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소설사이/삼국지 인물비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1.10 <삼국지> 조운은 과연 과대평가된 장수였을까? (25)
  2. 2012.10.28 서황 - 나관중에 의해 일그러진 위나라의 대들보 (14)

삼국지 캐릭터 중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해? 라고 말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 을 서슴없이 고르고는 합니다.
흔히 <삼국지> 로 알려진 <삼국지연의>에서의 조운은 거의 완벽하다고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삼국 연의에서는 “무패장수” 라고 불릴 정도로 거의 패한적이 없으며 (강유에게 패한 정도밖에는),
지략도 뛰어날 뿐더러 충성심도 굉장히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 게임들에서 나온 조운은 얼굴까지 잘 생겼습니다.
관우나 장비에 비해서 조운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꽃미남의 얼굴을 가지고 젊게 나오기도 하죠.
결국 조운은 현재로 말하자면 뭐 하나 못하는게 없는 좋게 말하자면 오늘날의 엄친아 이며,
조금 심하게 표현자면 “말도 안되는 개사기 캐릭터” 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삼국지연의> 가 아닌 <정사> 로 평가하자!” 라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위나라, 오나라 장수들은 많이 부각되는 반면에 촉나라 장수들은 많이 평가가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나관중 자체가 <삼국지연의> 를 기록할때 “촉나라만세” 주의로 기록을 했고 실제로 많은
촉나라 장수가 위나라 그리고 오나라 장수들보다 훨씬 더 과대포장되는 일이 있긴했죠.

흔히 가장 많이 과장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삼인방이 있으니 바로 관우, 제갈량, 그리고 조운입니다.
일단 평균적으로 말하자면 셋다 부풀려진 부분이 많습니다.
허나 제갈량같은 경우는 오히려 기록되지 정사와 역사 속에서는 언급되지만 연의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많기에 쌤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우와 조운이 저울대에 매달리는데 이번에는 조운에 관해서 적어보고자 합니다.


조운이 과대평가 논란에 시달리는 이유가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정사에서 관우나 장비에 비해서 저술된 양이 적다
2) 정사에서 조운의 직위는 다른 장수들에 비해서 낮다 정도로 압축이 됩니다.

그렇기에 조운은 무력실력은 별로이고, 공도 별로 인도 그저 유선을 구했기에 공로를 인정받았고,
나관중에 삼국지에 의해서 다시 태어났다 정도로 접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조운은 정말로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일단 정사의 기록양을 놓고 그 장수가 훌륭했는지 안 훌륭했는지는 논할 수가 없습니다.
단 조운전의 양이 적은 이유는 바로 조운이 수행했던 임무의 특성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삼국지연의와 다르게 조운은 전장에서의 공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조운의 직업이 바로 “경호실장” 정도 되었던 것이지요.

조운의 직책은 유비를 호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딱히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호위대장이 군주를 버리고 전장에 나가는 것을 보셨나요?
호위장수의 임무는 군주의 옆에서 군주를 보호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조운은 그런 호위장수의 임무를 수행했기에 상대적으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등에 비해서
전장에 나갈기록이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였습니다.

비슷한 예로 최근에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셨다면 김유신(엄태웅)이 밖에서 전쟁하며 상장군이니,
병부령이니 하면서 인기가 늘어나고 월야(주상욱)까지 화장군의 지위를 얻는 동안에
알천(이승효)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선덕여왕 곁에서 여왕을 지키고 있었죠.


그렇다면 조운의 무력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평가받고 있을까요?
물론 <삼국지연의> 에서 나온 조운의 무장은 심하게 과장되어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이름이 있는 무장과 붙어서 싸운 경우가 상당히 적었습니다.

사실 전장에 나갔어도 조운은 후방에 있어서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서는 일이 적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어쨋든 유명한 장수를 벤 적이 없다고 해서 그 장수의 무력이 낮다고 평가할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적어내려가는 증거들을 보면 조운의 무예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저 착하게만 알려진 유비지만 사실 유비의 인용술은 조조 못지 않았습니다.
그런 유비가 자신의 호위를 관우, 장비가 아닌 조운에게 맡기게 됩니다.
실제 조운은 유비를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또한 장판파 전투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운은 유비의 가족의 경호를 맡았습니다.
한 나라의 군주가 자신과 자신의 몸을 맡길 장수로 그저 그런 무력을 가진 장수를 선택하겠습니까? 
 

2) 장판파전투가 과장된 것은 사실입니다.
조운이 상대한 군대는 당연히 80만이 아닌 한 5000명의 정예기병으로 추정됩니다.
80만 vs 1 을 듣다가 5000 vs 1을 들으면 당연히 약해빠져보입니다.
허나 홀몸도 아닌 아이를 안고 가는 상황에서는 한명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듭니다.
만약 조운이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본인과 유선히 무사히 돌아올 수가 있었을까요?
(물론 일부는 차라리 유선이 무사하지 않았었으면 하기도 합니다만...)

