛰어난 장수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성직이 올곧아 직설을 잘하기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례를 들자면 유비가 익주 땅을 얻은 이후에 성도의 땅을 자신의 여러장수에게 분배하려고 하자,
조운은 아직 천하가 통일 되지도 않는데 익주의 땅을 빼앗아 분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하여
유비에게 그렇지 말것을 직언했으며 그 결과가 익주가 안정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유비가 관우의 죽음 이후 복수를 하려고 하자 직언을 하며 반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말을 듣지 않는 유비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또한 계양을 점령했을때 조범의 동기를 투항이후의 동기를 잘 분석해내서 거리를 멀리두었고,
기곡에서의 패배에서도 수습을 잘해서 최대한의 피해를 줄이고 퇴각을 하는 등 통솔력과
사물을 보는 뛰어난 눈을 가지고 있는 장수이기도 했습니다.


흔히 기곡에서의 패배를 가르켜 사람들이 조운이 역시 무장으로써는 약하다라고 보는
반면도 있던데 이 역시도 잘못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갈량은 조운-등지를 주력병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용의부활> 에 나오는 점과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인데, 조운과 등지는 버리는 패였던 것입니다.

역시 위에 <선덕여왕> 드라마의 예를 들어본다면 설원이 자신을 본부대로 삼고 김서현을
미끼로 삼아 성동격서를 하게 해서 자신을 승리를 거두고 김서현은 죽든 말던 신경쓰지 않은것…
비슷한 경우입니다.

마속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제갈량은 마속을 선봉으로 세워 가정전투에 임하게 했으며,
그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완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운은 오히려 패배를 최소로 줄인채
깔끔하게 퇴각을 했습니다.
공과 사가 분명하기로 알려진 제갈량 조차 그런 조운을 칭찬해 상을 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조운은 그 상을 거부하고 직책이 강등당하는데 불만없이 따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조운은 정말 과장된 장수였습니까?
단순히 “무인” 으로 보자면 과장된 장수가 맞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원소군 최고의 장수인 문추를 다소 어린나이에 딱히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물리친 점이나,
조인의 30000의 부대를 상대로 한 500명을 이끌고 가서 조인의 팔괘진을 박살낸점이나
70먹은 노인으로써 위의 장군이었던 한덕과 그의 모든 아들을 죽인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판파에서 80만의 조조군을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유선을 구한점 등등이요.

그러나 장수로 보자면 조운은 과장된 바가 없습니다.
장수로서 어긋남이 없었고, 황충을 구하는 장면이나 패배를 수습하는 장면에서 맡겨진 일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막말로 조운은 모두가 다 뚫릴때 끝에서 막는 최고의 수비수이자 수문장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볼때 조운은 정말 삼국지 시대의 촉군에서 유일하게 흠이 잡을때가 없는
촉나라 최고의 무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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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적어보는 글 같습니다.
항상 연예계에 관련된 글들을 적었는데 요즘 생활이 바빠지다보니까 제대로
연예계쪽 이야기를 따라잡지도 못했네요.

그런데 글을 읽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동료 블로거님의 글을 보고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 하나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삼국지" 에 관한 글입니다.
요즘 삼국지에 관해서 많이들 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삼국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런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아마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없는 삼국지일텐데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대부분 "삼국지" 라고 하면 유비가 주인공이고 가장 착한 사람이고
제갈량은 가장 천재이며, 조운은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삼국연의" 를
생각할 것입니다 . 

