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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4 <삼국지> 촉한의 멸망, 실질적인 책임은 유선에게 있다 (27)
오랜만에 쓰는 삼국지 시리즈 입니다.
제가 주로 삼국지 글을 썼을때는 주로 소설과 역사를 비교하는 글들을 많이 썼었어요.
실제 삼국시대에 살았던 장수들이 과장된 경우도 많았고 어떤 경우는 비하된 경우도 많았기에
그것에 대한 해명글을 적어보고자 해서 적어본 글들입니다.
과소평과된 서황과 과대평가되었다고 여겨지는 조운에 대해서 지난번에 적어봤죠.  
1. 서황, 나관중에 의해 일그러진 위나라의 대들보
2. <삼국지> 조운은 과연 과대평가된 장수였을까?
  
이번에는 조금 초점을 바꿔서 삼국지 최대의 멍청이로 알려진 유선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글은 삼국지 최대의 논란장수 강유에 대해서 적어볼 계획이었으나 그걸 적으려다보니까
유선의 군주로써의 자질이 먼저 생각이 났고, 그래서 강유 이야기를 적기 앞서서 
유선에 대해서 먼저 깔고 적어보는게 낫지 않을까 해서 유선에 대해서 적어봅니다. 




일단 유선은 어떤 인물일까요?
촉 초대 황제이자 삼국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유비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입니다.
물론 유비가 유봉을 양자로 거느리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유봉보다는 유선이 유비의 뒤를
인물로 여겨져왔습니다.
아두라고도 알려진 유선은 역사속에서도 조운에 의해서 장판파에서 구해졌고,
그 장판파 전투로 인해서 유선에 대한 농담이 (현 시대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 되고 있긴 합니다.
유비가 유선을 던져 버리는 바람에 유선이 멍청해졌다는 그런 농담...?

실제 유선의 아이큐가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역사속에 실제 인물이 정말 잘생겼는지 아닌지처럼 말입니다.
단 배송지의 삼국지주에서는 오나라에서 촉으로 보낸 사신이어던 설후가 유선을 가르켜
"무능한자다" 라고 묘사한 바는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무능한건지 군주로써의 무능함을 이야기한 것인지 알수가 없다는 점과
또 역사 자체가 관점에 의해 다르다는 것을 보면 확담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놓고볼때
유선의 군주로써의 무능함은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말하기를 유선은 "뛰어난 신하들이 있을때는" 현명한 군주였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 제갈량의 섭정부터 비위의 섭정에 이르기까지는 딱히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요. 
물론 군주로써 현명하고 뛰어난 신하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뒤집어 놓고 말하자면 "뛰어난 신하가 있을때" 라고 이야기 한다면 
신하가 무능하면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는 군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유선이 그런 군주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것도 어느정도 감안할만 합니다.
그렇기에 초반에는 당연히 신하들에게 의존하는 정치를 필수 밖에 없었지요.
물론 그렇게 된 이유에는 제갈량의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것도 존재합니다.
알아서 척척 잘하는 제갈량이 있으니 딱히 유선이 할 것도 많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어찌보면 그게 유선에게 독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뛰어난 제갈량이 출사전까지는 알아서 해줬고 출사 이후로는 이엄이 안에서
내정을 담당해줬으며, 장완, 비위가 다 담당해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는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고 보는게 맞다고 봅니다.


사실 그 시기에는 유선도 어느정도 의견을 내고 정치를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제갈량이라는 훌륭한 신하가 유선에게 비위, 동윤, 곽유지, 향총 등을
권해주었고 그 신하들이 잘 유지해주었기에 촉이라는 나라가 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선이 잘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면이 있지만 사실 이 시점에서는 촉은 "유선의 나라" 라기보다는
"제갈량의 나라" 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갈량이 죽고나서도 다행이 촉은 장완과 비위라는 훌륭한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장완과 비위는 제갈량 못지 않게 훌륭하게 내정을 소화해냈습니다.
제갈량이 괜히 장완과 비위에게 후사를 맡긴게 아닙니다.
장완과 비위가 제갈량 보다 못했던 부분은 단 한가지... 군사적인 면입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유선이 거의 정치에서 손을 띄었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은 환관 황호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제 유선의 통치의 망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지요.