3)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게 조운의 한중전입니다.
조조가 총애했던 하후연이 황충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서 조조가 직접 참전을 하고,
사실 황충은 큰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운은 약 몇십명을 이끌고 조조의 대군을 상대하죠.
물론 여기서 “얼마나 대군이었느냐?” 라는 논란도 한참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적어도
천여명 정도로 여겨질때 수십기만 가지고 황충을 구해낼 수 있었다면 조운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잘 알려주는 부면입니다.

4) 마지막으로 조운의 무예의 활약은 그의 나이 70세에 가까웠을 때입니다.
제갈량이 마속을 앞세우고 조운과 등지를 위병으로 사용했던 그 전쟁에서 조운은 조예군의
청년 장교  5명을 살해하는 큰 공을 세웁니다. (연의에서는 이 장수가 한덕과 그의 아들들로 묘사되죠)
70살이나 먹은 노인이 청년 장교 5명을 살해할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그가 애초에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는 장수임을 시사합니다.

이 외에도 그 짧은 기록을 한 진수 역시 조운을 “유방의 하후영과 같다” 라고 칭찬하였고,
그를 아주 뛰어난 장수로 유비도 온 몸이 담력 덩어리다 라고 칭찬을 한 점을 보면 절대
그의 무력이 낮았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 실제의 조운은 어떤 장수였을까요?
정사의 기록이 너무 적지만 그 뒤에 별주를 넣은 배송지의 삼국지주의 따르면
그는 지장이며 시국을 보는 눈이 뛰어난 장수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성직이 올곧아 직설을 잘하기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례를 들자면 유비가 익주 땅을 얻은 이후에 성도의 땅을 자신의 여러장수에게 분배하려고 하자,
조운은 아직 천하가 통일 되지도 않는데 익주의 땅을 빼앗아 분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하여
유비에게 그렇지 말것을 직언했으며 그 결과가 익주가 안정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유비가 관우의 죽음 이후 복수를 하려고 하자 직언을 하며 반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말을 듣지 않는 유비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또한 계양을 점령했을때 조범의 동기를 투항이후의 동기를 잘 분석해내서 거리를 멀리두었고,
기곡에서의 패배에서도 수습을 잘해서 최대한의 피해를 줄이고 퇴각을 하는 등 통솔력과
사물을 보는 뛰어난 눈을 가지고 있는 장수이기도 했습니다.


흔히 기곡에서의 패배를 가르켜 사람들이 조운이 역시 무장으로써는 약하다라고 보는
반면도 있던데 이 역시도 잘못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갈량은 조운-등지를 주력병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용의부활> 에 나오는 점과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인데, 조운과 등지는 버리는 패였던 것입니다.

역시 위에 <선덕여왕> 드라마의 예를 들어본다면 설원이 자신을 본부대로 삼고 김서현을
미끼로 삼아 성동격서를 하게 해서 자신을 승리를 거두고 김서현은 죽든 말던 신경쓰지 않은것…
비슷한 경우입니다.

마속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제갈량은 마속을 선봉으로 세워 가정전투에 임하게 했으며,
그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완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운은 오히려 패배를 최소로 줄인채
깔끔하게 퇴각을 했습니다.
공과 사가 분명하기로 알려진 제갈량 조차 그런 조운을 칭찬해 상을 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조운은 그 상을 거부하고 직책이 강등당하는데 불만없이 따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조운은 정말 과장된 장수였습니까?
단순히 “무인” 으로 보자면 과장된 장수가 맞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원소군 최고의 장수인 문추를 다소 어린나이에 딱히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물리친 점이나,
조인의 30000의 부대를 상대로 한 500명을 이끌고 가서 조인의 팔괘진을 박살낸점이나
70먹은 노인으로써 위의 장군이었던 한덕과 그의 모든 아들을 죽인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판파에서 80만의 조조군을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유선을 구한점 등등이요.

그러나 장수로 보자면 조운은 과장된 바가 없습니다.
장수로서 어긋남이 없었고, 황충을 구하는 장면이나 패배를 수습하는 장면에서 맡겨진 일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막말로 조운은 모두가 다 뚫릴때 끝에서 막는 최고의 수비수이자 수문장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볼때 조운은 정말 삼국지 시대의 촉군에서 유일하게 흠이 잡을때가 없는
촉나라 최고의 무장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적어보는 글 같습니다.
항상 연예계에 관련된 글들을 적었는데 요즘 생활이 바빠지다보니까 제대로
연예계쪽 이야기를 따라잡지도 못했네요.