물론 어렸을때 저도 삼국지를 그런 식으로 접했던 것 같네요.
그런 "삼국연의" 에 영향을 받아서 촉나라를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삼국지 조조전" 과 조조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다른 나라들도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조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관중에 유비의 촉나라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참 여러사람 망쳐놨구나 라고

생각을 할만한 여러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둘씩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많겠지만 오늘은 나관중이 가장 크게 망쳐놓은 몇몇 중
한명인 서황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서황: 허무하게 죽은 위나라에 대들보

위나라 장수 가운데서 가장 높여진 사람이 장료라면 가장 낮춰진 사람중에 하나는 서황일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다 "삼국연의" 에서는 관우의 친구로 묘사되는데 둘다 약간 허무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본다면 서황은 위나라에서 장료와 버금갈만한 훌륭한 장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고 패배를 모르는 장수중에 하나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특히 그는 촉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로 그 상대가 관우였습니다.
아마 이 전쟁에서 거둔 큰 승리때문에 서황이 더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당시 관우는 거의 번성을 함락시키기 직전에까지 갔었고 우금은 항복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황은 겹겹이 포위되어 있던 번성의 포위를 풀고 관우와 직접 맞붙었는데도
관우에게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 외에도 서황은 여포, 원소, 마초 등과의 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하면서 위나라에서도 
가장 공이 많은 장수로써 왜 조조가 서황을 오장군에 한명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듯 위나라의 대들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서황은 "삼국연의" 에서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삼국연의" 에서도 서황은 조조의 오장군중 하나이자 무력이 강한 무장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나관중은 서황의 무예를 더 낮게 묘사했으며 그가 때로는 옹졸한 사람으로도 비춰지게
그려놓았습니다.

관도대전에서 서황은 관우가 단칼에 목을 쳐버린 안량과 겨루다가 결국은 부상을 당해서
도망가는 장수로 묘사됩니다.
관우를 전술로 능가하고 무술도 못지 않았을 서황이 관우가 한 칼에 죽인 안량에게 
패배해서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삼국연의에서는 후에 촉장수가 되는 왕평이 촉으로 귀순하게 된 계기가
서황의 옹졸함때문이라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황이 왕평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결국 서황이 패배했으며 왕평이 그것을 지적하자 분개해서
왕평을 죽이려다가 왕평이 귀순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서황은 군율과 관련해서 엄격했지만 조언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옹졸했다는 기록은
딱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황은 참으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서황은 병에 걸려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국연의에서는 서황이 맹달에게 머리에 화살을 맞아죽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맹달이 위나라를 배신하자 그것을 막으려고 신성으로 갔다가 맹달이 쏜 화살에 맞고 즉사한것이지요.
서황이 나이가 들었다지만 백전노장을 그저 평범한 장수로 여겨졌던  (역사적으로는 딱히
언급이 없었고, 삼국연의에서도 그저그런 장수인) 맹달에게 화살한발로 즉사한다는건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처사라고 밖에 할수가 없겠네요.

이렇듯 서황은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진 비운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관중이 서황의 무예가 출중하다고는 그려놨지만 서황의 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황당한 대목이 주를 이루는 서황의 묘사입니다.



왜 나관중이 서황을 이렇게 일그러지게 묘사했을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관우에 대한 어떤 숭배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기록할 쯤에는 이미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관우를 띄우자니 관우에게 승리를 거둔 한 사람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서황이 그 제물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추측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서황은 삼국연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한참 관우나
다른 장수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삼국지 영걸전이나, 공명전, 심지어 조조전에서도 서황은 상대적으로 약한 궁병으로 나옵니다.

그나마 개인에 의해서 개발된 신조조전에서는 서황이 제대로 오히려 역사와 가깝게
묘사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렇듯 위나라와 오나라 장수들은 촉나라 장수들에 허접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삼국연의를 기록한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졌을 뿐이지요.

다행이 요즘은 삼국연의 만이 아닌 정사에 근거한 영화도 나오고 있고 또한 오나라와 위나라를
중심으로한 게임이나 소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더군요.
어쨋든 혹시 삼국연의를 통해서 서황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한번
조사해보시고 알아보시기를 바래요.

* 추신: 앞으로 이 시리즈를 연예계 이야기 위해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삼국지는 참 알면 알수록 재밌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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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적어보는 글 같습니다.
항상 연예계에 관련된 글들을 적었는데 요즘 생활이 바빠지다보니까 제대로
연예계쪽 이야기를 따라잡지도 못했네요.

