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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삼국지에 관한 글로 블로깅을 하게 되네요. 
사실 제 삼국지 두번째 포스팅에 이미 언급이 되었던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조운, 과연 과장된 장수 인가?” 편에서는 조운의 실제 능력이 어땠을까 하고 적어보았습니다. 
그 글에서는 조운의 능력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말을 몇마디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의 무력 자체를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 (1 : 1000 만 놓고보더라도 대군인 겁니다) 을 상대로 유선을 구했다는 점,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써 황충을 구하고 위장계를 써서 조조를 대패시킨 점등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우, 장비, 마초 그리고 황충보다 (이상 관장마황) 직위가 낮다는 점이나 
조운의 직위인 “순평후” 마저도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늦게 수여되었다는 점을 들어 바로 
조운이 다른 소위 말해 “오호대장” 마저도 못한 장군이라고 이야기들을 하고는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 안목이 높다는 유비가 살아생전에는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은 점을 생각해보면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어떤 사령관보다는 선봉장에 가깝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통솔력이나 군을 이끄는 능력은 관우, 장비, 심지어 마초, 황충보다 못하다는 공식이
설립되고 있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과연 파헤쳐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과연 장군이자 총사령관의 능력으로 볼때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못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먼저 유비의 안목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유비에 안목에 관해서는 마속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장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유비는 죽기전에 제갈량에게 마속에게 중대사를 맡기지 말 것을 명령했는데,
제갈량은 마속을 신뢰했던 터라 그런 유비의 말을 무시하고 가정 전투를 맡겼고
결국에는 가정에서 마속이 대패하는 바람에 촉군의 북벌을 실패하게 되었죠.

그 일로 인해 "유비의 안목은 정확하다" 라는 공식이 서게 된 것이지요. 
그런 유비가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았기에 조운이 장군으로써
실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유비의 안목은 완벽했던 것일까요? 

유비군 내에서 가장 많이 대군을 이끌었던 관우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삼국지연의> 에서는 유비의 의형제이고 정사서도 유비군 제2인자로 여겨지는 관우는
사실 유비의 장수들 모두를 통틀어 가장 많은 패배를 경험한 장군입니다.
형주에서의 관우의 전투를 살펴보면 (유비가 익주로 떠나기 전후 모두다) 승리한 전투가 없거든요.

적벽대전 이후에 관우는 유비의 명령으로 강릉을 탈환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지만,
오히려 문빙에게 격파 당하는 일이 있었고, 지원군으로 이통이 달려오기에 그를 막아보려 했으나,
사실 이통을 저지하는데도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유비가 익주를 점령한 후에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 반환을 요구했고, 
유비가 거부하자 손권이 공격했는데 그 후에 반격을 하려 했으나 감녕과 노숙의 방어에 섣불리
공격을 하지도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비와 손권이 협정을 맺은 후에 관우는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조인의 번성을 치는데,
번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으며 후에는 서황의 지원군에 의해 철저히 격파 당하게 됩니다.
관우가 형주에 있는 동안 거둔 승리는 방덕과 우금이 지원군으로 왔을때 홍수가 일어나서
그들을 붙잡은게 유일한 승리 기록입니다.
이렇게 패배기록이 수두룩 한 관우에게 유비는 큰 군권을 맡긴 것입니다.
이런 유비의 안목이 완벽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왜 조운에게만 "유비의 안목" 을 적용하는지 참 궁금한 점입니다. 
오히려 관우, 장비와 같은 경우에는 더 오랫동안 유비와 함께 했기에
유비가 군권을 더 많이 줬다고 생각을 해볼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조운보다 더 늦게 들어온 마초나 황충의 경우는 어떨까요?
물론 이들은 조운이 맡지 못한 대군을 거느렸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조운보다 더 뛰어난 장군으로써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까?

