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삼국지에 관한 글로 블로깅을 하게 되네요. 
사실 제 삼국지 두번째 포스팅에 이미 언급이 되었던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조운, 과연 과장된 장수 인가?” 편에서는 조운의 실제 능력이 어땠을까 하고 적어보았습니다. 
그 글에서는 조운의 능력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말을 몇마디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의 무력 자체를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장판파에서 조조의 대군 (1 : 1000 만 놓고보더라도 대군인 겁니다) 을 상대로 유선을 구했다는 점,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써 황충을 구하고 위장계를 써서 조조를 대패시킨 점등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우, 장비, 마초 그리고 황충보다 (이상 관장마황) 직위가 낮다는 점이나 
조운의 직위인 “순평후” 마저도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늦게 수여되었다는 점을 들어 바로 
조운이 다른 소위 말해 “오호대장” 마저도 못한 장군이라고 이야기들을 하고는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 안목이 높다는 유비가 살아생전에는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은 점을 생각해보면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어떤 사령관보다는 선봉장에 가깝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통솔력이나 군을 이끄는 능력은 관우, 장비, 심지어 마초, 황충보다 못하다는 공식이
설립되고 있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과연 파헤쳐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과연 장군이자 총사령관의 능력으로 볼때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못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먼저 유비의 안목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유비에 안목에 관해서는 마속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장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유비는 죽기전에 제갈량에게 마속에게 중대사를 맡기지 말 것을 명령했는데,
제갈량은 마속을 신뢰했던 터라 그런 유비의 말을 무시하고 가정 전투를 맡겼고
결국에는 가정에서 마속이 대패하는 바람에 촉군의 북벌을 실패하게 되었죠.

그 일로 인해 "유비의 안목은 정확하다" 라는 공식이 서게 된 것이지요. 
그런 유비가 조운에게 큰 군대를 맡기지 않았기에 조운이 장군으로써
실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유비의 안목은 완벽했던 것일까요? 

유비군 내에서 가장 많이 대군을 이끌었던 관우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삼국지연의> 에서는 유비의 의형제이고 정사서도 유비군 제2인자로 여겨지는 관우는
사실 유비의 장수들 모두를 통틀어 가장 많은 패배를 경험한 장군입니다.
형주에서의 관우의 전투를 살펴보면 (유비가 익주로 떠나기 전후 모두다) 승리한 전투가 없거든요.

적벽대전 이후에 관우는 유비의 명령으로 강릉을 탈환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지만,
오히려 문빙에게 격파 당하는 일이 있었고, 지원군으로 이통이 달려오기에 그를 막아보려 했으나,
사실 이통을 저지하는데도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유비가 익주를 점령한 후에 손권은 유비에게 형주 반환을 요구했고, 
유비가 거부하자 손권이 공격했는데 그 후에 반격을 하려 했으나 감녕과 노숙의 방어에 섣불리
공격을 하지도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비와 손권이 협정을 맺은 후에 관우는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조인의 번성을 치는데,
번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으며 후에는 서황의 지원군에 의해 철저히 격파 당하게 됩니다.
관우가 형주에 있는 동안 거둔 승리는 방덕과 우금이 지원군으로 왔을때 홍수가 일어나서
그들을 붙잡은게 유일한 승리 기록입니다.
이렇게 패배기록이 수두룩 한 관우에게 유비는 큰 군권을 맡긴 것입니다.
이런 유비의 안목이 완벽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왜 조운에게만 "유비의 안목" 을 적용하는지 참 궁금한 점입니다. 
오히려 관우, 장비와 같은 경우에는 더 오랫동안 유비와 함께 했기에
유비가 군권을 더 많이 줬다고 생각을 해볼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조운보다 더 늦게 들어온 마초나 황충의 경우는 어떨까요?
물론 이들은 조운이 맡지 못한 대군을 거느렸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조운보다 더 뛰어난 장군으로써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까?

황충 같은 경우에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살해하는 (일대일이라기 보다는 전장에서) 공을 세우긴 하지만,
그 역시 조운에게 구원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초 역시 한중전에서 장비와 함께 패배해 자신의 부장인 오란을 전쟁에서 잃었던 실적이 있습니다. 
사실 관장마황의 전적을 비교해보면 큰 군대를 맡았다 뿐이지 정작 조운보다 나은 실적을 
보여준 면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장수로써 관장마황이 조운 보다 낫다는 의견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비는 조운에게 큰 군원을 일임하지 않았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유비만이 알겠지만 아마 다른 장수들보다 조운이 내부의 일과 집안통솔을 
더 잘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주방에 요리사가 있는데 한 명은 웬만하면 요리를 하지 않고, 
음식재료 체크, 주문 등에 신경쓴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바로 그 한명의 요리사가  다른 네 명보다 요리를 못한다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본다면, 
그 주문, 음식재료 체크 등을 맡은 요리사가 다른 요리사보다 더 그면에서는 능숙하기에
그 면을 맡아서 하는 경우 일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조운은 주로 유비 군의 내부적인 통솔과 관리를 하고는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유비의 가족문제에도 개입을 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미 유비의 부인을 보호하고
모신 관우가 있는데도 조운에게 그 책임이 주로 돌아갔다는 점이지요.  
군주가 자기의 가족을 맡길 정도의 신뢰심이 있다는 건 아주 중하게 쓴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유비가 익주로 참정을 할때 손부인 (손상향) 의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그녀의 시위녀들이 자주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일이 자자했는데 유비는 조운에게 손부인의 감시와 함께
내부적인 일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겨놓았습니다.
그 당시에 관우와 장비가 버젓이 형주에 있었는데도 조운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을 보면 그만큼
조운이 
내부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했고 그 부면으로는 장비, 관우보다 위에 있었기에
조운에게 그 일이 돌아갔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말을 정리해보자면 조운이
큰 군권을 얻지 못한 이유는 굳이 그의 능력부족이라는 것보다,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내부적인 일이나 오늘날로 말하자면 경호대장 및 비서실장으로써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유비는 그 적임자로 조운을 생각했고 조운을 그쪽으로 임명했기에,
굳이 조운이 큰 군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 
조운이 관장마황보다 장군으로써 못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추리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실제 장군으로써의 조운은 실적이 어떠했을까요? 
조운은 큰 군을 다스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군권이 주어졌을때
절대 실패하지 않는 철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안을 항복시킨 장비에 묻히기는 했지만,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삼 군의 지휘장중 하나로써
깔끔하게 익주로 진입을 해서 유비를 도와주었습니다. 

또 이미 언급한 한중전투에서 수십기만 을 가지고 조운은 황충을 구출해내고 거기에 더해
위장계로 
조조를 퇴각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릉전투에서 유비를 쫓아오는 손권군을 상대로 조운은 그들의 진격을 막았을뿐 아니라 
오히려 반격을까지 해서 손권군을 물려서 휴전상태로 만들어 놓는데도 일을 하기도 했지요. 
유비 생전에도 조운은 군이 주어졌다하면 패배한적이 없는 뛰어난 장군이었습니다. 


 
유비가 죽자 조운은 그제서야 유비에게 군권을 부여받습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유비는 영리하게도 그 상태에서 조운에게
군권을 일임했죠.
세력이 커져가는 제갈량을 견제한 유비의 한 수였다고도 볼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 시점까지는 조운은 전장에서 한차례도 패한적이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후에 북벌에서는 조운이 이끄는 군사가 유일하게 패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바로 기곡에서 조진이 이끄는 대군에 맞서서 조운이 패배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전투에서 조운에게 패전의 책임이 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를,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조운의 패배에 이유에 관해 제갈량이 마속에게 공을 세워주기 위해서 약한 군사들을 
조운과 등지에게 맡기고 자신과 마속이 정예병을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곡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조운은 장군으로써, 그리고 군의 총사령관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어렵다는 퇴각에서 “퇴각의 귀신” 이라고 불리는 제갈량마저도
깜짝 놀라게 한 
깔끔한 퇴각을 보여준 것이지요. 

추격군의 선봉장들의 목숨을 앗았을 뿐만 아니라 군량물자를 하나 잃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퇴각했다는 점을 보면 조운이 장군이자 총사령관으로써의
능력이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장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고, 심지어 패배해서 퇴각하는데도 한치의
오차와 실수없이 깔끔하게
퇴각하는 장군이었던 조운이 굳이 군을 통솔하는 능력이
관장마황보다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촉의 장수들을 언급할때 흔히 촉나라 장수들은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촉의 장수들 중에 특히 관우가 가장 부풀려졌다는 건 파헤쳐보면 맞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제갈량과 조운 같은 경우에는 파보면 파볼수록 소설과 가까웠던 사람 내지 소설보다
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운 같은 경우는 소설과 정사가 거의 겹치는 사람입니다.
단 연의에서 유비를 만나기 전의 인생이 조금 더 미화되었다는 점 (국의를 한칼에 죽인점이나,
문추와 대등하게 싸웠다는 점이나) 이 조운을 과대평가 장수로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삼국지 시대에 가장 실수가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가 바로 조운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더 잘 알 수 있는 부면이지요.

이런 조운을 삼국지 시대에 가장 완벽한 장수 라고 부르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과장이 아깝지 않은 장수가 바로 조운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시타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군의 능력이라는건 개인적인 무력은 의미가 없고, 군을 잘 이끌어서 승리로 이끄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조건에 있어서, 관우와 장비는 분명히 합격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우와 장비가 주도해서 전투를 이끌어 승리한 내용은 삼국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블로거님이 말한대로 패배한 전투도 있습니다. 실제로 관우는 그 패배로 의해 죽음을 맞았구요.

    하지만 관우 장비도 패배한 적이 있다는것이 군사적 능력 부족으로 귀결되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조조가 말했든이 승패를 병가지상사라고 질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것이죠.

    패배한것보다 승리한것이 많기 때문에 명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도 말했지만, 조운의 군사 능력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는,

    조운이 주도적으로 군을 이끌고 나가서 승리를 한 전투가 없다는 것입니다.

    블로거님이 조운의 군사적 역량을 나타내기 위해 적은 예시들도, 조운이 군사를 이끌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부분은 없습니다. 유비나 동료를 위기에서 구출해내고, 깔끌하게 퇴각을 했다는 이야기들이죠.

    장수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군사를 이끌어서 승리를 쟁취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부분에서 조운의 성과를 찾아 볼수가 없습니다.

    유비 생전에는 유비가 기회를 주지 않아서 였겠지만,

    유비 사후에 제갈량과 같이 북벌을 할때도, 조운이 주도적으로 군사를 이끌고 승리를 하는 그런 장면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조운은 왜 일선에 나서지 못했나(혹은 안했나)를 생각해본다면... 블로거님 말대로

    유비나 제갈량이 생각했을때, 조운은 관우 장비와 같이 군을 맡겨서 적을 토벌하는 능력보다는

    유비의 곁에서 내부를 통솔하는 능력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그 말은 관우 장비 보다 군을 이끌어 승리하는 능력은 낮다고 판단 했다는 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관우 장비와 동등할 정도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 능력이 되는 장수였다면, 아무리 내부통솔이나

    호위 역할을 잘한다고 해도 군을 맡겨서 전투를 치르게 하지 않았을까요?


    유관장이 다 죽고나서 군사를 이끌게 된것은 조운이였다는 점에서 조운의 군사적 능력도

    낮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관우 장비의 전투능력 수치가 100이라면 조운은 90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조운의 군사 관리, 후방 안정 수치가 100이라면 관우 장비는 그에 훨씬 못미쳤겠죠.

    하지만 조운이 보여준 실적이라는게 없기에 조운의 군사적 능력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건 사실입니다.

    2013.03.07 00:20
    • 시타  수정/삭제

      그리고 마초는 객장으로서 유비가 예우해준것이고, 황충은 촉 입성과정에서의 공로덕분에

      조운보다 높은 직책이였던 것이라서 조운보다 더 나은 장수라고 볼 근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조운은 전투라는 점에서는 관우 장비에 미치지는 못했을것 같지만,

      군사를 통솔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조운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2013.03.07 00:29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오랜만에 시타님와 의견이 살짝 다르겠네요 ㅎㅎ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하지만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관우의 전쟁들만
      살펴보자면 솔직히 관우는 안량을 벤건, 우연히 홍수로 우금, 방덕을 잡은 것 이외에는 거의 패배수준이긴 하더군요.