그런데 글을 읽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동료 블로거님의 글을 보고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 하나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삼국지" 에 관한 글입니다.
요즘 삼국지에 관해서 많이들 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삼국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런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아마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없는 삼국지일텐데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대부분 "삼국지" 라고 하면 유비가 주인공이고 가장 착한 사람이고
제갈량은 가장 천재이며, 조운은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삼국연의" 를
생각할 것입니다 . 

물론 어렸을때 저도 삼국지를 그런 식으로 접했던 것 같네요.
그런 "삼국연의" 에 영향을 받아서 촉나라를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삼국지 조조전" 과 조조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다른 나라들도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조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관중에 유비의 촉나라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참 여러사람 망쳐놨구나 라고

생각을 할만한 여러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둘씩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많겠지만 오늘은 나관중이 가장 크게 망쳐놓은 몇몇 중
한명인 서황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서황: 허무하게 죽은 위나라에 대들보

위나라 장수 가운데서 가장 높여진 사람이 장료라면 가장 낮춰진 사람중에 하나는 서황일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다 "삼국연의" 에서는 관우의 친구로 묘사되는데 둘다 약간 허무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본다면 서황은 위나라에서 장료와 버금갈만한 훌륭한 장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고 패배를 모르는 장수중에 하나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특히 그는 촉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로 그 상대가 관우였습니다.
아마 이 전쟁에서 거둔 큰 승리때문에 서황이 더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당시 관우는 거의 번성을 함락시키기 직전에까지 갔었고 우금은 항복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황은 겹겹이 포위되어 있던 번성의 포위를 풀고 관우와 직접 맞붙었는데도
관우에게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 외에도 서황은 여포, 원소, 마초 등과의 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하면서 위나라에서도 
가장 공이 많은 장수로써 왜 조조가 서황을 오장군에 한명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듯 위나라의 대들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서황은 "삼국연의" 에서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삼국연의" 에서도 서황은 조조의 오장군중 하나이자 무력이 강한 무장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나관중은 서황의 무예를 더 낮게 묘사했으며 그가 때로는 옹졸한 사람으로도 비춰지게
그려놓았습니다.

관도대전에서 서황은 관우가 단칼에 목을 쳐버린 안량과 겨루다가 결국은 부상을 당해서
도망가는 장수로 묘사됩니다.
관우를 전술로 능가하고 무술도 못지 않았을 서황이 관우가 한 칼에 죽인 안량에게 
패배해서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삼국연의에서는 후에 촉장수가 되는 왕평이 촉으로 귀순하게 된 계기가
서황의 옹졸함때문이라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황이 왕평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결국 서황이 패배했으며 왕평이 그것을 지적하자 분개해서
왕평을 죽이려다가 왕평이 귀순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서황은 군율과 관련해서 엄격했지만 조언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옹졸했다는 기록은
딱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황은 참으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서황은 병에 걸려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국연의에서는 서황이 맹달에게 머리에 화살을 맞아죽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맹달이 위나라를 배신하자 그것을 막으려고 신성으로 갔다가 맹달이 쏜 화살에 맞고 즉사한것이지요.
서황이 나이가 들었다지만 백전노장을 그저 평범한 장수로 여겨졌던  (역사적으로는 딱히
언급이 없었고, 삼국연의에서도 그저그런 장수인) 맹달에게 화살한발로 즉사한다는건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처사라고 밖에 할수가 없겠네요.

이렇듯 서황은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진 비운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관중이 서황의 무예가 출중하다고는 그려놨지만 서황의 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황당한 대목이 주를 이루는 서황의 묘사입니다.



왜 나관중이 서황을 이렇게 일그러지게 묘사했을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관우에 대한 어떤 숭배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기록할 쯤에는 이미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관우를 띄우자니 관우에게 승리를 거둔 한 사람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서황이 그 제물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추측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서황은 삼국연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한참 관우나
다른 장수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삼국지 영걸전이나, 공명전, 심지어 조조전에서도 서황은 상대적으로 약한 궁병으로 나옵니다.