황충 같은 경우에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살해하는 (일대일이라기 보다는 전장에서) 공을 세우긴 하지만,
그 역시 조운에게 구원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초 역시 한중전에서 장비와 함께 패배해 자신의 부장인 오란을 전쟁에서 잃었던 실적이 있습니다. 
사실 관장마황의 전적을 비교해보면 큰 군대를 맡았다 뿐이지 정작 조운보다 나은 실적을 
보여준 면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장수로써 관장마황이 조운 보다 낫다는 의견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비는 조운에게 큰 군원을 일임하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유비만이 알겠지만 아마 다른 장수들보다 조운이 내부의 일과 집안통솔을 
더 잘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주방에 요리사가 있는데 한 명은 웬만하면 요리를 하지 않고, 
음식재료 체크, 주문 등에 신경쓴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바로 그 한명의 요리사가  다른 네 명보다 요리를 못한다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본다면, 
그 주문, 음식재료 체크 등을 맡은 요리사가 다른 요리사보다 더 그면에서는 능숙하기에
그 면을 맡아서 하는 경우 일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조운은 주로 유비 군의 내부적인 통솔과 관리를 하고는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유비의 가족문제에도 개입을 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미 유비의 부인을 보호하고
모신 관우가 있는데도 조운에게 그 책임이 주로 돌아갔다는 점이지요.  
군주가 자기의 가족을 맡길 정도의 신뢰심이 있다는 건 아주 중하게 쓴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유비가 익주로 참정을 할때 손부인 (손상향) 의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그녀의 시위녀들이 자주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일이 자자했는데 유비는 조운에게 손부인의 감시와 함께
내부적인 일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겨놓았습니다.
그 당시에 관우와 장비가 버젓이 형주에 있었는데도 조운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을 보면 그만큼
조운이 
내부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했고 그 부면으로는 장비, 관우보다 위에 있었기에
조운에게 그 일이 돌아갔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말을 정리해보자면 조운이
큰 군권을 얻지 못한 이유는 굳이 그의 능력부족이라는 것보다,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내부적인 일이나 오늘날로 말하자면 경호대장 및 비서실장으로써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유비는 그 적임자로 조운을 생각했고 조운을 그쪽으로 임명했기에,
굳이 조운이 큰 군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장군으로써 못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추리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실제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실적이 어떠했을까요? 
조운은 큰 군을 다스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군권이 주어졌을때
절대 실패하지 않는 철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안을 항복시킨 장비에 묻히기는 했지만,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삼 군의 지휘장중 하나로써
깔끔하게 익주로 진입을 해서 유비를 도와주었습니다. 

또 이미 언급한 한중전투에서 수십기만 을 가지고 조운은 황충을 구출해내고 거기에 더해
위장계로 
조조를 퇴각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릉전투에서 유비를 쫓아오는 손권군을 상대로 조운은 그들의 진격을 막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반격을까지 해서 손권군을 물려서 휴전상태로 만들어 놓는데도 일을 하기도 했지요. 
유비 생전에도 조운은 군이 주어졌다하면 패배한적이 없는 뛰어난 장군이었습니다. 


 
유비가 죽자 조운은 그제서야 유비에게 군권을 부여받습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유비는 영리하게도 그 상태에서 조운에게
군권을 일임했죠.
세력이 커져가는 제갈량을 견제한 유비의 한 수였다고도 볼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 시점까지는 조운은 전장에서 한차례도 패한적이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후에 북벌에서는 조운이 이끄는 군사가 유일하게 패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바로 기곡에서 조진이 이끄는 대군에 맞서서 조운이 패배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전투에서 조운에게 패전의 책임이 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를,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조운의 패배에 이유에 관해 제갈량이 마속에게 공을 세워주기 위해서 약한 군사들을 
조운과 등지에게 맡기고 자신과 마속이 정예병을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곡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조운은 장군으로써, 그리고 군의 총사령관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어렵다는 퇴각에서 “퇴각의 귀신” 이라고 불리는 제갈량마저도
깜짝 놀라게 한 
깔끔한 퇴각을 보여준 것이지요. 