      게다가 나관중은 관우가 악진, 문빙에게 패배한것이나 이통의 지원군을 막지 못한건 살짝 빼버렸더라구요 ㅎ

      즉... 무용은 관우가 대단했을지 모르지만 장군으로써 군을 이끄는데는 연이어 패배를 거듭한 것을 보면 딱히 재능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죠.

      조운같은 경우는 관우처럼 큰 군단을 이끈 적이 없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촉나라 전체를 털어놔도 독단적으로 군대를
      이끌 수 있었던 장수는 관우, 제갈량, 그리고 강유 정도 뿐이었습니다.
      마초도 독단적이 아니라 장비와 함께 행동했죠.

      많은 사람들이 까먹는 익주 정벌전에 조운은 엄안을 등용한 장비때문에 묻혔긴 했지만 독자적으로 군대를 인솔했습니다.
      결과는 두드러지게 장비처럼 특출나진 않았지만 성공적이었죠
      (제갈량, 장비, 조운 이렇게 군을 셋이 나눴습니다)

      조운은 별동대로도 사용된 적이 많았고, 이릉전투때도 거의 조운의 주도하려 적의 진군을 막고 오히려 되받아쳐줬으니 이만하면 조운도 충분히 군을 이끌고 승리를 거뒀다고 할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삼국지 시대를 생각을 해보면 능력만으로
      대군을 이끌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인, 하후돈 등은 대군을 이끌었지만, 장료 같은 경우만 봐도
      딱히 대군을 이끈적은 없죠. (장료의 합비전은 사기입니다.. 진짜 대박 사기)

      2013.03.07 09:18 신고
    • 시타  수정/삭제

      사실 빈약한 촉서의 내용만으로 누가 더 나은 장군이였고, 누가 덜한 장군이였고를 따지는건 거의 힘들다고 봐야겠죠.

      그러니 기록된 적은 내용을 이용한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ㅎ

      그래서 의견이 갈리는 거겠죠ㅎㅎ

      아 참고로 저는 조운을 관우 장비보다 더 좋아합니다ㅎㅎ

      2013.03.10 01:36
    • ㅇㅇ  수정/삭제

      진수의 기록은 물론 조운에 관련된 역사 기록 어디에도 조운이 주도적으로 군을 이끄는 능력이 떨어졌다고 까는 글이 전~혀 없는데 왜 유독 한국, 그리고 네티즌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는지 이해불가

      2013.05.06 03:48
  2. 에바흐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충이야 하후연을 털어버린 것 덕분에 급상승한 거니..

    조운은 익주 정벌 당시에 제갈량, 장비와 함께 군을 이끌고 출발했지만,
    이후 세 사령관은 따로 군사를 나누어 각 지역을 정벌했지요.

    즉, 조운이 단독으로 군을 이끈 경력이 있습니다.

    2013.03.07 03:37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이긴 상대가 대박으로 큰게 황충이죠 ㅎㅎ

      2013.03.07 08:48 신고
    • 돋ㅎ  수정/삭제

      사실 정사에서는 하후연이 황충에게 죽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정군산 전투 당시 하후연은 장합에게 자신의 군대를 나누어 보냈고 그로 인하여 병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황충군과 싸우다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하후연이 황충에게 죽었다는 것은 단지 연의의 설정일 뿐입니다.

      2013.10.18 10:59
  3. 어리버리선생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운은 완벽한 장수였지요... 저런 인물이 또 있나 싶을정도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13.03.07 05:38 신고
  4. 개념붕괴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지를 통틀어 조운만큼 "완벽"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장수는 찾기 힘들거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ㅎ
    맡은바 임무를 항상 훌륭히 해냈고 장수로서의 기량 또한 뒤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ㅎ
    (게다가 천운도 따른듯 하죠. 위기에 빠질떄마다 하늘이 도운건지 무사히 돌아오고..)

    정사와 소설,양 부분에서 일치하는 점도 많은게 조운이지요.
    비록 임팩트는 관우,장비에 비해 크게 없지만 유비(촉한)진영의 숨은 에이스는 조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2013.03.13 12:42
    • 박종수  수정/삭제

      개념붕괴님의 말에 100% 공감이 가는 말이네여^^ㅎ 저도 같은 생각임..ㅎ

      2014.06.06 11:45
  5.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3.03.22 07:17
  6. 멘탈승천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수로서의 안목은 유비가 정확했던게 맞을 것 같습니다. 부풀려진건 사실이지만 여포를 상대로 버티는 인간은 관우 밖에 없던것도 사실이구요... 장수로서의 조운은 아무래도... 조금은 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장군으로서의 조운은 사실상 대단한 인물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운의 무예성향이나 전쟁지휘 성향으로 봐선 징벌군이나 토벌대 보단... 발빠른 기동력으로 정확한 전투력을 이끌어내는 수색군이나 선봉군으로서 더 적합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결과적으로 제 생각엔 유비가 안목이 없는게 아니라 개인의 성향을 매치시켜서 군을 나눴다고 보는게 옳은거 같습니다. 따라서 장군으로서의 관우나 장비에게 뒤진 조운은 아닐거 같다고 보여지는군요... 그런데 단순한 무력이나 전투력... 이건 별개의 문제가 맞는거 같습니다. 여포가 정사에서도 상당히 똑똑한 인물이었다고는 하나 결국 간계의해서 죽고마는 것도 사실이고... 장수 개인으로서의 무력이나 전투력은 여포를 따라갈 자가 없다는 걸로 봐서는... 뭐... 아마도 이건 좀 미미하지 않았나싶어요 관우나 장비같은 장수보단... 물론 마초나 황충보단... 황충은 아시는 바와같이 전투를 몸에 배여있는 노하우로 하는 사람이라서 예외로 치구요....

    2013.04.07 10:54
    • ㅇㅇ  수정/삭제

      그런데 애초에 관우와 장비가 괴물이라서 그렇지 이들 때문에 조운이 장수로서 떨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관우와 장비, 마초, 황충과 나란히 촉을 대표하는 장수로 묶인 인물이 장수로서 떨어진다면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 순서로 열전이 묶인 장악우장서에서는 장료가 나머지 장수들보다 월등하고, 서황은 가장 허접이라는 주장도 됩니다.

      2013.05.06 04:00
  7.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도가공세운건데 진도짱 그리고관우가 장합한테도개발리고 이통한테 깨지고 서황한테 깨지고 우금한테한번이김 제갈량의 지략이지

    2013.05.09 05:57
  8. 모르세  수정/삭제  댓글쓰기

    7월도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시간이 되세요

    2013.07.02 06:09 신고
  9. 허명무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지는 말도안되는 거짓말입니다. 중국인들이 고대부터 만들어낸 이야기거리일뿐 전혀 말도안됩니다.
    어떻게 사람이 혼자 칼들고있는100만명을 뚫고 나갈수있다요? ㅋㅋㅋ 무슨 경공술이라도? 30억분의 1인 효도르도 칼들고있는사람 10명 아니 5명도 못이겨요 그리고 중국 특유의 영화를 보면 말도안되는 무술영화들이 많이나오죠 전부 중국의 자작극이에요. 요즘엔 중국 짝퉁박물관도 나오더군요

    2013.07.24 20:50
  10. 뿌에또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글 100% 동감 그리스로마신화랑 똑같은 그냥 과대하게 부풀려져서 전설로 만들었죠 삼국지
    옛날은 물론 현 시대에도 그런 용자는 없습니다. 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칼들고있는 일개 병사는 무뇌중 그냥 허수아비인가요 ㅋㅋㅋㅋ 활로 쏴도 칼로 다 막아버린다는 삼국지
    ㅋㅋㅋㅋ 빠르게 날아오는 활을 1개도 아닌 여러개를 단칼에 막아버린다? ㅋㅋㅋ 전혀 불가능할거같네요
    아마 뒤에서 지휘했거나 나머진 1:1일기토로 유명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네요
    절대 맨앞에 나서서 칼로 먼저 썰어버리는 일은 없었을거같네요 전부 그냥 맨 뒤에서 지휘하는 지휘관일 뿐입니다.

    2013.07.24 21:14
  11. 하이루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군의 통솔력은 군을 물릴때 더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후퇴야 말로 통솔력의 결정체라고 말 할 수 있죠.

    조자룡의 장군으로서 가장 큰 장점은 사기를 돋구워 적진에 돌격하는 것이 아니고 군대를 통솔하고 통제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퇴각전때 군대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습니다. 사기도 바닥나고 군량도 모자라며 후방에는 적의 추격부대가 달라붙기 때문이죠. 뭐 삼국지연의야 픽션이 가미되었다고 쳐도 정사로 봤을때 한국역사상 대첩이라고 불리는 전투는 거의 추격후 괴멸전으로 보면 됩니다. 살수와 귀주대첩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군을 최대한 보전하여 본진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뛰어난 통솔력으로 보면 됩니다.

    2013.09.13 19:27
  12. 굿굿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티비보다가 생각나서 검색해봣는데 글쓴이분진짜 생각많이하셨네요 의형제와 제갈.그 내부적인거 생각도 안해봣는데 저도 삼국지를 쫌?(그래봣자 장수총 600 명정도나 알려나...)좋아하는1인으로써 잘보았고 음 실질적인건 그때 그사람들만 알수있지만 글쓴이님 글보고 그럴수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여러장수가 거품있는건 사실이거니와 촉의거품이 심한건 알지만 어느시대.장수.인물이 거품이 있으니 자신만의 생각을 썻다고 비판하거나 이게 옳다 그게아니다라고 사람들이 안써줬으면 좋겠너요

    2013.12.02 07:29
  13. 볼쇼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운의 훌륭한 점은 인품이지요. 연의와 정사에 두루, 군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에 하는 직언 중에 어긋난 게 하나도 없어요. 이미 수천 년 전에 죽은 인물이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부대는 항상 기강이 잘 서 있었을 것입니다. 지휘관이 어긋나지 않으면 졸병도 그를 고스란히 닮게 되어 있으니까요.

    2014.04.05 08:56
  14.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운이 유선을 구한건 엄청난실수엿어...

    2014.09.07 22:43
  15. 문관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하지만...정사에선 조운은 문관에 가깝습니다만...쌈박질은 전적이 1전 1대패...

    2015.05.10 10:05
  16. 1465974175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찬 정보 좋네요~

    2016.06.15 03:02
  17. 1466982608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블로그도 놀러오세요~

    2016.06.26 19:10

지난해 저는 블로그에 저는 단지 "연예블로그" 에서 탈피해서 좋아하는 주제인 삼국지와
여러 스포츠 포스팅도 도전해보기로 약속드린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스포츠는 손도 못댔지만 삼국지 포스팅은 어느정도 시작을 했어요.
뭐... 반응이 뜨거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적고 싶은 글을 적고 일부 공유도 같이 하고 있기에
즐거운 포스팅들이 될 것 같네요..

오늘은 최근에 즐겨본 2010년판 신삼국지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는 최근에 2012년에 여러번 방송하기도 했고 가장 최근 방송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를 대상으로 두 가지 TV 시리즈가 나왔는데 1994년도에 왕부림 감독이 제작한
삼국지 (삼국연의) 가 있고 2010년에 가오시시 감독이 제작한 2010년이 삼국지가 (삼국) 있습니다.
두 시리즈 다 본 사람으로써 둘 시리즈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1994년은 소설 "삼국지" 자체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큰 줄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도원결의, 호로관 전투 (유비 삼형제 vs 여포), 관도대전, 적벽대전,
제갈량의 남만정벌 등의 모든 스토리들을 구성을 했었지요.
인물 자체보다는 주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삼국지연의가 그랬듯이
주로 유비와 제갈량의 촉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반면에 2010년 삼국지는 (삼국) 은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개개인의 캐릭터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아마 예산에도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것때문에 제갈량의 남만정벌이 통채로
날라가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보통의 삼국지 작품들과는 달리 흥미롭게 주 초점이 위나라와 사마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소설이 아닌 역사 삼국지정사 에서의 주인공은 진나라와 (사마씨) 위나라 (조씨)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조와 사마의가 아주 구체적으로 잘 그려져 있으며 다소 위치가 어정쩡했던
조비의 캐릭터도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많은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입니다.
대체적으로 동양 역사에서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많이 적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삼국지에는 사실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어느정도 등장합니다. 
일단 연환계로 너무 유명한 초선이 있구요, 유비와의 결혼으로 유명한 손상향,
유비의 형주 출입을 막았던 채부인 등이 있습니다.