사실 황호의 등장을 굉장히 경계하는 여러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동윤은 암적인 존재인 황호를 경계해서 실제로 동윤 생존 당시에는 
황호가 전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제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윤이 죽기 시작하면서 정치는 흐트러 지키 시작합니다.

동윤의 수차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첨의 달인인 황호에 점점 유선은 말을 듣기 시작했고,
승상이었던 비위가 암살 당한 이후에는 황호의 세력은 통제가 안될 정도로 거세졌습니다.
강유가 섭정을 할 권한이 쥐어졌다고 하지만 사실 군사적으로만 섭정이 가능한 대장군의
직위로서 제한되어 있던 상황에서 황호는 내정적인 권위를 손에 쥐은채 정사를 농락했습니다.

한번은 강유가 적위 허위정보에 잘 속아넘어가는 황호를 상대로 여러번 허위정보를 흘려
정사를 그르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강유는 황호라는 간적을 없애버리기 위해 유선에게 황호를 처형할 것을 권했지만,
유선은 이 간언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오히려 황호를 보호해주기 위해 "이 자는 그저 환관일 뿐이다" 라고 한뒤 계속해서 황호와함께
그저 주색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전념을 했었지요.



후에 논란이 되는 위연의 방어진은 강유가 버리고 조금 더 위험성이 높은 방어진을 선택했을때,
유선에게 원군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유선은 초반에 황호의 어설픈 점성술만 믿고,
거절을 했다고 보내준 일만 봐도 얼마나 유선이 황호에게 의존해서 나라를 맡겨버렸는지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강유의 논란이 되는 위연의 방어진의 버림은 나중에 적어볼까 합니다)


그 이후로도 유선은 계속해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도처에 드러내게 됩니다. 
실제로 촉이 멸망된 해인 263년 초에 위나라가 쳐들어왔을때 유선은 강유에 의존해
전쟁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강유가 연속으로 패배를 거두면서 검각으로 몰리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강유는 종회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만, 군사적으로 강유만 못한 제갈첨은
등애에게 면죽관에서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유선은 여전히 원군을 보내주지 않고 "알아서 잘 막겠거니" 하고
방관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등애의 군대는 숫자가 그렇게 많을 수도 있는 군대는 아니었습니다.
아주 험준한 산 음평, 무도를 넘어가는 동안에 유선이 군대와 적절한 장수들을 보내주었더라면
제갈첨과 함께 등애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전략적으로 뛰어난 등애는 제갈첨과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제갈첨의 패배후 등애가 진격해오자 유선은 싸움 한번 안하고 항복해버리고 맙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행동이 촉의 백성들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선이 얼마나 군주로써의 자긍심이 없는지도 보여주는 바입니다.
이렇듯 유선은 군주가 되고나서 딱히 정치에 대해 나라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지 못한채,
그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지켜보던 아둔한 군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강유가 촉을 망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몇 주전에도 유투브에서 이 점과 관련해서 토론을 펼친적이 있씁니다.
개인적으로 그 때는 강유에 초점을 맞춰보느라 성공적인 토론이 되지는 못했지만,
만약 유선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더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강유가 촉의 멸망을 초래하는데 지나친 북벌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군주라면 그런 강유를 통제하고 동시에 강유의 치명점을 파악한뒤,
그 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과 강유를 맞춰주었어야 했습니다.
비위와 장완같은 사람 말이지요.

하지만 유선은 그런 인재를 구할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신하들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는데도 원군을 어디다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조언을 구하면서 나라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저 주색에 빠져 즐기는 일에만 급급했습니다.
이러니 강유가 통제가 되지 않았던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결과적으로 촉의 멸망은 강유의 잘못이 아닌 유선의 잘못입니다.
유선이 유비의 반만 닮았더라면 강유가 저렇게 통제불능이 되지도 않았을것이며,
환관 황호에 놀아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촉의 인재는 더 많이 늘어나 촉의 수명이 길었을겁니다.