추격군의 선봉장들의 목숨을 앗았을 뿐만 아니라 군량물자를 하나 잃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퇴각했다는 점을 보면 조운이 장군이자 총사령관으로써의
능력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장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고, 심지어 패배해서 퇴각하는데도 한치의
오차와 실수없이 깔끔하게
퇴각하는 장군이었던 조운이 굳이 군을 통솔하는 능력이
관장마황보다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촉의 장수들을 언급할때 흔히 촉나라 장수들은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촉의 장수들 중에 특히 관우가 가장 부풀려졌다는 건 파헤쳐보면 맞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제갈량과 조운 같은 경우에는 파보면 파볼수록 소설과 가까웠던 사람 내지 소설보다
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운 같은 경우는 소설과 정사가 거의 겹치는 사람입니다.
단 연의에서 유비를 만나기 전의 인생이 조금 더 미화되었다는 점 (국의를 한칼에 죽인점이나,
문추와 대등하게 싸웠다는 점이나) 이 조운을 과대평가 장수로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삼국지 시대에 가장 실수가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가 바로 조운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더 잘 알 수 있는 부면이지요.

이런 조운을 삼국지 시대에 가장 완벽한 장수 라고 부르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과장이 아깝지 않은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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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삼국지에 관한 글로 블로깅을 하게 되네요. 
사실 제 삼국지 두번째 포스팅에 이미 언급이 되었던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조운, 과연 과장된 장수 인가?” 편에서는 조운의 실제 능력이 어땠을까 하고 적어보았습니다. 
그 글에서는 조운의 능력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말을 몇마디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의 무력 자체를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 (1 : 1000 만 놓고보더라도 대군인 겁니다) 을 상대로 유선을 구했다는 점,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써 황충을 구하고 위장계를 써서 조조를 대패시킨 점등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우, 장비, 마초 그리고 황충보다 (이상 관장마황) 직위가 낮다는 점이나 
조운의 직위인 “순평후” 마저도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늦게 수여되었다는 점을 들어 바로 
조운이 다른 소위 말해 “오호대장” 마저도 못한 장군이라고 이야기들을 하고는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 안목이 높다는 유비가 살아생전에는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은 점을 생각해보면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어떤 사령관보다는 선봉장에 가깝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통솔력이나 군을 이끄는 능력은 관우, 장비, 심지어 마초, 황충보다 못하다는 공식이
설립되고 있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과연 파헤쳐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과연 장군이자 총사령관의 능력으로 볼때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못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먼저 유비의 안목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유비에 안목에 관해서는 마속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장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유비는 죽기전에 제갈량에게 마속에게 중대사를 맡기지 말 것을 명령했는데,
제갈량은 마속을 신뢰했던 터라 그런 유비의 말을 무시하고 가정 전투를 맡겼고
결국에는 가정에서 마속이 대패하는 바람에 촉군의 북벌을 실패하게 되었죠.

그 일로 인해 "유비의 안목은 정확하다" 라는 공식이 서게 된 것이지요. 
그런 유비가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았기에 조운이 장군으로써
실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유비의 안목은 완벽했던 것일까요? 

유비군 내에서 가장 많이 대군을 이끌었던 관우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삼국지연의> 에서는 유비의 의형제이고 정사서도 유비군 제2인자로 여겨지는 관우는
사실 유비의 장수들 모두를 통틀어 가장 많은 패배를 경험한 장군입니다.
형주에서의 관우의 전투를 살펴보면 (유비가 익주로 떠나기 전후 모두다) 승리한 전투가 없거든요.