그나마 개인에 의해서 개발된 신조조전에서는 서황이 제대로 오히려 역사와 가깝게
묘사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렇듯 위나라와 오나라 장수들은 촉나라 장수들에 허접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삼국연의를 기록한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졌을 뿐이지요.

다행이 요즘은 삼국연의 만이 아닌 정사에 근거한 영화도 나오고 있고 또한 오나라와 위나라를
중심으로한 게임이나 소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더군요.
어쨋든 혹시 삼국연의를 통해서 서황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한번
조사해보시고 알아보시기를 바래요.

* 추신: 앞으로 이 시리즈를 연예계 이야기 위해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삼국지는 참 알면 알수록 재밌네요. ㅎ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정말 오랜만에 적어보는 글 같습니다.
항상 연예계에 관련된 글들을 적었는데 요즘 생활이 바빠지다보니까 제대로
연예계쪽 이야기를 따라잡지도 못했네요.

그런데 글을 읽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동료 블로거님의 글을 보고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 하나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삼국지" 에 관한 글입니다.
요즘 삼국지에 관해서 많이들 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삼국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런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아마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없는 삼국지일텐데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대부분 "삼국지" 라고 하면 유비가 주인공이고 가장 착한 사람이고
제갈량은 가장 천재이며, 조운은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삼국연의" 를
생각할 것입니다 . 

물론 어렸을때 저도 삼국지를 그런 식으로 접했던 것 같네요.
그런 "삼국연의" 에 영향을 받아서 촉나라를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삼국지 조조전" 과 조조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다른 나라들도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조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관중에 유비의 촉나라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참 여러사람 망쳐놨구나 라고

생각을 할만한 여러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둘씩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많겠지만 오늘은 나관중이 가장 크게 망쳐놓은 몇몇 중
한명인 서황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서황: 허무하게 죽은 위나라에 대들보

위나라 장수 가운데서 가장 높여진 사람이 장료라면 가장 낮춰진 사람중에 하나는 서황일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다 "삼국연의" 에서는 관우의 친구로 묘사되는데 둘다 약간 허무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본다면 서황은 위나라에서 장료와 버금갈만한 훌륭한 장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고 패배를 모르는 장수중에 하나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특히 그는 촉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로 그 상대가 관우였습니다.
아마 이 전쟁에서 거둔 큰 승리때문에 서황이 더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당시 관우는 거의 번성을 함락시키기 직전에까지 갔었고 우금은 항복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황은 겹겹이 포위되어 있던 번성의 포위를 풀고 관우와 직접 맞붙었는데도
관우에게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 외에도 서황은 여포, 원소, 마초 등과의 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하면서 위나라에서도 
가장 공이 많은 장수로써 왜 조조가 서황을 오장군에 한명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듯 위나라의 대들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서황은 "삼국연의" 에서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삼국연의" 에서도 서황은 조조의 오장군중 하나이자 무력이 강한 무장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나관중은 서황의 무예를 더 낮게 묘사했으며 그가 때로는 옹졸한 사람으로도 비춰지게
그려놓았습니다.

관도대전에서 서황은 관우가 단칼에 목을 쳐버린 안량과 겨루다가 결국은 부상을 당해서
도망가는 장수로 묘사됩니다.
관우를 전술로 능가하고 무술도 못지 않았을 서황이 관우가 한 칼에 죽인 안량에게 
패배해서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삼국연의에서는 후에 촉장수가 되는 왕평이 촉으로 귀순하게 된 계기가
서황의 옹졸함때문이라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황이 왕평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결국 서황이 패배했으며 왕평이 그것을 지적하자 분개해서
왕평을 죽이려다가 왕평이 귀순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서황은 군율과 관련해서 엄격했지만 조언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옹졸했다는 기록은
딱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황은 참으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서황은 병에 걸려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국연의에서는 서황이 맹달에게 머리에 화살을 맞아죽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맹달이 위나라를 배신하자 그것을 막으려고 신성으로 갔다가 맹달이 쏜 화살에 맞고 즉사한것이지요.
서황이 나이가 들었다지만 백전노장을 그저 평범한 장수로 여겨졌던  (역사적으로는 딱히
언급이 없었고, 삼국연의에서도 그저그런 장수인) 맹달에게 화살한발로 즉사한다는건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처사라고 밖에 할수가 없겠네요.