2010년 삼국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을 아무나에게 주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존 삼국지 작품들보다 상당히 많이 부각되고 별 의미 없어보이는 캐스팅이 아닌
많은 경쟁을 했던 캐스팅이 많거든요.
특히 손상향의 캐릭터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그 캐릭터를 놓고 한명이 먼저 캐스팅되었다가
바뀌기도 하고 주문이 많이 들어온 캐릭터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를 보고 흥미롭게 보았던 여성 인물들을 열거해보려고 합니다.
긴 포스팅이니 천천히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나마 여배우들의 얼굴이 많아서 천천히 읽는데 도움은 될지 모르겠네요.



1) 초선 (진호 / Chen Hao)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들중 가장 인기많고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가 바로 초선입니다.
삼국연의의 캐릭터를 따라서 연환계를 성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탁의 죽음 이후 초선의 생사에 대해서 참 논란들이 많은데, 1994년도 판에서는
연환계 성공후에 바로 자결을 한 것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보통 조조전 같은 게임에서는 여포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아 조조를 섬기지요.
이 버전에서는 여포가 죽은 후에 그 사신 앞에서 자결을 합니다.



2) 동귀비 (백회/ Bai Hui)


동승의 딸로써 황제의 뜻을 따라 유비를 궁으로 불러서 황제와 알현하게 합니다.
이 계기로 조조 암살 사건이 계획되었지만 결국 발각되어서 동승과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임신까지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조는 동귀비를 무참하게 죽여버림으로써
이 일로 인해 조조는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삼국지에서 가장 불쌍한 장면의 주인공의 하나로 헌제가 보는 앞에서 
조조의 군사들에 의해 목졸라 죽임을 당합니다.
헌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하는 어찌보면 찌질이라고 할정도로 화가나게 하는
무력함을 보여주는 가장 답답하면서 분노케 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시점으로 헌제가 가장 무능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 감부인 / 미부인 (당자제 [Tang Zi Ji] / 상억사 [Shang Yi Sha]) 


유비의 첫번째 / 두번째 부인입니다.
감부인은 나중에 소열황후 (유비의 소열황제와 동일하게) 라는 황후직을 얻고 (사망후에) 
미부인은 그저 미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황후로 추존되지는 않습니다)
유선의 어머니가 바로 감부인입니다. 
정사에 보면 조운의 그 유명한 장판파 전투때 감부인만 구출된 것으로 나옵니다.
미부인은 그 전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감부인은 이미 구출된 상태였고 미부인이 아두를 안고 가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조운을 만났는데 그 사이에 조운은 적병사들에게 둘러 쌓여있었습니다.
조운이 자신까지 데리고 갈 수 없음을 인지한 미부인은 근처에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습니다.


 
4) 대교 (유경 / Liu Jing)


"강남이교" 라고 불리는 교씨의 딸들 중 장녀 입니다. 
연의에서는 한나라의 신하였던 교현의 딸이었지만 정사에서는 그저 교씨 집안의 딸로 알려집니다.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대교는 손책에게 결혼을 했습니다. 
손책이 암살당해 죽은 뒤의 인생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손책의 아들로 손소가 있는데 대교가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장소가 후계문제로 인해 강동이 혼란에 빠지지 않기를 이야기하자,
아들을 데리고 강동을 떠나버립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 소교 (조가 / Zhao Ke)


"강남이교" 의 둘째 딸로 주유와 결혼했습니다.
역시 언니와 함께 미모와 함께 음악에 출중한 여인입니다.
역사에서는 그닥 언급이 없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주유에게 조언하기도 하고,
특히 제갈량과 관련해서 "제갈량을 죽이지 말라" "자존심이 너무 세다" 라는 등의
돌직구 발언으로 주유를 언짢게 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6) 채부인 (조희문 / 
Cao Xi Wen)


역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유비가 형주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인물입니다.
유기를 헐뜯고 유종을 세우려는 점은 정사 / 연의와 일치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채모보다 오히려 채부인이 더 머리를 굴리며 유비를 견제하고 유기를 없애려 합니다.
연의에서는 유종이 항복한 후에 북쪽으로 보내지던 중 우금에 의해 살해되지만,
역사에는 그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 역시 유종과 채부인이 딱히 죽임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7) 손상향 (임심여 / Lin Xin Ru / Ruby Lin)


초선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삼국지의 여인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손견과 오국태의 딸로써 무예가 출중하고 항상 호위 여인들을 이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영리하고 똑똑했다고도 알려집니다.
유비와 정략 결혼을 하였으며 후에 유비가 익주로 전쟁을 하러 간사이에 손권은
그녀를 불러들입니다.
유선을 같이 데리러 가려고 했으나 조운과 장비가 개입해 실패하였고, 역사에서는 그 이후에
손상향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손상향은 다시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되고 나중에 이릉전투때,
손권은 그녀를 보내어 화친을 하려 하나 유비는 "손권을 정복한뒤 다시 되찾을 것이다" 하고
거절하고, 그 말을 들은 손상향은 한때 좋아했던 유비를 생각하며 고민을 합니다.
유비가 죽자 얼마 안있어 유비를 뒤따라 사망합니다.



8) 헌목황후 조절 (유재교 / Liu Zi Jiao)

헌제의 황후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 입니다.
조조의 딸이며 조비, 조식, 그리고 조창의 큰누나 입니다.
조조가 동귀비를 무참하게 살해한 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조절을 황후자리에 앉힙니다.
그 탓에 헌제에게 즉위 내내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조조와 조비와는 달리 한황실에 충실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고, 
헌제가 심하게 대해도 끝까지 아내이자 황후로써 헌제의 기를 살려주고 헌제를 위했습니다.
역사에서도 조비가 황후의 도장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자 몇번을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내주었습니다.
후에 헌제가 산양공이 되자 헌제와 함께 살았으며 헌제가 죽은 이후에도 26년을 혼자 살다가
황후로 대접을 받으며 헌제 곁에 묻혔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조조의 신하중 유일하게 한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헌제에게 압박을 하러온 조홍과 조휴를 꾸짖고 (연의에서도 있던 일), 헌제를 위해 동생인 조비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실패했습니다.
조비는 암살시도에도 그녀를 살려주었고, 후에 헌제가 황위를 내준후에 조비에게 자신의 암살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자기가 탄 배에 구멍을 뚫어서 죽을때 헌제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헌제는 강압적으로 조절을 황후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후에는 그녀를 자신의 황후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뜻을 함께 합니다. 



9) 정수 (이의효 / Li Yi Xiao)


역사에서도 연의에서도 존재하지 않은 이 시리즈의 특별한 가공인물입니다.
이 시리즈 후반부의 주인공인 사마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조비의 몸종이었으나 조비가 사마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사마의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마의의 행동을 감당하고 몰래 보고하는 역할이었으며,
사마의는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 정수를 이용하여 조씨 가문을 안심시켜,
결과적으로 사마의가 승자가 되게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마의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조비의 내시와의 대화에서 환관은 사마의가 정수를 죽였냐 묻고 사마의는
임신도중에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약을 주어서 자신이 죽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정수를 미운정 고운정으로 좋아했던 사마의의 진의는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2010년의 삼국이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캐릭터를 하나하나 부각을 잘 시켰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촉의 관점이 아닌 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항상 역대 최악의 캐릭터로 불렸던 조조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완전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철저했던 조조를 진건빈은 아주 휴머있는 인물로 그려놓았습니다.
특히 중간에 철저하다가도 "헤헤~" 짓는 헛웃음은 조조를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탈바꿈 시켜놓았지요.

삼국지 매니아들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시리즈가 이 시리즈이며 촉의 삼국지에 질리거나
너무 연의에서만 부각되었던 촉과 무시당했던 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언급이 된 여인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삼국지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에서 여배우로써는 임심여를 재발견했고,
마지막 충신이었던 조절을 다시 보게 되었네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해피선샤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정말 여성 캐릭터가 꽤 많았네요..

    2013.03.01 23:54 신고
  2. 시타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향이라는 이름은 후대에서 지어낸 이름이라고 알고 있는데,

    드라마 상에서는 손부인으로 안나오고 손상향으로 나오는 모양이군요ㅎㅎ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중국 4대미녀인데, 초선이 너무...;;ㅋ

    아 그리고 유선관련 글도 잘 봤습니다ㅎㅎ

    2013.03.03 07:42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손부인과 관련해서는 대체적으로 전통적으로는 손상향으로 불린다 하더군요. (역사속에는 기록이 없지만..)
      뭐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지만 초선은 진짜 실망이에요 ㅠ.ㅠ
      대교, 채부인, 소교가 훨씬 더 예쁘니 ㅎㅎ

      개인적으로 캡쳐가 좀 잘못되었지만 이 시리즈의 진정한 꽃은 임심여의
      손부인이라고 생각해요 ㅎ

      2013.03.03 09:33 신고
  3. 어리버리선생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의 아내로만 알고 있었던 삼국지 속의 여성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삼국지 포스팅이 기대가 되네요. 헤헤~ 여기 오면 정말 연예계부터 해서 삼국지까지 많은것을 알게되는거 같아요!

    2013.03.04 07:53 신고
  4. <투머로우>김기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블로거 페니웨이 님 블로그 보고 링크 따라 들어왔습니다.
    블로거 주인장님께서 초선 편에서 언급하신 1994년도판 삼국지에서는
    초선이 수레를 타고 어디론가 먼 길을 떠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 2010년판 <삼국지> 정주행 중이고 거의 막바지에 다 봤는데,
    도움이 되는 포스팅이었습니다.

    2013.10.29 11:03
  5. 스원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선이 제일 못생기고 채부인이 젤 이쁨


    2017.08.23 14:48

오랜만에 쓰는 삼국지 시리즈 입니다.
제가 주로 삼국지 글을 썼을때는 주로 소설과 역사를 비교하는 글들을 많이 썼었어요.
실제 삼국시대에 살았던 장수들이 과장된 경우도 많았고 어떤 경우는 비하된 경우도 많았기에
그것에 대한 해명글을 적어보고자 해서 적어본 글들입니다.
과소평과된 서황과 과대평가되었다고 여겨지는 조운에 대해서 지난번에 적어봤죠.  
1. 서황, 나관중에 의해 일그러진 위나라의 대들보
2. <삼국지> 조운은 과연 과대평가된 장수였을까?
  
이번에는 조금 초점을 바꿔서 삼국지 최대의 멍청이로 알려진 유선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글은 삼국지 최대의 논란장수 강유에 대해서 적어볼 계획이었으나 그걸 적으려다보니까
유선의 군주로써의 자질이 먼저 생각이 났고, 그래서 강유 이야기를 적기 앞서서 
유선에 대해서 먼저 깔고 적어보는게 낫지 않을까 해서 유선에 대해서 적어봅니다. 




일단 유선은 어떤 인물일까요?
촉 초대 황제이자 삼국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유비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입니다.
물론 유비가 유봉을 양자로 거느리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유봉보다는 유선이 유비의 뒤를
인물로 여겨져왔습니다.
아두라고도 알려진 유선은 역사속에서도 조운에 의해서 장판파에서 구해졌고,
그 장판파 전투로 인해서 유선에 대한 농담이 (현 시대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 되고 있긴 합니다.
유비가 유선을 던져 버리는 바람에 유선이 멍청해졌다는 그런 농담...?