적벽대전 이후에 관우는 유비의 명령으로 강릉을 탈환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지만,
오히려 문빙에게 격파 당하는 일이 있었고, 지원군으로 이통이 달려오기에 그를 막아보려 했으나,
사실 이통을 저지하는데도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유비가 익주를 점령한 후에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 반환을 요구했고, 
유비가 거부하자 손권이 공격했는데 그 후에 반격을 하려 했으나 감녕과 노숙의 방어에 섣불리
공격을 하지도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비와 손권이 협정을 맺은 후에 관우는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조인의 번성을 치는데,
번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으며 후에는 서황의 지원군에 의해 철저히 격파 당하게 됩니다.
관우가 형주에 있는 동안 거둔 승리는 방덕과 우금이 지원군으로 왔을때 홍수가 일어나서
그들을 붙잡은게 유일한 승리 기록입니다.
이렇게 패배기록이 수두룩 한 관우에게 유비는 큰 군권을 맡긴 것입니다.
이런 유비의 안목이 완벽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왜 조운에게만 "유비의 안목" 을 적용하는지 참 궁금한 점입니다. 
오히려 관우, 장비와 같은 경우에는 더 오랫동안 유비와 함께 했기에
유비가 군권을 더 많이 줬다고 생각을 해볼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조운보다 더 늦게 들어온 마초나 황충의 경우는 어떨까요?
물론 이들은 조운이 맡지 못한 대군을 거느렸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조운보다 더 뛰어난 장군으로써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까?

황충 같은 경우에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살해하는 (일대일이라기 보다는 전장에서) 공을 세우긴 하지만,
그 역시 조운에게 구원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초 역시 한중전에서 장비와 함께 패배해 자신의 부장인 오란을 전쟁에서 잃었던 실적이 있습니다. 
사실 관장마황의 전적을 비교해보면 큰 군대를 맡았다 뿐이지 정작 조운보다 나은 실적을 
보여준 면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장수로써 관장마황이 조운 보다 낫다는 의견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비는 조운에게 큰 군원을 일임하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유비만이 알겠지만 아마 다른 장수들보다 조운이 내부의 일과 집안통솔을 
더 잘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주방에 요리사가 있는데 한 명은 웬만하면 요리를 하지 않고, 
음식재료 체크, 주문 등에 신경쓴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바로 그 한명의 요리사가  다른 네 명보다 요리를 못한다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본다면, 
그 주문, 음식재료 체크 등을 맡은 요리사가 다른 요리사보다 더 그면에서는 능숙하기에
그 면을 맡아서 하는 경우 일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조운은 주로 유비 군의 내부적인 통솔과 관리를 하고는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유비의 가족문제에도 개입을 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미 유비의 부인을 보호하고
모신 관우가 있는데도 조운에게 그 책임이 주로 돌아갔다는 점이지요.  
군주가 자기의 가족을 맡길 정도의 신뢰심이 있다는 건 아주 중하게 쓴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유비가 익주로 참정을 할때 손부인 (손상향) 의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그녀의 시위녀들이 자주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일이 자자했는데 유비는 조운에게 손부인의 감시와 함께
내부적인 일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겨놓았습니다.
그 당시에 관우와 장비가 버젓이 형주에 있었는데도 조운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을 보면 그만큼
조운이 
내부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했고 그 부면으로는 장비, 관우보다 위에 있었기에
조운에게 그 일이 돌아갔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말을 정리해보자면 조운이
큰 군권을 얻지 못한 이유는 굳이 그의 능력부족이라는 것보다,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내부적인 일이나 오늘날로 말하자면 경호대장 및 비서실장으로써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유비는 그 적임자로 조운을 생각했고 조운을 그쪽으로 임명했기에,
굳이 조운이 큰 군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장군으로써 못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추리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실제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실적이 어떠했을까요? 
조운은 큰 군을 다스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군권이 주어졌을때
절대 실패하지 않는 철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안을 항복시킨 장비에 묻히기는 했지만,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삼 군의 지휘장중 하나로써
깔끔하게 익주로 진입을 해서 유비를 도와주었습니다. 