하지만 군주의 본분을 잊고 인사를 등한히 한점, 황관의 정치에 놀아난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번의 지지를 하지 않고 주색에 빠진점은 왜 유선이 군주로써의
자격이 없는지 잘 보여주는 바이고 그렇기에 촉한의 멸망의 잘못은
유선에게 있다는 점을 생각해봅니다.  

이 점을 생각해볼 때 강유에 대한 오해가 더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수와 손성은 강유를 비평하고 비난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관점은 위나라를 진의 전시로 보았고,
사마소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강유이기에 강유에 평가에 더 절박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촉의 멸망은 결과적으로 강유가 아니라 유선때문이라는 생각이 크며,
왜 강유는 촉의 멸망과 관련해서 그 온갖 비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선은 동시에
오히려 "현명한 군주였다"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상대적으로 덜 비판을 받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하네요.
혹시나 이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분 있으면 얼마든지 댓글토론 하실수 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럭키스타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첫댓글이라 뭔가 무거운 감상평을 쓰고싶지만....
    중간에 '황호가 죽기 시작하면서'를 '동윤이 죽기 시작하면서'로만 바꿔주세요. ^^;
    연예전문 블로거님의 삼국지평역 재밌었습니다. 삼국지 좋아하는 사람은 연예인도 좋아하는... 비슷한 취향인가봐요. 개인적으로 장료에 대해서 재조명 부탁드립니다.

    2013.02.25 00:21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긴 감상편 좋아합니다.
      전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과 토론하는거 좋아해요.
      괜찮으시다면 많이 들러주세요 ㅎ

      장료는 최근에 가장 좋아진 장수들 중에 하나입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나기에 다행히 나관중이 그렇게 많이 저평가 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많이 깎아내려졌죠? ㅎ
      장료에 대해서도 적어볼께요 ㅎ

      2013.02.25 09:07 신고
  2. 에바흐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명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동윤과 비의가 주목하고, 차
    세대 승상으로 유력했던 진지가 황호랑 결탁해버렸다는 것...

    2013.02.25 01:45 신고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그 유명한 제갈승상의 아들인 제갈첨까지 황호와 친했다는
      아쉬운 점이 있죠.
      어쨋든 황호가 가장 나쁜 놈이지요

      2013.02.25 09:08 신고
  3. widow7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안되는 촉의 국력 갖고 유비의 유지를 받듭네 하고 북벌한 제갈량은 퍽도 군사적 재능이 넘쳤네요. 제갈량은 군사적 재능이 그닥 없었습니다. 내정이나 열심히 했으면 족한 인물입니다. 촉에서 북벌한 자 중에 누가 땅 한 마지기라도 얻었나요? 제갈량은 자기가 일군 나라를 북벌로 도로묵시킨 인물입니다. 촉은 북벌만 안했어도 100여년은 갔을 겁니다. 이명박은 집권한지 얼마 안되어 검역주권을 타국에 넘긴 탓에 전국적 반발을 샀습니다. 유선때 민간봉기 있었습니까? 연산군처럼 왕노릇하다 부하들한테 폐위당한 것도 아닙니다. 유선은 유능하지 않았지만 무능의 대명사가 될 이유도 없고 바보도 아니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인간도 아닙니다. 평범한 왕으로 평범한 재주를 발휘했을뿐입니다. 촉한이 망한 첫째 원인은 중원으로 도약할 발판인 형주를 잃은 관우이고 둘째 원인은 되도않는 북벌로 나라 국력을 갉아먹은 제갈량입니다. 이 두 놈이 촉한의 원흉이고 그밖의 인간들은 관우와 제갈량을 숭배해 그짓 따라하다 더 갉아먹은 인간들입니다.

    2013.02.25 05:35
    • 에바흐  수정/삭제

      제갈량은 군사적으로 천재 중에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입장이 완전히 달랐죠. 촉의 전체 군사력이 합쳐서
      10만에 불과했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그런 10만 병력을
      15만에 가깝게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제갈량의 남중 정벌과
      천재적인 정치 능력으로 나라 살림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15만 병력 가운데 5만에서 10만 사이를 이끌고 북벌에 나섰습니다.