이렇듯 서황은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진 비운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관중이 서황의 무예가 출중하다고는 그려놨지만 서황의 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황당한 대목이 주를 이루는 서황의 묘사입니다.



왜 나관중이 서황을 이렇게 일그러지게 묘사했을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관우에 대한 어떤 숭배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기록할 쯤에는 이미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관우를 띄우자니 관우에게 승리를 거둔 한 사람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서황이 그 제물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추측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서황은 삼국연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한참 관우나
다른 장수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삼국지 영걸전이나, 공명전, 심지어 조조전에서도 서황은 상대적으로 약한 궁병으로 나옵니다.

그나마 개인에 의해서 개발된 신조조전에서는 서황이 제대로 오히려 역사와 가깝게
묘사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렇듯 위나라와 오나라 장수들은 촉나라 장수들에 허접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삼국연의를 기록한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졌을 뿐이지요.

다행이 요즘은 삼국연의 만이 아닌 정사에 근거한 영화도 나오고 있고 또한 오나라와 위나라를
중심으로한 게임이나 소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더군요.
어쨋든 혹시 삼국연의를 통해서 서황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한번
조사해보시고 알아보시기를 바래요.

* 추신: 앞으로 이 시리즈를 연예계 이야기 위해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삼국지는 참 알면 알수록 재밌네요. ㅎ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정말 오랜만에 적어보는 글 같습니다.
항상 연예계에 관련된 글들을 적었는데 요즘 생활이 바빠지다보니까 제대로
연예계쪽 이야기를 따라잡지도 못했네요.

그런데 글을 읽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동료 블로거님의 글을 보고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 하나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삼국지" 에 관한 글입니다.
요즘 삼국지에 관해서 많이들 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삼국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런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아마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없는 삼국지일텐데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대부분 "삼국지" 라고 하면 유비가 주인공이고 가장 착한 사람이고
제갈량은 가장 천재이며, 조운은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삼국연의" 를
생각할 것입니다 . 

물론 어렸을때 저도 삼국지를 그런 식으로 접했던 것 같네요.
그런 "삼국연의" 에 영향을 받아서 촉나라를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삼국지 조조전" 과 조조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다른 나라들도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조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관중에 유비의 촉나라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참 여러사람 망쳐놨구나 라고

생각을 할만한 여러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둘씩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많겠지만 오늘은 나관중이 가장 크게 망쳐놓은 몇몇 중
한명인 서황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서황: 허무하게 죽은 위나라에 대들보

위나라 장수 가운데서 가장 높여진 사람이 장료라면 가장 낮춰진 사람중에 하나는 서황일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다 "삼국연의" 에서는 관우의 친구로 묘사되는데 둘다 약간 허무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본다면 서황은 위나라에서 장료와 버금갈만한 훌륭한 장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고 패배를 모르는 장수중에 하나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특히 그는 촉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로 그 상대가 관우였습니다.
아마 이 전쟁에서 거둔 큰 승리때문에 서황이 더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당시 관우는 거의 번성을 함락시키기 직전에까지 갔었고 우금은 항복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황은 겹겹이 포위되어 있던 번성의 포위를 풀고 관우와 직접 맞붙었는데도
관우에게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 외에도 서황은 여포, 원소, 마초 등과의 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하면서 위나라에서도 
가장 공이 많은 장수로써 왜 조조가 서황을 오장군에 한명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듯 위나라의 대들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서황은 "삼국연의" 에서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삼국연의" 에서도 서황은 조조의 오장군중 하나이자 무력이 강한 무장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나관중은 서황의 무예를 더 낮게 묘사했으며 그가 때로는 옹졸한 사람으로도 비춰지게
그려놓았습니다.