또 이미 언급한 한중전투에서 수십기만 을 가지고 조운은 황충을 구출해내고 거기에 더해
위장계로 
조조를 퇴각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릉전투에서 유비를 쫓아오는 손권군을 상대로 조운은 그들의 진격을 막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반격을까지 해서 손권군을 물려서 휴전상태로 만들어 놓는데도 일을 하기도 했지요. 
유비 생전에도 조운은 군이 주어졌다하면 패배한적이 없는 뛰어난 장군이었습니다. 


 
유비가 죽자 조운은 그제서야 유비에게 군권을 부여받습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유비는 영리하게도 그 상태에서 조운에게
군권을 일임했죠.
세력이 커져가는 제갈량을 견제한 유비의 한 수였다고도 볼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 시점까지는 조운은 전장에서 한차례도 패한적이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후에 북벌에서는 조운이 이끄는 군사가 유일하게 패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바로 기곡에서 조진이 이끄는 대군에 맞서서 조운이 패배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전투에서 조운에게 패전의 책임이 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를,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조운의 패배에 이유에 관해 제갈량이 마속에게 공을 세워주기 위해서 약한 군사들을 
조운과 등지에게 맡기고 자신과 마속이 정예병을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곡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조운은 장군으로써, 그리고 군의 총사령관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어렵다는 퇴각에서 “퇴각의 귀신” 이라고 불리는 제갈량마저도
깜짝 놀라게 한 
깔끔한 퇴각을 보여준 것이지요. 

추격군의 선봉장들의 목숨을 앗았을 뿐만 아니라 군량물자를 하나 잃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퇴각했다는 점을 보면 조운이 장군이자 총사령관으로써의
능력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장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고, 심지어 패배해서 퇴각하는데도 한치의
오차와 실수없이 깔끔하게
퇴각하는 장군이었던 조운이 굳이 군을 통솔하는 능력이
관장마황보다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촉의 장수들을 언급할때 흔히 촉나라 장수들은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촉의 장수들 중에 특히 관우가 가장 부풀려졌다는 건 파헤쳐보면 맞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제갈량과 조운 같은 경우에는 파보면 파볼수록 소설과 가까웠던 사람 내지 소설보다
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운 같은 경우는 소설과 정사가 거의 겹치는 사람입니다.
단 연의에서 유비를 만나기 전의 인생이 조금 더 미화되었다는 점 (국의를 한칼에 죽인점이나,
문추와 대등하게 싸웠다는 점이나) 이 조운을 과대평가 장수로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삼국지 시대에 가장 실수가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가 바로 조운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더 잘 알 수 있는 부면이지요.

이런 조운을 삼국지 시대에 가장 완벽한 장수 라고 부르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과장이 아깝지 않은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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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캐릭터 중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해? 라고 말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 을 서슴없이 고르고는 합니다.
흔히 <삼국지> 로 알려진 <삼국지연의>에서의 조운은 거의 완벽하다고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삼국 연의에서는 “무패장수” 라고 불릴 정도로 거의 패한적이 없으며 (강유에게 패한 정도밖에는),
지략도 뛰어날 뿐더러 충성심도 굉장히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 게임들에서 나온 조운은 얼굴까지 잘 생겼습니다.
관우나 장비에 비해서 조운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꽃미남의 얼굴을 가지고 젊게 나오기도 하죠.
결국 조운은 현재로 말하자면 뭐 하나 못하는게 없는 좋게 말하자면 오늘날의 엄친아 이며,
조금 심하게 표현자면 “말도 안되는 개사기 캐릭터” 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삼국지연의> 가 아닌 <정사> 로 평가하자!” 라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위나라, 오나라 장수들은 많이 부각되는 반면에 촉나라 장수들은 많이 평가가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나관중 자체가 <삼국지연의> 를 기록할때 “촉나라만세” 주의로 기록을 했고 실제로 많은
촉나라 장수가 위나라 그리고 오나라 장수들보다 훨씬 더 과대포장되는 일이 있긴했죠.