그런데 글을 읽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동료 블로거님의 글을 보고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 하나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삼국지" 에 관한 글입니다.
요즘 삼국지에 관해서 많이들 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삼국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런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아마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없는 삼국지일텐데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대부분 "삼국지" 라고 하면 유비가 주인공이고 가장 착한 사람이고
제갈량은 가장 천재이며, 조운은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삼국연의" 를
생각할 것입니다 . 

물론 어렸을때 저도 삼국지를 그런 식으로 접했던 것 같네요.
그런 "삼국연의" 에 영향을 받아서 촉나라를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삼국지 조조전" 과 조조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다른 나라들도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조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관중에 유비의 촉나라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참 여러사람 망쳐놨구나 라고

생각을 할만한 여러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둘씩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많겠지만 오늘은 나관중이 가장 크게 망쳐놓은 몇몇 중
한명인 서황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서황: 허무하게 죽은 위나라에 대들보

위나라 장수 가운데서 가장 높여진 사람이 장료라면 가장 낮춰진 사람중에 하나는 서황일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다 "삼국연의" 에서는 관우의 친구로 묘사되는데 둘다 약간 허무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본다면 서황은 위나라에서 장료와 버금갈만한 훌륭한 장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고 패배를 모르는 장수중에 하나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특히 그는 촉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로 그 상대가 관우였습니다.
아마 이 전쟁에서 거둔 큰 승리때문에 서황이 더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당시 관우는 거의 번성을 함락시키기 직전에까지 갔었고 우금은 항복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황은 겹겹이 포위되어 있던 번성의 포위를 풀고 관우와 직접 맞붙었는데도
관우에게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 외에도 서황은 여포, 원소, 마초 등과의 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하면서 위나라에서도 
가장 공이 많은 장수로써 왜 조조가 서황을 오장군에 한명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듯 위나라의 대들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서황은 "삼국연의" 에서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삼국연의" 에서도 서황은 조조의 오장군중 하나이자 무력이 강한 무장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나관중은 서황의 무예를 더 낮게 묘사했으며 그가 때로는 옹졸한 사람으로도 비춰지게
그려놓았습니다.

관도대전에서 서황은 관우가 단칼에 목을 쳐버린 안량과 겨루다가 결국은 부상을 당해서
도망가는 장수로 묘사됩니다.
관우를 전술로 능가하고 무술도 못지 않았을 서황이 관우가 한 칼에 죽인 안량에게 
패배해서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삼국연의에서는 후에 촉장수가 되는 왕평이 촉으로 귀순하게 된 계기가
서황의 옹졸함때문이라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황이 왕평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결국 서황이 패배했으며 왕평이 그것을 지적하자 분개해서
왕평을 죽이려다가 왕평이 귀순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서황은 군율과 관련해서 엄격했지만 조언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옹졸했다는 기록은
딱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황은 참으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서황은 병에 걸려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국연의에서는 서황이 맹달에게 머리에 화살을 맞아죽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맹달이 위나라를 배신하자 그것을 막으려고 신성으로 갔다가 맹달이 쏜 화살에 맞고 즉사한것이지요.
서황이 나이가 들었다지만 백전노장을 그저 평범한 장수로 여겨졌던  (역사적으로는 딱히
언급이 없었고, 삼국연의에서도 그저그런 장수인) 맹달에게 화살한발로 즉사한다는건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처사라고 밖에 할수가 없겠네요.

이렇듯 서황은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진 비운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관중이 서황의 무예가 출중하다고는 그려놨지만 서황의 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황당한 대목이 주를 이루는 서황의 묘사입니다.



왜 나관중이 서황을 이렇게 일그러지게 묘사했을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관우에 대한 어떤 숭배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기록할 쯤에는 이미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관우를 띄우자니 관우에게 승리를 거둔 한 사람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서황이 그 제물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추측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서황은 삼국연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한참 관우나
다른 장수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삼국지 영걸전이나, 공명전, 심지어 조조전에서도 서황은 상대적으로 약한 궁병으로 나옵니다.

그나마 개인에 의해서 개발된 신조조전에서는 서황이 제대로 오히려 역사와 가깝게
묘사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렇듯 위나라와 오나라 장수들은 촉나라 장수들에 허접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삼국연의를 기록한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졌을 뿐이지요.

다행이 요즘은 삼국연의 만이 아닌 정사에 근거한 영화도 나오고 있고 또한 오나라와 위나라를
중심으로한 게임이나 소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더군요.
어쨋든 혹시 삼국연의를 통해서 서황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한번
조사해보시고 알아보시기를 바래요.

* 추신: 앞으로 이 시리즈를 연예계 이야기 위해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삼국지는 참 알면 알수록 재밌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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