      무슨 의미냐면, 단 한 번이라도 아주 약간의 패배라도 있었다간
      촉나라는 바로 멸망합니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난공불락의 진창 공략 이외에 야전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는 괴력을 보입니다. 결국, 사마의는
      제갈량과 정면 대결을 절대 하지 않게 되었죠. 나중에 가면
      아예 촉나라 군사가 위나라 땅에서 둔전을 행했음에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의 북벌은 촉나라보다 5배에 가까운 국력과
      군사력을 갖춘 위나라가 방어에 치중하게 할 정도로 대단했고,
      제갈량은 야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괴물이었던 겁니다.

      만약, 그에게 약간의 여유만 더 있었더라면 충분히 천하를
      통일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촉나라의 국력을 깎아 먹었다고
      하셨는데, 기록을 보면 정반대입니다. 제갈량은 수차례 전쟁을
      벌이면서도 국정을 완벽하게 행했고, 그의 정치력 덕분에 촉나라는
      '천하의 곳간' 이란 평가를 얻었습니다. 오히려 나라가 부강했던 거지요.

      제갈량이 남긴 유산은 아주 긴 시간 유지되어 촉나라의 근간이 되었어요.

      2013.02.25 09:30 신고
    •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2013.02.25 09:33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이봐요.... 제대로 알고나 이야기하는겁니까?
      군사적 재능이 별로 없다구요...?
      병력딸려 재원딸려.. 인재부족해 군주는 멍청해...
      이런 상황에서 5차례 북벌에서 그정도 선전했으면 잘 한겁니다.
      땅을 한마지기도 못었었다... 다시 공부하세요.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제갈량의 북벌에서 제갈량은 무도 음평 지역을
      얻었고 또한 제갈량의 북벌때 그리 손해도 많이 나지 않았습니다.
      북벌을 안해도 100년은 갔다라....

      제갈량, 장완, 비위, 그리고 동윤이 살아있었다면 100년 갔었겠죠.
      어리석은 군주의 유선의 마인드와 인재발굴의 실패가지고는 100년이
      아니라 50년도 못갔을 겝니다.

      그리고 북벌만 놓고 봐도 제갈량 스스로가 그렇게 심하게
      패배한적은 없습니다.
      첫번째는 마속의 실수로 날려버렸고, 네번째 전쟁에서는 상당히 우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엄의 거짓말에 의해서 강제퇴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갈량이 병사하게 된 원인은 혼자서 다
      집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위나라는 인재가 넘쳐났는데 촉나라는 인재가 부족하기 짝이 없었지요.
      평범한 왕...? 환관에 놀아난 왕이 평범한 왕이라구요?

      관우의 죽음이 촉의 멸망을 자초한 건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유비가 대군을 일으키다가 패배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나라가 배반을 한것도 관우의 잘못이라고 봐야하나요?
      오나라의 배신이 없었다면 아예 형주를 잃지도 않았겠죠.

      관우와 제갈량의 촉의 원흉이라.....
      관우와 제갈량이 없었다면 촉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대체 뭘 읽고 어떤 조사를 하고 오셨는지 알수가 없군요

      2013.02.25 11:25 신고
    • SJ  수정/삭제

      제갈량이 군사적인 재능이 없다는 말은 처음 듣는군요.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제갈량은 내정보다는 군정에 더 재능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물론 내정도 잘 수행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내정을 총괄하는 승상보다는 군정을 맡는 참모, 군사로서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평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래전에 본거라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군요. 집에서 책 찾아보고 찾을 수 있으면 추가하겠습니다)

      그리고 북벌은 단지 선왕의 유지를 받드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적어주셨듯이 북벌을 통한 실질적 이득도 있었거니와 제한된 전쟁을 통해서 위나라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촉이 전쟁을 하지 않고 국력을 키운다면, 그동안 위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강대해질 것이고 그 힘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졌을 것입니다. (물론 위나라가 거듭된 실정으로 국력을 알아서 크게 깎아먹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마냥 기다리기 보다는 어느 정도 힘을 키운후에 위나라와 국지전을 벌임으로써 위의 군사력을 소모케 하고 군사력을 복구하기 위해 위의 국력을 소모케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북벌을 통한 선제 공격으로 한중을 치는 것을 견제할 수도 있겠죠. 만약 그냥 기다리다가 위나라가 먼저 쳐들어 온다면 최종적으로는 위군을 물리친다 하더라도 그동안 위나라에 점령된 지역에 대한 지배권 상실은 국력이 약한 촉에게는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농경이 기반이던 당시에 영토를 빼았긴다는 것은 국가 경제력에 직접적인 타격이 됩니다. 비록 일시적인 상실일지라도 수확기를 놓친다거나 적군이 퇴각하면서 농작물을 훼손한다면 일년치 세수가 사라지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제갈량의 북벌은 촉의 수명을 그만큼 연장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2013.03.06 22:35
    • 위도우돌대가리  수정/삭제