흔히 가장 많이 과장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삼인방이 있으니 바로 관우, 제갈량, 그리고 조운입니다.
일단 평균적으로 말하자면 셋다 부풀려진 부분이 많습니다.
허나 제갈량같은 경우는 오히려 기록되지 정사와 역사 속에서는 언급되지만 연의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많기에 쌤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우와 조운이 저울대에 매달리는데 이번에는 조운에 관해서 적어보고자 합니다.


조운이 과대평가 논란에 시달리는 이유가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정사에서 관우나 장비에 비해서 저술된 양이 적다
2) 정사에서 조운의 직위는 다른 장수들에 비해서 낮다 정도로 압축이 됩니다.

그렇기에 조운은 무력실력은 별로이고, 공도 별로 인도 그저 유선을 구했기에 공로를 인정받았고,
나관중에 삼국지에 의해서 다시 태어났다 정도로 접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조운은 정말로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일단 정사의 기록양을 놓고 그 장수가 훌륭했는지 안 훌륭했는지는 논할 수가 없습니다.
단 조운전의 양이 적은 이유는 바로 조운이 수행했던 임무의 특성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삼국지연의와 다르게 조운은 전장에서의 공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조운의 직업이 바로 “경호실장” 정도 되었던 것이지요.

조운의 직책은 유비를 호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딱히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호위대장이 군주를 버리고 전장에 나가는 것을 보셨나요?
호위장수의 임무는 군주의 옆에서 군주를 보호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조운은 그런 호위장수의 임무를 수행했기에 상대적으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등에 비해서
전장에 나갈기록이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였습니다.

비슷한 예로 최근에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셨다면 김유신(엄태웅)이 밖에서 전쟁하며 상장군이니,
병부령이니 하면서 인기가 늘어나고 월야(주상욱)까지 화장군의 지위를 얻는 동안에
알천(이승효)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선덕여왕 곁에서 여왕을 지키고 있었죠.


그렇다면 조운의 무력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평가받고 있을까요?
물론 <삼국지연의> 에서 나온 조운의 무장은 심하게 과장되어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이름이 있는 무장과 붙어서 싸운 경우가 상당히 적었습니다.

사실 전장에 나갔어도 조운은 후방에 있어서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서는 일이 적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어쨋든 유명한 장수를 벤 적이 없다고 해서 그 장수의 무력이 낮다고 평가할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적어내려가는 증거들을 보면 조운의 무예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저 착하게만 알려진 유비지만 사실 유비의 인용술은 조조 못지 않았습니다.
그런 유비가 자신의 호위를 관우, 장비가 아닌 조운에게 맡기게 됩니다.
실제 조운은 유비를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또한 장판파 전투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운은 유비의 가족의 경호를 맡았습니다.
한 나라의 군주가 자신과 자신의 몸을 맡길 장수로 그저 그런 무력을 가진 장수를 선택하겠습니까? 
 

2) 장판파전투가 과장된 것은 사실입니다.
조운이 상대한 군대는 당연히 80만이 아닌 한 5000명의 정예기병으로 추정됩니다.
80만 vs 1 을 듣다가 5000 vs 1을 들으면 당연히 약해빠져보입니다.
허나 홀몸도 아닌 아이를 안고 가는 상황에서는 한명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듭니다.
만약 조운이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본인과 유선히 무사히 돌아올 수가 있었을까요?
(물론 일부는 차라리 유선이 무사하지 않았었으면 하기도 합니다만...)

3)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게 조운의 한중전입니다.
조조가 총애했던 하후연이 황충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서 조조가 직접 참전을 하고,
사실 황충은 큰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운은 약 몇십명을 이끌고 조조의 대군을 상대하죠.
물론 여기서 “얼마나 대군이었느냐?” 라는 논란도 한참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적어도
천여명 정도로 여겨질때 수십기만 가지고 황충을 구해낼 수 있었다면 조운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잘 알려주는 부면입니다.