실제 유선의 아이큐가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역사속에 실제 인물이 정말 잘생겼는지 아닌지처럼 말입니다.
단 배송지의 삼국지주에서는 오나라에서 촉으로 보낸 사신이어던 설후가 유선을 가르켜
"무능한자다" 라고 묘사한 바는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무능한건지 군주로써의 무능함을 이야기한 것인지 알수가 없다는 점과
또 역사 자체가 관점에 의해 다르다는 것을 보면 확담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놓고볼때
유선의 군주로써의 무능함은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말하기를 유선은 "뛰어난 신하들이 있을때는" 현명한 군주였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 제갈량의 섭정부터 비위의 섭정에 이르기까지는 딱히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요. 
물론 군주로써 현명하고 뛰어난 신하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뒤집어 놓고 말하자면 "뛰어난 신하가 있을때" 라고 이야기 한다면 
신하가 무능하면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는 군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유선이 그런 군주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것도 어느정도 감안할만 합니다.
그렇기에 초반에는 당연히 신하들에게 의존하는 정치를 필수 밖에 없었지요.
물론 그렇게 된 이유에는 제갈량의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것도 존재합니다.
알아서 척척 잘하는 제갈량이 있으니 딱히 유선이 할 것도 많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어찌보면 그게 유선에게 독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뛰어난 제갈량이 출사전까지는 알아서 해줬고 출사 이후로는 이엄이 안에서
내정을 담당해줬으며, 장완, 비위가 다 담당해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는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고 보는게 맞다고 봅니다.


사실 그 시기에는 유선도 어느정도 의견을 내고 정치를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제갈량이라는 훌륭한 신하가 유선에게 비위, 동윤, 곽유지, 향총 등을
권해주었고 그 신하들이 잘 유지해주었기에 촉이라는 나라가 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선이 잘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면이 있지만 사실 이 시점에서는 촉은 "유선의 나라" 라기보다는
"제갈량의 나라" 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갈량이 죽고나서도 다행이 촉은 장완과 비위라는 훌륭한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장완과 비위는 제갈량 못지 않게 훌륭하게 내정을 소화해냈습니다.
제갈량이 괜히 장완과 비위에게 후사를 맡긴게 아닙니다.
장완과 비위가 제갈량 보다 못했던 부분은 단 한가지... 군사적인 면입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유선이 거의 정치에서 손을 띄었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은 환관 황호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제 유선의 통치의 망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지요.


사실 황호의 등장을 굉장히 경계하는 여러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동윤은 암적인 존재인 황호를 경계해서 실제로 동윤 생존 당시에는 
황호가 전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제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윤이 죽기 시작하면서 정치는 흐트러 지키 시작합니다.

동윤의 수차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첨의 달인인 황호에 점점 유선은 말을 듣기 시작했고,
승상이었던 비위가 암살 당한 이후에는 황호의 세력은 통제가 안될 정도로 거세졌습니다.
강유가 섭정을 할 권한이 쥐어졌다고 하지만 사실 군사적으로만 섭정이 가능한 대장군의
직위로서 제한되어 있던 상황에서 황호는 내정적인 권위를 손에 쥐은채 정사를 농락했습니다.

한번은 강유가 적위 허위정보에 잘 속아넘어가는 황호를 상대로 여러번 허위정보를 흘려
정사를 그르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강유는 황호라는 간적을 없애버리기 위해 유선에게 황호를 처형할 것을 권했지만,
유선은 이 간언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오히려 황호를 보호해주기 위해 "이 자는 그저 환관일 뿐이다" 라고 한뒤 계속해서 황호와함께
그저 주색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전념을 했었지요.



후에 논란이 되는 위연의 방어진은 강유가 버리고 조금 더 위험성이 높은 방어진을 선택했을때,
유선에게 원군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유선은 초반에 황호의 어설픈 점성술만 믿고,
거절을 했다고 보내준 일만 봐도 얼마나 유선이 황호에게 의존해서 나라를 맡겨버렸는지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강유의 논란이 되는 위연의 방어진의 버림은 나중에 적어볼까 합니다)


그 이후로도 유선은 계속해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도처에 드러내게 됩니다. 
실제로 촉이 멸망된 해인 263년 초에 위나라가 쳐들어왔을때 유선은 강유에 의존해
전쟁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강유가 연속으로 패배를 거두면서 검각으로 몰리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강유는 종회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만, 군사적으로 강유만 못한 제갈첨은
등애에게 면죽관에서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유선은 여전히 원군을 보내주지 않고 "알아서 잘 막겠거니" 하고
방관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등애의 군대는 숫자가 그렇게 많을 수도 있는 군대는 아니었습니다.
아주 험준한 산 음평, 무도를 넘어가는 동안에 유선이 군대와 적절한 장수들을 보내주었더라면
제갈첨과 함께 등애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전략적으로 뛰어난 등애는 제갈첨과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제갈첨의 패배후 등애가 진격해오자 유선은 싸움 한번 안하고 항복해버리고 맙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행동이 촉의 백성들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선이 얼마나 군주로써의 자긍심이 없는지도 보여주는 바입니다.
이렇듯 유선은 군주가 되고나서 딱히 정치에 대해 나라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지 못한채,
그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지켜보던 아둔한 군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강유가 촉을 망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몇 주전에도 유투브에서 이 점과 관련해서 토론을 펼친적이 있씁니다.
개인적으로 그 때는 강유에 초점을 맞춰보느라 성공적인 토론이 되지는 못했지만,
만약 유선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더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강유가 촉의 멸망을 초래하는데 지나친 북벌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군주라면 그런 강유를 통제하고 동시에 강유의 치명점을 파악한뒤,
그 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과 강유를 맞춰주었어야 했습니다.
비위와 장완같은 사람 말이지요.

하지만 유선은 그런 인재를 구할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신하들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는데도 원군을 어디다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조언을 구하면서 나라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저 주색에 빠져 즐기는 일에만 급급했습니다.
이러니 강유가 통제가 되지 않았던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결과적으로 촉의 멸망은 강유의 잘못이 아닌 유선의 잘못입니다.
유선이 유비의 반만 닮았더라면 강유가 저렇게 통제불능이 되지도 않았을것이며,
환관 황호에 놀아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촉의 인재는 더 많이 늘어나 촉의 수명이 길었을겁니다.

하지만 군주의 본분을 잊고 인사를 등한히 한점, 황관의 정치에 놀아난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번의 지지를 하지 않고 주색에 빠진점은 왜 유선이 군주로써의
자격이 없는지 잘 보여주는 바이고 그렇기에 촉한의 멸망의 잘못은
유선에게 있다는 점을 생각해봅니다.  

이 점을 생각해볼 때 강유에 대한 오해가 더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수와 손성은 강유를 비평하고 비난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관점은 위나라를 진의 전시로 보았고,
사마소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강유이기에 강유에 평가에 더 절박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촉의 멸망은 결과적으로 강유가 아니라 유선때문이라는 생각이 크며,
왜 강유는 촉의 멸망과 관련해서 그 온갖 비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선은 동시에
오히려 "현명한 군주였다"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상대적으로 덜 비판을 받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하네요.
혹시나 이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분 있으면 얼마든지 댓글토론 하실수 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럭키스타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첫댓글이라 뭔가 무거운 감상평을 쓰고싶지만....
    중간에 '황호가 죽기 시작하면서'를 '동윤이 죽기 시작하면서'로만 바꿔주세요. ^^;
    연예전문 블로거님의 삼국지평역 재밌었습니다. 삼국지 좋아하는 사람은 연예인도 좋아하는... 비슷한 취향인가봐요. 개인적으로 장료에 대해서 재조명 부탁드립니다.

    2013.02.25 00:21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긴 감상편 좋아합니다.
      전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과 토론하는거 좋아해요.
      괜찮으시다면 많이 들러주세요 ㅎ

      장료는 최근에 가장 좋아진 장수들 중에 하나입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나기에 다행히 나관중이 그렇게 많이 저평가 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많이 깎아내려졌죠? ㅎ
      장료에 대해서도 적어볼께요 ㅎ

      2013.02.25 09:07 신고
  2. 에바흐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명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동윤과 비의가 주목하고, 차
    세대 승상으로 유력했던 진지가 황호랑 결탁해버렸다는 것...

    2013.02.25 01:45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그 유명한 제갈승상의 아들인 제갈첨까지 황호와 친했다는
      아쉬운 점이 있죠.
      어쨋든 황호가 가장 나쁜 놈이지요

      2013.02.25 09:08 신고
  3. widow7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안되는 촉의 국력 갖고 유비의 유지를 받듭네 하고 북벌한 제갈량은 퍽도 군사적 재능이 넘쳤네요. 제갈량은 군사적 재능이 그닥 없었습니다. 내정이나 열심히 했으면 족한 인물입니다. 촉에서 북벌한 자 중에 누가 땅 한 마지기라도 얻었나요? 제갈량은 자기가 일군 나라를 북벌로 도로묵시킨 인물입니다. 촉은 북벌만 안했어도 100여년은 갔을 겁니다. 이명박은 집권한지 얼마 안되어 검역주권을 타국에 넘긴 탓에 전국적 반발을 샀습니다. 유선때 민간봉기 있었습니까? 연산군처럼 왕노릇하다 부하들한테 폐위당한 것도 아닙니다. 유선은 유능하지 않았지만 무능의 대명사가 될 이유도 없고 바보도 아니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인간도 아닙니다. 평범한 왕으로 평범한 재주를 발휘했을뿐입니다. 촉한이 망한 첫째 원인은 중원으로 도약할 발판인 형주를 잃은 관우이고 둘째 원인은 되도않는 북벌로 나라 국력을 갉아먹은 제갈량입니다. 이 두 놈이 촉한의 원흉이고 그밖의 인간들은 관우와 제갈량을 숭배해 그짓 따라하다 더 갉아먹은 인간들입니다.

    2013.02.25 05:35
    • 에바흐  수정/삭제

      제갈량은 군사적으로 천재 중에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입장이 완전히 달랐죠. 촉의 전체 군사력이 합쳐서
      10만에 불과했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그런 10만 병력을
      15만에 가깝게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제갈량의 남중 정벌과
      천재적인 정치 능력으로 나라 살림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15만 병력 가운데 5만에서 10만 사이를 이끌고 북벌에 나섰습니다.

      무슨 의미냐면, 단 한 번이라도 아주 약간의 패배라도 있었다간
      촉나라는 바로 멸망합니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난공불락의 진창 공략 이외에 야전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는 괴력을 보입니다. 결국, 사마의는
      제갈량과 정면 대결을 절대 하지 않게 되었죠. 나중에 가면
      아예 촉나라 군사가 위나라 땅에서 둔전을 행했음에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의 북벌은 촉나라보다 5배에 가까운 국력과
      군사력을 갖춘 위나라가 방어에 치중하게 할 정도로 대단했고,
      제갈량은 야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괴물이었던 겁니다.

      만약, 그에게 약간의 여유만 더 있었더라면 충분히 천하를
      통일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촉나라의 국력을 깎아 먹었다고
      하셨는데, 기록을 보면 정반대입니다. 제갈량은 수차례 전쟁을
      벌이면서도 국정을 완벽하게 행했고, 그의 정치력 덕분에 촉나라는
      '천하의 곳간' 이란 평가를 얻었습니다. 오히려 나라가 부강했던 거지요.

      제갈량이 남긴 유산은 아주 긴 시간 유지되어 촉나라의 근간이 되었어요.

      2013.02.25 09:30 신고
    •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2013.02.25 09:33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이봐요.... 제대로 알고나 이야기하는겁니까?
      군사적 재능이 별로 없다구요...?
      병력딸려 재원딸려.. 인재부족해 군주는 멍청해...
      이런 상황에서 5차례 북벌에서 그정도 선전했으면 잘 한겁니다.
      땅을 한마지기도 못었었다... 다시 공부하세요.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제갈량의 북벌에서 제갈량은 무도 음평 지역을
      얻었고 또한 제갈량의 북벌때 그리 손해도 많이 나지 않았습니다.
      북벌을 안해도 100년은 갔다라....

      제갈량, 장완, 비위, 그리고 동윤이 살아있었다면 100년 갔었겠죠.
      어리석은 군주의 유선의 마인드와 인재발굴의 실패가지고는 100년이
      아니라 50년도 못갔을 겝니다.

      그리고 북벌만 놓고 봐도 제갈량 스스로가 그렇게 심하게
      패배한적은 없습니다.
      첫번째는 마속의 실수로 날려버렸고, 네번째 전쟁에서는 상당히 우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엄의 거짓말에 의해서 강제퇴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갈량이 병사하게 된 원인은 혼자서 다
      집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위나라는 인재가 넘쳐났는데 촉나라는 인재가 부족하기 짝이 없었지요.
      평범한 왕...? 환관에 놀아난 왕이 평범한 왕이라구요?