      돌대가리야 제갈량북벌하면서도 촉의경제는더좋아졌다.ㅋㅋㅋ기르기위한..주도적인북벌였어 ㅋㅋ

      2015.06.23 23:32
  4. 해피선샤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2013.02.26 00:39 신고
  5. 어리버리선생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황충에 대해 포스팅좀 해주세요.ㅠ.ㅠ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얻어갑니다.

    2013.02.26 04:54 신고
  6. kellsen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 유선에 대해 좀더 많이 알 수 있게 하는 글이네요. 촉한의 멸망과 유선 그리고 환관 오늘날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2013.02.26 09:51 신고
  7. 개념붕괴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혹여나 잊으셨을...수도..ㅠ ㅎㅎ

    그동안 일이 바빠서 들리지 못 했습니다.

    오랜만에 들려보니 수북이 쌓인 좋은 글들을 비롯해 이렇게 삼국지 코너까지 생기고..!
    체리님의 성실함이 돋보입니다!
    삼국지는 저도 오랫동안(이라고 표현하지만 아직 어린놈인데..ㅋ;;)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데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확실히 촉한 후기의 대표적 인물들로 꼽히는 강유와 유선인데..평가가 항상 강유만 욕을 먹는게 좀 안타까웠던지라... 유선에 대한 비평,잘 읽었고요~ 다음 포스팅 역시 기대하겠습니다!

    2013.02.27 11:47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절대 잊지 않았지요! 제가 어찌 님을 ㅎㅎ
      사실 요즘 한참 바빠져서 연예계 글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구요.... ㅎ
      다시 자주 들려주세요 ㅎ

      2013.02.28 10:32 신고
  8. 탈탈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선이 무능했던 건 저도 인정합니다. 난세는 커녕 평화기에도 모자란 군주감인 것은 맞지요.그런데 제갈량의 책임도 분명 있습니다. 제갈량은 유선을 보좌하면서 사실상 승상부 독재체제로 만들어 본의 아니게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어버렸고 유선이 제대로 된 황제 노릇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 큰 실책입니다. 허수아비라도 황제는 황제인데 아직 그릇이 아니라면 제갈량이 유선을 잘 가르쳐서 자기 사후에도 좋은 왕이 될 수 있게 했어야 하는데 북벌과 정치에만 신경써서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왕을 신경쓰질 못한 것이 문제였고 그것이 제갈량 사후 유선의 황음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하다 못해 신하를 쓰는 법이라도 가르쳐놨어야 했는데 제갈량 자신도 사람 보는눈이 꽝이니 뭐 말 다했지요.(유비가 말린 마속을 중용하고 그 결과는 대 참패) 제갈량 사후 유선이 40년가까이 통치하면서도 민란 하나 없던 것은 그만큼 제갈량이 스스로 유선의 신하를 자처하며 통치했기에 그 여파가 꽤 오래 간 것이라 생각됩니다.(자신의 위엄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유선의 이름으로 하였으니, 북벌도 꼭 황제 동의를 얻지 않으면 안 나갔지요.) 제갈량 사후에도 보좌진을 잘 만들어 유선의 모자람을 메우려 했지만 왕국에서 왕 자체가 그 보좌를 받아주질 못하니 별 수 없는것이지요.
    그리고 윗 댓글의 widow7님의 의견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북벌로 인해 촉나라가 피폐해졌고 백성들을 고생시킨 건 사실이니깐요.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결국 위나라에게 먹힐 것이고(국력차이가 상당하니) 스스로 한나라 유지를 받드는 것이 명분이니 북벌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북한이 적화통일에 목숨 걸지 않을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widow7님의 의견 중 관우의 실책에 대해서는 저도 100%동의합니다. 형주는 분명 요충지이고 한중과 더불어 촉에서 중원으로 나아갈 중요한 관문인데 손권과 친하라고 제갈량이 그렇게 일렀건만 손권의 속을 박박 긁다가 반유비파인 여몽에 의해 형주를 빼앗기고 가장 무모하고 어리석은 전쟁인 이릉대전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이 되니 관우의 실책도 장난 아니지요.
    분명 유선은 유능한 군주는 아닙니다. 하지만 촉나라의 멸망을 너무 군주 한 사람에게만 돌리는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촉나라에 내재된 문제가 곪아 터지고 그로 인해 외부 침략을 막을 힘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렇다고 해서 유선에게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닙니다. 그도 책임은 있지요)