관도대전에서 서황은 관우가 단칼에 목을 쳐버린 안량과 겨루다가 결국은 부상을 당해서
도망가는 장수로 묘사됩니다.
관우를 전술로 능가하고 무술도 못지 않았을 서황이 관우가 한 칼에 죽인 안량에게 
패배해서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삼국연의에서는 후에 촉장수가 되는 왕평이 촉으로 귀순하게 된 계기가
서황의 옹졸함때문이라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황이 왕평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결국 서황이 패배했으며 왕평이 그것을 지적하자 분개해서
왕평을 죽이려다가 왕평이 귀순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서황은 군율과 관련해서 엄격했지만 조언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옹졸했다는 기록은
딱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황은 참으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서황은 병에 걸려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국연의에서는 서황이 맹달에게 머리에 화살을 맞아죽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맹달이 위나라를 배신하자 그것을 막으려고 신성으로 갔다가 맹달이 쏜 화살에 맞고 즉사한것이지요.
서황이 나이가 들었다지만 백전노장을 그저 평범한 장수로 여겨졌던  (역사적으로는 딱히
언급이 없었고, 삼국연의에서도 그저그런 장수인) 맹달에게 화살한발로 즉사한다는건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처사라고 밖에 할수가 없겠네요.

이렇듯 서황은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진 비운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관중이 서황의 무예가 출중하다고는 그려놨지만 서황의 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황당한 대목이 주를 이루는 서황의 묘사입니다.



왜 나관중이 서황을 이렇게 일그러지게 묘사했을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관우에 대한 어떤 숭배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기록할 쯤에는 이미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관우를 띄우자니 관우에게 승리를 거둔 한 사람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서황이 그 제물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추측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서황은 삼국연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한참 관우나
다른 장수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삼국지 영걸전이나, 공명전, 심지어 조조전에서도 서황은 상대적으로 약한 궁병으로 나옵니다.

그나마 개인에 의해서 개발된 신조조전에서는 서황이 제대로 오히려 역사와 가깝게
묘사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렇듯 위나라와 오나라 장수들은 촉나라 장수들에 허접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삼국연의를 기록한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졌을 뿐이지요.

다행이 요즘은 삼국연의 만이 아닌 정사에 근거한 영화도 나오고 있고 또한 오나라와 위나라를
중심으로한 게임이나 소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더군요.
어쨋든 혹시 삼국연의를 통해서 서황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한번
조사해보시고 알아보시기를 바래요.

* 추신: 앞으로 이 시리즈를 연예계 이야기 위해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삼국지는 참 알면 알수록 재밌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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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적어보는 글 같습니다.
항상 연예계에 관련된 글들을 적었는데 요즘 생활이 바빠지다보니까 제대로
연예계쪽 이야기를 따라잡지도 못했네요.

그런데 글을 읽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동료 블로거님의 글을 보고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 하나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삼국지" 에 관한 글입니다.
요즘 삼국지에 관해서 많이들 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삼국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런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아마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없는 삼국지일텐데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대부분 "삼국지" 라고 하면 유비가 주인공이고 가장 착한 사람이고
제갈량은 가장 천재이며, 조운은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삼국연의" 를
생각할 것입니다 . 