4) 마지막으로 조운의 무예의 활약은 그의 나이 70세에 가까웠을 때입니다.
제갈량이 마속을 앞세우고 조운과 등지를 위병으로 사용했던 그 전쟁에서 조운은 조예군의
청년 장교  5명을 살해하는 큰 공을 세웁니다. (연의에서는 이 장수가 한덕과 그의 아들들로 묘사되죠)
70살이나 먹은 노인이 청년 장교 5명을 살해할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그가 애초에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는 장수임을 시사합니다.

이 외에도 그 짧은 기록을 한 진수 역시 조운을 “유방의 하후영과 같다” 라고 칭찬하였고,
그를 아주 뛰어난 장수로 유비도 온 몸이 담력 덩어리다 라고 칭찬을 한 점을 보면 절대
그의 무력이 낮았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 실제의 조운은 어떤 장수였을까요?
정사의 기록이 너무 적지만 그 뒤에 별주를 넣은 배송지의 삼국지주의 따르면
그는 지장이며 시국을 보는 눈이 뛰어난 장수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성직이 올곧아 직설을 잘하기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례를 들자면 유비가 익주 땅을 얻은 이후에 성도의 땅을 자신의 여러장수에게 분배하려고 하자,
조운은 아직 천하가 통일 되지도 않는데 익주의 땅을 빼앗아 분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하여
유비에게 그렇지 말것을 직언했으며 그 결과가 익주가 안정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유비가 관우의 죽음 이후 복수를 하려고 하자 직언을 하며 반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말을 듣지 않는 유비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또한 계양을 점령했을때 조범의 동기를 투항이후의 동기를 잘 분석해내서 거리를 멀리두었고,
기곡에서의 패배에서도 수습을 잘해서 최대한의 피해를 줄이고 퇴각을 하는 등 통솔력과
사물을 보는 뛰어난 눈을 가지고 있는 장수이기도 했습니다.


흔히 기곡에서의 패배를 가르켜 사람들이 조운이 역시 무장으로써는 약하다라고 보는
반면도 있던데 이 역시도 잘못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갈량은 조운-등지를 주력병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용의부활> 에 나오는 점과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인데, 조운과 등지는 버리는 패였던 것입니다.

역시 위에 <선덕여왕> 드라마의 예를 들어본다면 설원이 자신을 본부대로 삼고 김서현을
미끼로 삼아 성동격서를 하게 해서 자신을 승리를 거두고 김서현은 죽든 말던 신경쓰지 않은것…
비슷한 경우입니다.

마속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제갈량은 마속을 선봉으로 세워 가정전투에 임하게 했으며,
그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완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운은 오히려 패배를 최소로 줄인채
깔끔하게 퇴각을 했습니다.
공과 사가 분명하기로 알려진 제갈량 조차 그런 조운을 칭찬해 상을 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조운은 그 상을 거부하고 직책이 강등당하는데 불만없이 따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조운은 정말 과장된 장수였습니까?
단순히 “무인” 으로 보자면 과장된 장수가 맞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원소군 최고의 장수인 문추를 다소 어린나이에 딱히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물리친 점이나,
조인의 30000의 부대를 상대로 한 500명을 이끌고 가서 조인의 팔괘진을 박살낸점이나
70먹은 노인으로써 위의 장군이었던 한덕과 그의 모든 아들을 죽인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판파에서 80만의 조조군을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유선을 구한점 등등이요.

그러나 장수로 보자면 조운은 과장된 바가 없습니다.
장수로서 어긋남이 없었고, 황충을 구하는 장면이나 패배를 수습하는 장면에서 맡겨진 일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막말로 조운은 모두가 다 뚫릴때 끝에서 막는 최고의 수비수이자 수문장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볼때 조운은 정말 삼국지 시대의 촉군에서 유일하게 흠이 잡을때가 없는
촉나라 최고의 무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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