      관우의 죽음이 촉의 멸망을 자초한 건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유비가 대군을 일으키다가 패배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나라가 배반을 한것도 관우의 잘못이라고 봐야하나요?
      오나라의 배신이 없었다면 아예 형주를 잃지도 않았겠죠.

      관우와 제갈량의 촉의 원흉이라.....
      관우와 제갈량이 없었다면 촉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대체 뭘 읽고 어떤 조사를 하고 오셨는지 알수가 없군요

      2013.02.25 11:25 신고
    • SJ  수정/삭제

      제갈량이 군사적인 재능이 없다는 말은 처음 듣는군요.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제갈량은 내정보다는 군정에 더 재능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물론 내정도 잘 수행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내정을 총괄하는 승상보다는 군정을 맡는 참모, 군사로서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평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래전에 본거라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군요. 집에서 책 찾아보고 찾을 수 있으면 추가하겠습니다)

      그리고 북벌은 단지 선왕의 유지를 받드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적어주셨듯이 북벌을 통한 실질적 이득도 있었거니와 제한된 전쟁을 통해서 위나라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촉이 전쟁을 하지 않고 국력을 키운다면, 그동안 위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강대해질 것이고 그 힘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졌을 것입니다. (물론 위나라가 거듭된 실정으로 국력을 알아서 크게 깎아먹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마냥 기다리기 보다는 어느 정도 힘을 키운후에 위나라와 국지전을 벌임으로써 위의 군사력을 소모케 하고 군사력을 복구하기 위해 위의 국력을 소모케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북벌을 통한 선제 공격으로 한중을 치는 것을 견제할 수도 있겠죠. 만약 그냥 기다리다가 위나라가 먼저 쳐들어 온다면 최종적으로는 위군을 물리친다 하더라도 그동안 위나라에 점령된 지역에 대한 지배권 상실은 국력이 약한 촉에게는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농경이 기반이던 당시에 영토를 빼았긴다는 것은 국가 경제력에 직접적인 타격이 됩니다. 비록 일시적인 상실일지라도 수확기를 놓친다거나 적군이 퇴각하면서 농작물을 훼손한다면 일년치 세수가 사라지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제갈량의 북벌은 촉의 수명을 그만큼 연장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2013.03.06 22:35
    • 위도우돌대가리  수정/삭제

      돌대가리야 제갈량북벌하면서도 촉의경제는더좋아졌다.ㅋㅋㅋ기르기위한..주도적인북벌였어 ㅋㅋ

      2015.06.23 23:32
  4. 해피선샤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2013.02.26 00:39 신고
  5. 어리버리선생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황충에 대해 포스팅좀 해주세요.ㅠ.ㅠ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얻어갑니다.

    2013.02.26 04:54 신고
  6. kellsen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 유선에 대해 좀더 많이 알 수 있게 하는 글이네요. 촉한의 멸망과 유선 그리고 환관 오늘날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2013.02.26 09:51 신고
  7. 개념붕괴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혹여나 잊으셨을...수도..ㅠ ㅎㅎ

    그동안 일이 바빠서 들리지 못 했습니다.

    오랜만에 들려보니 수북이 쌓인 좋은 글들을 비롯해 이렇게 삼국지 코너까지 생기고..!
    체리님의 성실함이 돋보입니다!
    삼국지는 저도 오랫동안(이라고 표현하지만 아직 어린놈인데..ㅋ;;)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데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확실히 촉한 후기의 대표적 인물들로 꼽히는 강유와 유선인데..평가가 항상 강유만 욕을 먹는게 좀 안타까웠던지라... 유선에 대한 비평,잘 읽었고요~ 다음 포스팅 역시 기대하겠습니다!

    2013.02.27 11:47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절대 잊지 않았지요! 제가 어찌 님을 ㅎㅎ
      사실 요즘 한참 바빠져서 연예계 글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구요.... ㅎ
      다시 자주 들려주세요 ㅎ

      2013.02.28 10:32 신고
  8. 탈탈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선이 무능했던 건 저도 인정합니다. 난세는 커녕 평화기에도 모자란 군주감인 것은 맞지요.그런데 제갈량의 책임도 분명 있습니다. 제갈량은 유선을 보좌하면서 사실상 승상부 독재체제로 만들어 본의 아니게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어버렸고 유선이 제대로 된 황제 노릇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 큰 실책입니다. 허수아비라도 황제는 황제인데 아직 그릇이 아니라면 제갈량이 유선을 잘 가르쳐서 자기 사후에도 좋은 왕이 될 수 있게 했어야 하는데 북벌과 정치에만 신경써서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왕을 신경쓰질 못한 것이 문제였고 그것이 제갈량 사후 유선의 황음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하다 못해 신하를 쓰는 법이라도 가르쳐놨어야 했는데 제갈량 자신도 사람 보는눈이 꽝이니 뭐 말 다했지요.(유비가 말린 마속을 중용하고 그 결과는 대 참패) 제갈량 사후 유선이 40년가까이 통치하면서도 민란 하나 없던 것은 그만큼 제갈량이 스스로 유선의 신하를 자처하며 통치했기에 그 여파가 꽤 오래 간 것이라 생각됩니다.(자신의 위엄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유선의 이름으로 하였으니, 북벌도 꼭 황제 동의를 얻지 않으면 안 나갔지요.) 제갈량 사후에도 보좌진을 잘 만들어 유선의 모자람을 메우려 했지만 왕국에서 왕 자체가 그 보좌를 받아주질 못하니 별 수 없는것이지요.
    그리고 윗 댓글의 widow7님의 의견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북벌로 인해 촉나라가 피폐해졌고 백성들을 고생시킨 건 사실이니깐요.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결국 위나라에게 먹힐 것이고(국력차이가 상당하니) 스스로 한나라 유지를 받드는 것이 명분이니 북벌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북한이 적화통일에 목숨 걸지 않을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widow7님의 의견 중 관우의 실책에 대해서는 저도 100%동의합니다. 형주는 분명 요충지이고 한중과 더불어 촉에서 중원으로 나아갈 중요한 관문인데 손권과 친하라고 제갈량이 그렇게 일렀건만 손권의 속을 박박 긁다가 반유비파인 여몽에 의해 형주를 빼앗기고 가장 무모하고 어리석은 전쟁인 이릉대전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이 되니 관우의 실책도 장난 아니지요.
    분명 유선은 유능한 군주는 아닙니다. 하지만 촉나라의 멸망을 너무 군주 한 사람에게만 돌리는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촉나라에 내재된 문제가 곪아 터지고 그로 인해 외부 침략을 막을 힘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렇다고 해서 유선에게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닙니다. 그도 책임은 있지요)

    2013.02.28 02:42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흠... 님 말씀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제갈량이 너무 독재체제로 만들었다는데는 조금 의견이 다릅니다.
      조조와 헌제와 관계와는 달리 유선은 충분히 인사진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갈량을 견제하는 세력도 내부적으로 존재했으니 제갈량이
      무조건 다 촉을 장악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유선의 주위에는 이엄, 비위 (비위, 장완은 북벌에 잘 동참하지 않음), 곽유지, 동윤, 그리고 초주 등의 신하들이 있었기에 원하기만 했다면
      잘 해내갔을 수도 있겠지요.
      게다가 유비 자체도 자기 사후에 제갈량의 독재를 은근히 견제해서 군권은 조운에게 그리고 이엄에게도 큰 권위를 주기도 했지요.

      촉의 멸망 자체를 유선하나로만 돌리기는 솔직히 조금 억울한 부면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강유가 연속 8차례에 걸쳐 한 북벌을 생각하면요.
      하지만 군주로써 강유가 연속 그리 했다면 (제갈량과 강유는 또 다르죠)
      적절히 제지하고 그를 보좌할 인재를 구해야 했는데 주색으로 시간을 낭비했으니 결과적인 책임은 그에게 있다는 것을 무시할수는 없겠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2013.02.28 10:37 신고
  9. 시타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비가 세운 촉나라는 크게 세가지 부류의 인물들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익주지역에 거주했었던 인물들. 그리고 유언과 함께 익주로 들어왔던 인물들.

    마지막으로 유비와 함께 익주로 들어온 소위 형주 세력들입니다.

    이 세 부류의 인물들은 유비가 있을때는 유비의 카리스마 아래에서 하나로 뭉쳐져 있었지만,

    유비가 촉나라를 건국한 이후로 오래지 않아서 사망하였기에,

    유비 사후에는 그 세 부류의 그룹이 하나로 잘 융합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유비의 뒤를 이은 유선은 그 그룹을 하나로 묶을 만큼의 능력도, 카리스마도 없는 인물이였기에,

    제갈량이 전면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라가 하나되지 못했을때 그 나라를 하나로 묶기 위한 방법중 가장 강력한것이

    다른 나라와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제갈량은 그렇게도 열심히 북벌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죠.

    물론 유비의 뜻을 이어받아 삼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제갈량이 과연 자기 대에서 삼국을 통일할 수 있을꺼라 생각해서 그렇게 북벌을 밀어붙였느냐고 하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이들을 하나로 묶는게 목표가 아니였을까요?

    하지만 제갈량 또한 형주에서 들어온 그룹이고, 다른 그룹들은 형주에서 온 그룹들보다 아래 서열에

    속해있는 현실이였기 때문에, 제갈량에 대해서 마냥 좋게만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갈량의 북벌은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빈틈없이 진행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갈량은 형주 그룹의 대표였고, 제갈량이 실패한다는건 형주 그룹이 흔틀릴 수 있는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북벌이고 자시고, 나라가 쪼개 질 수 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마속에 의해 북벌이 실패했을때, 제갈량은 자신의 작위를 낮춰야 했습니다.

    다른 그룹이 들고 일어나기 전에 선수를 친거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제갈량의 운명을 강유가 이어받습니다.... 강유는 제갈량보다 전략적인 면모에서 떨어지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오나라는 합비전투에서 장료에게 완전히 발린다음부터 점점 북벌에 소극적이게 됩니다.

    젊은날의 총기를 잃어버리고 말년에 맛이 가버린 손권에게 삼국통일은 별 관심없는 주제였습니다.

    그리고 오나라는 촉나라 보다도 더욱 더 중앙집권이 되지 못한 나라였습니다.

    강동 귀족들을 손가의 이름으로 억지로 묶어놓고 있었을 뿐이지요.

    합비전투에서 그렇게 처참히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손권이 맛이간 오나라는 개판 오분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갈량이 생각한 북벌은 오와의 양동작전이지 촉나라의 단독 공격이 아니였죠.

    따라서 북벌을 통해 성과를 내어서 국가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어 보려고 했던 제갈량의 생각은,

    성과없는 북벌에 의해 나라가 피폐해 지는 역효과만 불러 일으켰습니다.

    목적은 정확하고 바람직했지만, 결과는 안좋게 된것이지요.

    그렇다고 북벌을 해선 안되는거였다고 말하는것은

    촉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듯이, 유선은 성도에서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죠.

    유선은 무능했지만, 다른 신하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그런 인물은 아니였습니다.

    잘 보필할 수 있는 능력있는 신하가 있었다면, 유선은 알아서 잘 따라올 그런 인물이였습니다.

    물론 황제가 신하가 하는데로 따라가는 상황 자체로도 유선이 무능함을 드러내긴 합니다만...

    결국 촉나라에는 인재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장완, 비의(비위가 아니라 비의 입니다), 동윤을 끝으로

    능력있는 인재의 대가 끊긴거지요. 그에 반해 위나라에는 인재가 넘쳐흐르고 있었고...

    따라서 아마 유선이 그때 항복하지 않았어도 촉나라가 더이상 유지되기는 힘들었을거라고 봅니다.

    부족한 인재, 동맹을 맺어야 하는데 맛이 가버린 오나라, 그만 둘 수도 없는 북벌...


    촉의 멸망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뭐합니다.

    유선은 정치적 눈이 없는 순해빠진 바보였고, 강유는 제갈량만큼의 능력이 없는 장수였습니다.