물론 어렸을때 저도 삼국지를 그런 식으로 접했던 것 같네요.
그런 "삼국연의" 에 영향을 받아서 촉나라를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삼국지 조조전" 과 조조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다른 나라들도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조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관중에 유비의 촉나라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참 여러사람 망쳐놨구나 라고

생각을 할만한 여러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둘씩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많겠지만 오늘은 나관중이 가장 크게 망쳐놓은 몇몇 중
한명인 서황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서황: 허무하게 죽은 위나라에 대들보

위나라 장수 가운데서 가장 높여진 사람이 장료라면 가장 낮춰진 사람중에 하나는 서황일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다 "삼국연의" 에서는 관우의 친구로 묘사되는데 둘다 약간 허무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본다면 서황은 위나라에서 장료와 버금갈만한 훌륭한 장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고 패배를 모르는 장수중에 하나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특히 그는 촉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로 그 상대가 관우였습니다.
아마 이 전쟁에서 거둔 큰 승리때문에 서황이 더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당시 관우는 거의 번성을 함락시키기 직전에까지 갔었고 우금은 항복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황은 겹겹이 포위되어 있던 번성의 포위를 풀고 관우와 직접 맞붙었는데도
관우에게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 외에도 서황은 여포, 원소, 마초 등과의 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하면서 위나라에서도 
가장 공이 많은 장수로써 왜 조조가 서황을 오장군에 한명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듯 위나라의 대들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서황은 "삼국연의" 에서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삼국연의" 에서도 서황은 조조의 오장군중 하나이자 무력이 강한 무장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나관중은 서황의 무예를 더 낮게 묘사했으며 그가 때로는 옹졸한 사람으로도 비춰지게
그려놓았습니다.

관도대전에서 서황은 관우가 단칼에 목을 쳐버린 안량과 겨루다가 결국은 부상을 당해서
도망가는 장수로 묘사됩니다.
관우를 전술로 능가하고 무술도 못지 않았을 서황이 관우가 한 칼에 죽인 안량에게 
패배해서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삼국연의에서는 후에 촉장수가 되는 왕평이 촉으로 귀순하게 된 계기가
서황의 옹졸함때문이라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황이 왕평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결국 서황이 패배했으며 왕평이 그것을 지적하자 분개해서
왕평을 죽이려다가 왕평이 귀순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서황은 군율과 관련해서 엄격했지만 조언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옹졸했다는 기록은
딱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황은 참으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서황은 병에 걸려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국연의에서는 서황이 맹달에게 머리에 화살을 맞아죽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맹달이 위나라를 배신하자 그것을 막으려고 신성으로 갔다가 맹달이 쏜 화살에 맞고 즉사한것이지요.
서황이 나이가 들었다지만 백전노장을 그저 평범한 장수로 여겨졌던  (역사적으로는 딱히
언급이 없었고, 삼국연의에서도 그저그런 장수인) 맹달에게 화살한발로 즉사한다는건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처사라고 밖에 할수가 없겠네요.

이렇듯 서황은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진 비운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관중이 서황의 무예가 출중하다고는 그려놨지만 서황의 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황당한 대목이 주를 이루는 서황의 묘사입니다.



왜 나관중이 서황을 이렇게 일그러지게 묘사했을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관우에 대한 어떤 숭배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기록할 쯤에는 이미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관우를 띄우자니 관우에게 승리를 거둔 한 사람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서황이 그 제물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추측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서황은 삼국연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한참 관우나
다른 장수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삼국지 영걸전이나, 공명전, 심지어 조조전에서도 서황은 상대적으로 약한 궁병으로 나옵니다.

그나마 개인에 의해서 개발된 신조조전에서는 서황이 제대로 오히려 역사와 가깝게
묘사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렇듯 위나라와 오나라 장수들은 촉나라 장수들에 허접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삼국연의를 기록한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졌을 뿐이지요.

다행이 요즘은 삼국연의 만이 아닌 정사에 근거한 영화도 나오고 있고 또한 오나라와 위나라를
중심으로한 게임이나 소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더군요.
어쨋든 혹시 삼국연의를 통해서 서황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한번
조사해보시고 알아보시기를 바래요.

* 추신: 앞으로 이 시리즈를 연예계 이야기 위해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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