    그리고 촉나라에는 인재가 너무 부족했고, 이미 오랜 북벌로 백성은 힘든 상태였습니다.

    제갈량이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해서 야심차게 실행했던 2번의 출사가 실패한 그때

    촉의 국운은 끝난거나 다름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13.03.03 07:45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솔직히 유선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일단 한 나라의 주인은 군주라고 보기에 결과적인 책임이 군주에게 있다고 적은것입니다 ㅎ

      일단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촉의 가장 큰 실패 원인 인재발굴이었고,
      두 번째는 아무것도 안한 유선의 무능함, 세번째는 그런 촉의 상황에도 지겹도록 북벌을 계시하기로 한 강유의 고집이었겠죠.

      비위에 관해서는 그냥 삼국지 표기를 적었습니다 ㅎㅎ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ㅎ

      2013.03.03 09:31 신고
  10. 메트로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필요없슴다 당시 위나라 땅넓이나 가옥수 그리고 지형 정통성 어느것을 봤을때 누가 맡아도 촉은 망했을겁니다

    2013.03.29 19:16
  11. gggggg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갈량 은 내정에 관련된 능력이 뛰어났고 실질적으로는 봉추 방통이 군사적으로는 대단했다고 왠만한 학자들은 아는 사실인데 말이죠.....

    2013.04.07 09:15
    • ㅅㅅㅅㅅ  수정/삭제

      맞아요
      다들 연의 이야기 하시는듯...
      정사에서는 군사적 재능도 제갈량보단 유비가 뛰어났다는 말이 있고 제갈량은 내정은 잘했지만 그리 뛰어난 군략가는 아니었다고 하네요..
      유비 생전에 제갈량과 함께 승리한 전투도 대부분 유비의 전략이었습니다
      제갈량은 뻥튀기가 심한것이 소설 삼국지연의입니다

      2013.06.29 23:37
  12. 뒷북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좋은글을 이제야 봤네요
    제갈량은 단연 삼국지 최고의 영웅입니다만 몇살어린 사마의보다 일찍 세상을떠났죠
    창과 방패의 싸움은 사파에 가까운 사마의가 결국 제갈량을 막았고 장수하고 자식농사도 잘한거 같습니다

    한 두가지 능력이 출중한가가 중요한게 아니며 영웅놀이가 아닌 삼국지의 교훈은 균형이라 봅니다

    자존심강한 관우의 아집이 남긴교훈도 작지않고 유비마저 수많은 군사들을 사지로 내모는 바보짓을 합니다 오히려 위를 쳤으면 오가 미안헤서 라도 같이 손잡고 위를 망하게 했을듯한데 무릇 높은자리에 있을수록 크게 봐야하는데 감정은 사람을 바보로 만듭니다

    2014.08.05 15:00
  13. 지금이라도 검색해 들어오시는 분들께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정사 쪽보단 연의를 기반으로 이야기 하시고 계신것 같은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0947
    이 글을 참고하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사, 각 인물전들을 참고하여 정리해놓은 자료입니다.)
    물론 역사는 직접 보지 않는한 확신 할 수 없고 개인의 의사가 들어갈 수 밖에는 없지만
    다른 생각을 비판만 하기보단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7.08.20 03:03

삼국지 캐릭터 중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해? 라고 말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운” 을 서슴없이 고르고는 합니다.
흔히 <삼국지> 로 알려진 <삼국지연의>에서의 조운은 거의 완벽하다고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삼국 연의에서는 “무패장수” 라고 불릴 정도로 거의 패한적이 없으며 (강유에게 패한 정도밖에는),
지략도 뛰어날 뿐더러 충성심도 굉장히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 게임들에서 나온 조운은 얼굴까지 잘 생겼습니다.
관우나 장비에 비해서 조운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꽃미남의 얼굴을 가지고 젊게 나오기도 하죠.
결국 조운은 현재로 말하자면 뭐 하나 못하는게 없는 좋게 말하자면 오늘날의 엄친아 이며,
조금 심하게 표현자면 “말도 안되는 개사기 캐릭터” 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삼국지연의> 가 아닌 <정사> 로 평가하자!” 라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위나라, 오나라 장수들은 많이 부각되는 반면에 촉나라 장수들은 많이 평가가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나관중 자체가 <삼국지연의> 를 기록할때 “촉나라만세” 주의로 기록을 했고 실제로 많은
촉나라 장수가 위나라 그리고 오나라 장수들보다 훨씬 더 과대포장되는 일이 있긴했죠.

흔히 가장 많이 과장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삼인방이 있으니 바로 관우, 제갈량, 그리고 조운입니다.
일단 평균적으로 말하자면 셋다 부풀려진 부분이 많습니다.
허나 제갈량같은 경우는 오히려 기록되지 정사와 역사 속에서는 언급되지만 연의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많기에 쌤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우와 조운이 저울대에 매달리는데 이번에는 조운에 관해서 적어보고자 합니다.


조운이 과대평가 논란에 시달리는 이유가 몇가지가 있습니다
1) 정사에서 관우나 장비에 비해서 저술된 양이 적다
2) 정사에서 조운의 직위는 다른 장수들에 비해서 낮다 정도로 압축이 됩니다.

그렇기에 조운은 무력실력은 별로이고, 공도 별로 인도 그저 유선을 구했기에 공로를 인정받았고,
나관중에 삼국지에 의해서 다시 태어났다 정도로 접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조운은 정말로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일단 정사의 기록양을 놓고 그 장수가 훌륭했는지 안 훌륭했는지는 논할 수가 없습니다.
단 조운전의 양이 적은 이유는 바로 조운이 수행했던 임무의 특성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삼국지연의와 다르게 조운은 전장에서의 공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조운의 직업이 바로 “경호실장” 정도 되었던 것이지요.

조운의 직책은 유비를 호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딱히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호위대장이 군주를 버리고 전장에 나가는 것을 보셨나요?
호위장수의 임무는 군주의 옆에서 군주를 보호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조운은 그런 호위장수의 임무를 수행했기에 상대적으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등에 비해서
전장에 나갈기록이 적었던 장수중에 하나였습니다.

비슷한 예로 최근에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셨다면 김유신(엄태웅)이 밖에서 전쟁하며 상장군이니,
병부령이니 하면서 인기가 늘어나고 월야(주상욱)까지 화장군의 지위를 얻는 동안에
알천(이승효)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선덕여왕 곁에서 여왕을 지키고 있었죠.


그렇다면 조운의 무력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평가받고 있을까요?
물론 <삼국지연의> 에서 나온 조운의 무장은 심하게 과장되어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이름이 있는 무장과 붙어서 싸운 경우가 상당히 적었습니다.

사실 전장에 나갔어도 조운은 후방에 있어서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서는 일이 적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어쨋든 유명한 장수를 벤 적이 없다고 해서 그 장수의 무력이 낮다고 평가할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적어내려가는 증거들을 보면 조운의 무예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저 착하게만 알려진 유비지만 사실 유비의 인용술은 조조 못지 않았습니다.
그런 유비가 자신의 호위를 관우, 장비가 아닌 조운에게 맡기게 됩니다.
실제 조운은 유비를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또한 장판파 전투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운은 유비의 가족의 경호를 맡았습니다.
한 나라의 군주가 자신과 자신의 몸을 맡길 장수로 그저 그런 무력을 가진 장수를 선택하겠습니까? 
 

2) 장판파전투가 과장된 것은 사실입니다.
조운이 상대한 군대는 당연히 80만이 아닌 한 5000명의 정예기병으로 추정됩니다.
80만 vs 1 을 듣다가 5000 vs 1을 들으면 당연히 약해빠져보입니다.
허나 홀몸도 아닌 아이를 안고 가는 상황에서는 한명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듭니다.
만약 조운이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본인과 유선히 무사히 돌아올 수가 있었을까요?
(물론 일부는 차라리 유선이 무사하지 않았었으면 하기도 합니다만...)

3)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게 조운의 한중전입니다.
조조가 총애했던 하후연이 황충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서 조조가 직접 참전을 하고,
사실 황충은 큰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운은 약 몇십명을 이끌고 조조의 대군을 상대하죠.
물론 여기서 “얼마나 대군이었느냐?” 라는 논란도 한참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적어도
천여명 정도로 여겨질때 수십기만 가지고 황충을 구해낼 수 있었다면 조운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잘 알려주는 부면입니다.

4) 마지막으로 조운의 무예의 활약은 그의 나이 70세에 가까웠을 때입니다.
제갈량이 마속을 앞세우고 조운과 등지를 위병으로 사용했던 그 전쟁에서 조운은 조예군의
청년 장교  5명을 살해하는 큰 공을 세웁니다. (연의에서는 이 장수가 한덕과 그의 아들들로 묘사되죠)
70살이나 먹은 노인이 청년 장교 5명을 살해할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그가 애초에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는 장수임을 시사합니다.

이 외에도 그 짧은 기록을 한 진수 역시 조운을 “유방의 하후영과 같다” 라고 칭찬하였고,
그를 아주 뛰어난 장수로 유비도 온 몸이 담력 덩어리다 라고 칭찬을 한 점을 보면 절대
그의 무력이 낮았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 실제의 조운은 어떤 장수였을까요?
정사의 기록이 너무 적지만 그 뒤에 별주를 넣은 배송지의 삼국지주의 따르면
그는 지장이며 시국을 보는 눈이 뛰어난 장수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성직이 올곧아 직설을 잘하기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례를 들자면 유비가 익주 땅을 얻은 이후에 성도의 땅을 자신의 여러장수에게 분배하려고 하자,
조운은 아직 천하가 통일 되지도 않는데 익주의 땅을 빼앗아 분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하여
유비에게 그렇지 말것을 직언했으며 그 결과가 익주가 안정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유비가 관우의 죽음 이후 복수를 하려고 하자 직언을 하며 반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말을 듣지 않는 유비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또한 계양을 점령했을때 조범의 동기를 투항이후의 동기를 잘 분석해내서 거리를 멀리두었고,
기곡에서의 패배에서도 수습을 잘해서 최대한의 피해를 줄이고 퇴각을 하는 등 통솔력과
사물을 보는 뛰어난 눈을 가지고 있는 장수이기도 했습니다.


흔히 기곡에서의 패배를 가르켜 사람들이 조운이 역시 무장으로써는 약하다라고 보는
반면도 있던데 이 역시도 잘못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갈량은 조운-등지를 주력병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용의부활> 에 나오는 점과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인데, 조운과 등지는 버리는 패였던 것입니다.

역시 위에 <선덕여왕> 드라마의 예를 들어본다면 설원이 자신을 본부대로 삼고 김서현을
미끼로 삼아 성동격서를 하게 해서 자신을 승리를 거두고 김서현은 죽든 말던 신경쓰지 않은것…
비슷한 경우입니다.

마속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제갈량은 마속을 선봉으로 세워 가정전투에 임하게 했으며,
그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완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운은 오히려 패배를 최소로 줄인채
깔끔하게 퇴각을 했습니다.
공과 사가 분명하기로 알려진 제갈량 조차 그런 조운을 칭찬해 상을 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조운은 그 상을 거부하고 직책이 강등당하는데 불만없이 따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조운은 정말 과장된 장수였습니까?
단순히 “무인” 으로 보자면 과장된 장수가 맞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원소군 최고의 장수인 문추를 다소 어린나이에 딱히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물리친 점이나,
조인의 30000의 부대를 상대로 한 500명을 이끌고 가서 조인의 팔괘진을 박살낸점이나
70먹은 노인으로써 위의 장군이었던 한덕과 그의 모든 아들을 죽인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판파에서 80만의 조조군을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유선을 구한점 등등이요.

그러나 장수로 보자면 조운은 과장된 바가 없습니다.
장수로서 어긋남이 없었고, 황충을 구하는 장면이나 패배를 수습하는 장면에서 맡겨진 일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막말로 조운은 모두가 다 뚫릴때 끝에서 막는 최고의 수비수이자 수문장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볼때 조운은 정말 삼국지 시대의 촉군에서 유일하게 흠이 잡을때가 없는
촉나라 최고의 무장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닥터콜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삼국지에 관심이 많아요 이런 글 계속 올려주세요.ㅎㅎ 저도 조운을 가장 좋아합니다. 잘생겼잖아요.-_-;; 삼국지 게임에서도 굉장한 미남자로 나와주시는..;; 여장수 키우면서 조운이랑 결혼시키려고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2013.01.10 18:39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삼국지라면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관심있어하는 부면이죠 ㅎ
      진짜 조운은 개사기 캐릭이죠.
      능력좋다는건 인정해도 얼굴까지 초 꽃미남이니 ㅎㅎ

      2013.01.10 22:45 신고
  2. ogk5991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예에 대해서는 뻥튀기가 약간 있기는 해도, 자기 맡은 일은 깔끔하게 잘 해내는 그런 장수고 군인이라는 이야기죠.

    2013.01.10 18:54
  3. 에바흐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장판파는 '무쌍'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일이죠.
    '겨우' 5천 기병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삼국지 역사에서 조운의 장판파 수준의 괴력을 보여주는 무장은
    훗날 문흠의 아들 문앙 정도가 다 입니다. 압도적인 괴력이라 평가해야 옳습니다.

    2. 황충을 구했다기 보다 황충이 조조의 보급선을 끊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조운이 급히
    황충을 구하러 갔는데, 우연히 조조의 부대와 마주쳤다는 기록이랄까.. 그리고 치고 빠지기로
    조조를 유인하지요. 왠만한 담력으론 어림도 없는 전공이라능..

    3. 조운은 익주 정벌전에서 참전하지요. 형남에서 제갈량, 장비와 함께 출발해서 각기 군을 이끌고
    세 갈래로 나뉘어 공격했는데, 매우 뛰어난 활약으로 성도까지 여러 군현을 평정하고 올라갑니다.

    4. 조운의 공적 가운데 잘 언급되지 않는 것이 유비의 오나라 정벌을 막으려 했다는 것과
    후방에서 유비를 지원하다가 유비가 크게 패배하고 퇴각하자 군을 이끌고 유비를 안전히
    퇴각하도록 도왔다는 점이죠. 여기서 더 놀라운 건 단순히 군을 퇴각시킨 것만이 아니라
    그대로 오나라 군을 공격하려고 군사를 더 전진시켰다는 겁니다. 보통 담력이 아니랄까요..
    물론, 오나라 군은 이미 퇴각하고 없어서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지요.

    2013.01.10 20:35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1. 맞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워낙 80만 vs 1 로 알려지다보니 5000대 1이라고 하면 적어보이니 봅니다. 사실 보통인간으로는 3대 1도 힘든법인데...

      2. 병력 수십기를 데리고 갔다고 하는데 조조군이 적어도 몇천은 됐을텐데.. 괜히 유비가 담력덩어리라고 한게 아니죠 ㅎ

      3. 그렇습니다. 언급은 안했지만 조운의 대활약중 하나죠. 단 이 활약때는 장비쪽이 엄안때문에 더 두드러졌을뿐

      4. 사실 그 때 유비에게 직언을 한 사람이 얼마 안됐죠. 워낙 유비의 성정이 관우에 관해서는 강했던지라... 제갈량과 조운이 그나마 파직을 면했고 진복은 파직당하지 않았나요?
      그래도 원망 않고 유비 보호에 나서니 충신중에 충신이죠.

      조운은 그냥 소리없이 강한 미친존재감이었다고 보면되죠 ㅎㅎ

      2013.01.10 22:49 신고
  4. 용작가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네요 ^^
    어릴때부터 조운은 참 멋진 장수라 생각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2013.01.10 22:08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저도 조운을 좋아했던터라 촉 과대평가설이 나오길래 조사를 해봤더니 진짜 신적인 (80만 vs 1)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사실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만큼 조운의 공이 컸더군요 ㅎㅎ

      2013.01.10 22:50 신고
  5. 초록누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리블로거님 글 읽으면서 다시 삼국지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몇번이고 읽어도 흥미로운 인물들, 재해석되는 인물들...
    저도 조운 좋아합니다.

    2013.01.10 22:32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누리님 정말 반갑네요!! ㅎㅎ
      사실 요즘에는 촉보다는 오나 위를 재평가하며 보고 있습니다.
      위나라, 촉나라 장수들이 너무 과소평가 되었더군요.
      특히 가장 아쉬워하는게 위나라 트리오 장합, 서황, 장료죠.
      정말 님 말씀대로 삼국지는 다시보고 다시봐도 흥미로워요.
      요즘 잘 지내시죠? ㅎㅎ

      2013.01.10 22:51 신고
  6. 살아남기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문열의 삼국지를 보면 장판파 전투 당시, 조조가 조운에게 화살을 쏘지 말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정사에는 없다고 했었죠. 게다가 그 5천이라는 군사도 조조의 호위부대인 철기병...화살을 피하며 그런 정예부대를 뚫고 나갔다는 것도 신기하네요,

    2013.01.11 09:54
  7. 해피선샤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그렇군요..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2013.01.12 00:37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너무 답변이 늦었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한국은 벌써 월요일이 끝났을텐데 좋은 한 주 되세요 ㅎ

      2013.01.15 10:06 신고
  8. 황엽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용의 부활'이 개봉될 당시 댓글중에 이런게 있더군요.
    장판파에서 조운이 아두를 구할 당시 말의 엉덩이에 이런 경고문구가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엔 아이가 타고 있어요.'

    제갈량에 관한 포스팅에서 즈라더님 덕분에 알게된 사실인데 백마에서 현덕이 숨을 거둘 때
    군권을 조자룡에게 맡겼다고 하죠.
    공명이 유비의 유언에 혹해 제위를 탐했다면 조운에게 아작났을거란 얘긴데, 주군의 신뢰를
    그만큼 받았으니 충의가 대단했단 방증일 겁니다.

    환갑만 넘어도 장수했네 잔치를 벌인게 불과 수십년전인데 70의 노구로 적장 다섯을 베었다?
    조운의 무력에 대해선 더이상 논할게 없을 겁니다.
    결국 실제 보여준 전과가 적어서 과장됐을 망정, 능력자체는 개쩌는 장수였던게 분명하네요.

    2013.01.12 04:34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정치적 집권은 공명에게 군권은 자룡에게...
      사실 유비가 아주 덕군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어찌보면 조조보다
      더 간웅이었을 수도 있다는 ㅎㅎ

      70의 노장이 5명의 교위를 베었다는 실력은 장난이 아닌거죠.
      개인적으로 조운은 보여줄 기회가 적었던 사기캐릭이었다고 느껴집니다.

      2013.01.15 10:07 신고
  9. 어리버리선생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자룡. 조운을 좋아라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13.01.12 06:53 신고
  10. 시타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에 바빠져서 잘 못들어오다가, 들어와서 봤는데 삼국지 이야기가 있어서 잘못들어왔는줄 알았네요ㅋㅋ

    삼국지라는 주제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워낙에 인기가 있는 주제이다보니,

    삼국지라는 주제로 글을 쓰시는건 아마 연예인에 대해 글을 쓰시는것 보다 더 힘들거라는 생각이듭니다ㅎ

    정사와 연의의 차이, 실제인물과 삼국지게임 인물의 차이 등에 의해서 조금만 수틀려도 엄청난 콜롯세움이

    열리게 되서 댓글이 지저분해지는걸 한두번 본게 아니라서요ㅎㅎ

    그래도 저도 참 좋아하는 주제이다 보니 반갑네요ㅎㅎ


    저도 실제 조운은 어떤 인물인지 한번 찾아보고, 질문도 해보고 해본적이 있습니다.

    조운은 정사에 기록된 부분은 짧지만, 배송지의 주를 통해 많은 내용이 전해지고, 배송지의 주석은

    신뢰도가 높은 내용이라는걸 비추어볼때, 무장로서의 조운의 능력은 분명히 비범한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운만큼 개인적인 능력을 보인 촉나라 장수는 거의 없죠.

    하지만 말씀하셨듯이 유비는 죽을때까지 조운을 관우, 장비, 마초보다,

    심지어 황충보다 한수 아래의 관직으로 취급합니다.

    유비가 조운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것도 아닌데도, 조운을 한수아래의 관직을 내린다는건,

    분명히 조운의 군공이 저들과 동등한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는 말이겠죠.

    이는 조운이 공을 세우려고 나서질 않았는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인 능력과는 별개로, 군을 이끄는 장군으로서의 공은 저들보다 낮았다는 말이겠죠.

    그리고 정사든 배송지의 주석이든, 조운의 '군공'에 대한 이야기는 적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유비는 조운을 몹시 아끼고, 중히 여겼지만, 눈에 띄는 공을 쌓은적이 없으니,

    개인적으로는 아끼지만 한중왕 또는 촉황제로서 저들과 같은 취급을 해 줄 수 없었겠죠.


    그래서 '개인적인' 결론은, 조운 개인의 능력은 의심할 나위없는 출중한 것이나,

    그 안목이 뛰어나다는 유비가 끝까지 한수 아래의 취급을 했었다는걸 보면,

    장수로서의 능력은 관우, 장비보다는 한단계 아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조운의 지위가 과분한건 사실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조운이 범상치 않은 굉징히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었고, 충성심도 엄청났었고,

    군사능력 또한 중국을 호령했던 장수인 관우 장비와 비교해서 그렇지 훌륭한 편이였다는걸 미뤄보면,

    분명 탑클래스의 장수였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13.01.12 07:30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연예계 이야기만큼이나 삼국지 이야기들도 재밌더군요.
      특히 정사와 연의 비교해보는 것 등등.. ㅎ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후자라고 생각됩니다.
      능력이 있어도 딱히 나서기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으로도 어떤 면에서는 장비나 관우가 조운보다
      뛰어났을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개인적으로 한편으로는 조운이
      형주를 지켰고 관우가 촉에서 북벌을 했다면 촉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드네요 ㅎ

      2013.01.15 10:10 신고
  11. 尹晶一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창 필마 상산 조자룡 조운 최고의장수 ~~~
    장판파에선가요 *** 단창 필마로 조조 80만 대군을 ㅎㅎ
    ( 주군 유비의아두 유선을 품에안고서 )

    2013.01.26 15:56
  12. 태민쓰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운이 유비의 호위대장이라는 말은
    장군의 기세는 호랑이의 그것과 같소 라고 한 말에서
    유래된 것이지
    경호를 뜻하는 호위와는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 입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2013.02.06 06:48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굳이 "호위대장" 이라는 것때문에 호위를 맡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유비가 자리를 잡은 후 대체적으로 유비의 호위를 맡은 사람은 조운이었습니다.
      게다가 유비의 가족도 호위를 맡았던게 조운이구요.

      2013.02.06 10:36 신고
  13. 111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가지 지적해드릴것이 있습니다. 일단 나이 70에 5명의 청년교위를 베었다는것은 연의에만 존재하는 내용이고 정사에는 없습니다. 두번째. 장판파의 경우 아두및 부인들을 호위해서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에 물리적 충돌은 최대한 자제했다고 보는것이 옳구요. 세번째 기산에서의 패배는 조운이 명백히 패배한 것이고 패배한것 때문에 강등까지 당했기 때문에 아주 높게 보기는 그렇습니다.

    익주에서 공을 세운경우 물론 조운또한 공을 세운것은 맞지만 조운이 유독 뛰어난 공을세운것이 아니라 많은 촉의 장수들이 공을 세웠습니다. 조운, 위연, 장비, 제갈량, 황충등등..... 굉장히 많죠.

    인품이나 무력 나름의 지력을 갖추긴 했지만 군재로 볼때 관우,장비, 한때 군웅이엇던 마초에는 확실히 못미치는 무장이었습니다. 주로 호위무장, 간혹 별동대나 부장을 맡은 장수라고 하고있죠.

    진수가 한의 건국공신중 1명인 하후영과 비교했는데 적절하게 비교했다고 봅니다.

    2015.08.23 22:08

정말 오랜만에 적어보는 글 같습니다.
항상 연예계에 관련된 글들을 적었는데 요즘 생활이 바빠지다보니까 제대로
연예계쪽 이야기를 따라잡지도 못했네요.

그런데 글을 읽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동료 블로거님의 글을 보고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 하나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삼국지" 에 관한 글입니다.
요즘 삼국지에 관해서 많이들 글이 올라오고 있는데 삼국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런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아마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없는 삼국지일텐데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대부분 "삼국지" 라고 하면 유비가 주인공이고 가장 착한 사람이고
제갈량은 가장 천재이며, 조운은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삼국연의" 를
생각할 것입니다 . 

물론 어렸을때 저도 삼국지를 그런 식으로 접했던 것 같네요.
그런 "삼국연의" 에 영향을 받아서 촉나라를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삼국지 조조전" 과 조조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다른 나라들도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조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관중에 유비의 촉나라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참 여러사람 망쳐놨구나 라고

생각을 할만한 여러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둘씩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많겠지만 오늘은 나관중이 가장 크게 망쳐놓은 몇몇 중
한명인 서황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서황: 허무하게 죽은 위나라에 대들보

위나라 장수 가운데서 가장 높여진 사람이 장료라면 가장 낮춰진 사람중에 하나는 서황일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다 "삼국연의" 에서는 관우의 친구로 묘사되는데 둘다 약간 허무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역사적으로 본다면 서황은 위나라에서 장료와 버금갈만한 훌륭한 장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여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고 패배를 모르는 장수중에 하나였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특히 그는 촉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로 그 상대가 관우였습니다.
아마 이 전쟁에서 거둔 큰 승리때문에 서황이 더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당시 관우는 거의 번성을 함락시키기 직전에까지 갔었고 우금은 항복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황은 겹겹이 포위되어 있던 번성의 포위를 풀고 관우와 직접 맞붙었는데도
관우에게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 외에도 서황은 여포, 원소, 마초 등과의 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하면서 위나라에서도 
가장 공이 많은 장수로써 왜 조조가 서황을 오장군에 한명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렇듯 위나라의 대들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서황은 "삼국연의" 에서 그저 그런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삼국연의" 에서도 서황은 조조의 오장군중 하나이자 무력이 강한 무장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나관중은 서황의 무예를 더 낮게 묘사했으며 그가 때로는 옹졸한 사람으로도 비춰지게
그려놓았습니다.

관도대전에서 서황은 관우가 단칼에 목을 쳐버린 안량과 겨루다가 결국은 부상을 당해서
도망가는 장수로 묘사됩니다.
관우를 전술로 능가하고 무술도 못지 않았을 서황이 관우가 한 칼에 죽인 안량에게 
패배해서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삼국연의에서는 후에 촉장수가 되는 왕평이 촉으로 귀순하게 된 계기가
서황의 옹졸함때문이라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황이 왕평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결국 서황이 패배했으며 왕평이 그것을 지적하자 분개해서
왕평을 죽이려다가 왕평이 귀순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서황은 군율과 관련해서 엄격했지만 조언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옹졸했다는 기록은
딱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황은 참으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역사적으로 서황은 병에 걸려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국연의에서는 서황이 맹달에게 머리에 화살을 맞아죽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맹달이 위나라를 배신하자 그것을 막으려고 신성으로 갔다가 맹달이 쏜 화살에 맞고 즉사한것이지요.
서황이 나이가 들었다지만 백전노장을 그저 평범한 장수로 여겨졌던  (역사적으로는 딱히
언급이 없었고, 삼국연의에서도 그저그런 장수인) 맹달에게 화살한발로 즉사한다는건 
다소 황당하고 허무한 처사라고 밖에 할수가 없겠네요.

이렇듯 서황은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진 비운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관중이 서황의 무예가 출중하다고는 그려놨지만 서황의 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황당한 대목이 주를 이루는 서황의 묘사입니다.



왜 나관중이 서황을 이렇게 일그러지게 묘사했을까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관우에 대한 어떤 숭배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기록할 쯤에는 이미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관우를 띄우자니 관우에게 승리를 거둔 한 사람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서황이 그 제물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추측입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서황은 삼국연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한참 관우나
다른 장수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삼국지 영걸전이나, 공명전, 심지어 조조전에서도 서황은 상대적으로 약한 궁병으로 나옵니다.

그나마 개인에 의해서 개발된 신조조전에서는 서황이 제대로 오히려 역사와 가깝게
묘사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렇듯 위나라와 오나라 장수들은 촉나라 장수들에 허접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삼국연의를 기록한 나관중에 의해서 일그러졌을 뿐이지요.

다행이 요즘은 삼국연의 만이 아닌 정사에 근거한 영화도 나오고 있고 또한 오나라와 위나라를
중심으로한 게임이나 소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더군요.
어쨋든 혹시 삼국연의를 통해서 서황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분이 있었다면 한번
조사해보시고 알아보시기를 바래요.

* 추신: 앞으로 이 시리즈를 연예계 이야기 위해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삼국지는 참 알면 알수록 재밌네요. ㅎ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에바흐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황도 서황이지만, 본문에 언급된 왕평도 저평가..
    조상의 10만 대군을 탈탈 털어버린 명장 중에 명장인데 말입죠.

    강유 때문에 묻힌 듯.

    2012.10.29 02:12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묻힌 인물들이 참으로 많았죠.
      그러고보니 촉나라쪽에도 묻힌 인물이 많았네요.
      그렇지만 위나라나 오나라에 하면 세발의 피인걸로 ㅎㅎ

      2012.10.31 21:45 신고
  2. ogk5991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이 역사를 아득히 앞지르면서 생기는 어이없는 인식 전환들이죠 ㅇㅅㅇ
    그나저나 이런 글로 다시 뵙다니, 뭔가 색다르네요 ㅎㅎ
    앞으로 연예 글이든 이런 그냥 글이든 종종 써주길 바라요 ㅇㅂㅇ

    2012.10.29 04:46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연예계 소식을 잘 따라가지 못하다보니까 이런 포스팅을 할 기회가 생기게 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ㅎ
      좋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2012.10.31 21:46 신고
  3. 어리버리선생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평가된게 아니라 참 불쌍하게 묻힌 인물중 하나인거 같아요!!! 서황. 위나라장수중에서 제일 좋아라 하는데..ㅠㅠ 앞으로 삼국지에 관련된 글 기대하겠습니다!

    2012.10.29 07:00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개인적으로 서황, 장료, 장합 트리오를 좋아합니다.
      다들 막말로 X묻힌 꼴이지요...
      장합도 명장인데 완전 깨지는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하구요...
      나름 부족한 지식으로 앞으로도 적을테니 많이 봐주세요 ㅎㅎ

      2012.10.31 21:57 신고
  4. 해피선샤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가 다른 글이라 새롭고 좋네요~

    2012.10.30 03:38 신고
  5. 황엽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나 들러봤는데 포스팅을 하셨네요. 서공명이라.. 매력적인 캐릭이죠.
    지금은 바쁜데다 좀 욱하는 일이 있어 나중에 다시 들러 몇 자 보태겠습니다.

    2012.10.30 22:15
  6. 황엽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나라엔 명장들이 많았죠. 근데 크게 신임받거나 높은 관직을 누린 건 대개 '조'씨나 '하후'씨들 입니다.
    조조도 자기 혈족이니 팔이 안으로 굽은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원씨집안(소나 술 모두) 밥버러지 친족들보단
    비교우위의 인재들이죠.

    이성(異性)장수들중 중용된 건 하비의 신화 장문원, 제갈량도 극찬한 장준애, 소리없이 강한 서공명 정도?
    8백으로 10만을 막아낸 하비전투도 당시 악진과 이전, 그리고 장료가 수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적벽에서 대패하고 퇴각중에 얘네만 추격을 끊으라고 후미에 남긴 건데 뭔가 냄새가 나지 않나요?

    장합 역시 만일 조가나 하후씨였음 사마중달이 글케 쉽게 의견을 무시하고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추격명령을 내리진 못했을 거란게 제 생각이죠.
    암튼 본래부터 조조를 섬긴 진골이 아닌, 중간에 전향한 장수들은 나름 고생을 진탕한 건 사실일 거구요.

    유비에게 조운이 있었다면 조조에겐 서황이 있었다... 좀 지나친가요?ㅋ
    적벽대전후 강릉에서, 그리고 하후묘재가 죽은 정군산 전투외에 서황은 거의 패전의 기록이 없습니다.
    위무제가 주아부에 비견했다죠? 주아부를 좀 검색해 봤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나 군바리라 전투가 더 중요해. 군주? 너라도 참견은 no!' 고집강한 명장이었더군요.
    질 것 같은 싸움은 암만 명령을 내려도 쌩까고, 승산이 있어야 달려들었던 공통점이 있었죠.
    그런 장수의 휘하들이라 부대의 군기가 엄청 빡신 것도 같았습니다.

    용병이란거 참 고달픈 겁니다. 중세에도 일선에 늘어선 고기방패였죠.
    전향장수들을 포용한 조조의 대범함도 인정하지만, 험한 데만 골라 출격시키는 와중에도 짱짱하게 전공을
    세우고 말년까지 살아남은 저 세 명의 장수들도 정말 대단한 겁니다.

    위의 무장중엔 흔히 하후돈이나 조인을 최고로 치지만, 전 저 삼인이 명장의 반열에 더 가깝다고 믿네요.
    서황은 체리님이 쓰신 대로 무신 관우에게 모욕감을 준 탓에 연의에서 평가절하된 것도 있지만, 위의 후빨러
    진수가 보기에도 주류가 아니니 평가에 조금 손해를 본게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허저야 지금으로 치면 경호실장이니 뭐..

    남들은 모두 활 아니면(서황도 명궁이긴 했죠) 창이나 극같은 장병기를 쓰는데, 달라붙는 근접전에 유용한
    도끼를 쓴 용장이니 근성이야 두 말할 나위 없겠죠.
    어려선 첨 삼국지를 접하고 무조건 유비의 편에서 온갖 게임이나 공상을 했지만, 상대방의 장수로 대부를
    휘두르며 서황이 달려드는 상상이 젤 섬찟하더군요.

    천자를 구한 의인이지만 주군을 바꾼 탓에 쩌는 지휘력에도 불구하고 평생 군단장 함 못해보고, 전장에서
    이슬만 맞다가 노년에 쓸쓸히 병마에 목숨을 내준 맹장을 기리며 한 잔 빨고 잘랍니다.
    연예에 국한된게 아닌 이런 포스팅 좋군요. 담 글도 기대하죠. 그럼 이만 안녕히.

    2012.10.31 09:28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위나라에서 장수중에서 가장 높았던 사람이 하후돈이라고 하더군요.
      허나 실제로 역사로 보면 공은 가장 적었다고 하더군요.
      역시 팔은 안으로 굽긴 하는군요.

      저도 서황이 조운과 같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단 명성이 조운보다 낮았을 뿐이지요.
      조운과 서황이 서로 다른 군주를 섬겼으면 어땠을지도 궁금해지네요.

      저도 예전에는 무조건 유비를 골랐지만 요즘은 조조나 손권쪽을 택하는 재미도 있더군요.
      그러면서 위나라와 오나라에도 관심을 더 갖게 되구요.

      어쨋든 앞으로는 이런 포스팅도 종종해보려고 합니다.
      자주 올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ㅠ.ㅠ

      2012.10.31 22:20 신고
  7. 딸기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이에용 체리블로그님ㅋㅋ
    잘지내시죠?ㅋㅋ

    2012.11.01 09:41
  8. 쭝궈런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황이 조인과 마찬가지로 연의에서 저평가 된 인물 중에 하나이긴 합니다.

    그런데 서황이 연의 때문에 게임에서 궁병으로 나온다는 건 너무 지나친 확대 해석이십니다.

    조조측 장수 중에 조조전만 놓고 봤을 때 동작대 연회에서 활솜씨를 뽐낸 장수가 넷인데

    조홍, 장합, 서황, 하후연입니다.

    이 중에 조홍을 제외한 세 장수가 궁(기)병인데 동작대 연회와 게임상 밸런스의 영향인 듯합니다.

    어쨋든 궁병이 약한 클래스도 아닌데다가 이 부분은 글을 작성하시면서 너무 끼워맞추려고 하신 것 같네요.

    좋은 글 중에 딱 그 부분만 오점이다 싶어 댓글을 다는데 이제보니 일년 반 된 글이었네요...

    딱히 태클을 걸려고 쓴 건 아니고 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것 같아

    댓글 달았습니다. 혹시 기분 나쁘시다면 죄송합니다.

    2014.04.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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