    2013.02.28 02:42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흠... 님 말씀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제갈량이 너무 독재체제로 만들었다는데는 조금 의견이 다릅니다.
      조조와 헌제와 관계와는 달리 유선은 충분히 인사진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갈량을 견제하는 세력도 내부적으로 존재했으니 제갈량이
      무조건 다 촉을 장악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유선의 주위에는 이엄, 비위 (비위, 장완은 북벌에 잘 동참하지 않음), 곽유지, 동윤, 그리고 초주 등의 신하들이 있었기에 원하기만 했다면
      잘 해내갔을 수도 있겠지요.
      게다가 유비 자체도 자기 사후에 제갈량의 독재를 은근히 견제해서 군권은 조운에게 그리고 이엄에게도 큰 권위를 주기도 했지요.

      촉의 멸망 자체를 유선하나로만 돌리기는 솔직히 조금 억울한 부면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강유가 연속 8차례에 걸쳐 한 북벌을 생각하면요.
      하지만 군주로써 강유가 연속 그리 했다면 (제갈량과 강유는 또 다르죠)
      적절히 제지하고 그를 보좌할 인재를 구해야 했는데 주색으로 시간을 낭비했으니 결과적인 책임은 그에게 있다는 것을 무시할수는 없겠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2013.02.28 10:37 신고
  9. 시타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비가 세운 촉나라는 크게 세가지 부류의 인물들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익주지역에 거주했었던 인물들. 그리고 유언과 함께 익주로 들어왔던 인물들.

    마지막으로 유비와 함께 익주로 들어온 소위 형주 세력들입니다.

    이 세 부류의 인물들은 유비가 있을때는 유비의 카리스마 아래에서 하나로 뭉쳐져 있었지만,

    유비가 촉나라를 건국한 이후로 오래지 않아서 사망하였기에,

    유비 사후에는 그 세 부류의 그룹이 하나로 잘 융합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유비의 뒤를 이은 유선은 그 그룹을 하나로 묶을 만큼의 능력도, 카리스마도 없는 인물이였기에,

    제갈량이 전면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라가 하나되지 못했을때 그 나라를 하나로 묶기 위한 방법중 가장 강력한것이

    다른 나라와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제갈량은 그렇게도 열심히 북벌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죠.

    물론 유비의 뜻을 이어받아 삼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제갈량이 과연 자기 대에서 삼국을 통일할 수 있을꺼라 생각해서 그렇게 북벌을 밀어붙였느냐고 하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이들을 하나로 묶는게 목표가 아니였을까요?

    하지만 제갈량 또한 형주에서 들어온 그룹이고, 다른 그룹들은 형주에서 온 그룹들보다 아래 서열에

    속해있는 현실이였기 때문에, 제갈량에 대해서 마냥 좋게만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갈량의 북벌은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빈틈없이 진행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갈량은 형주 그룹의 대표였고, 제갈량이 실패한다는건 형주 그룹이 흔틀릴 수 있는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북벌이고 자시고, 나라가 쪼개 질 수 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마속에 의해 북벌이 실패했을때, 제갈량은 자신의 작위를 낮춰야 했습니다.

    다른 그룹이 들고 일어나기 전에 선수를 친거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제갈량의 운명을 강유가 이어받습니다.... 강유는 제갈량보다 전략적인 면모에서 떨어지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오나라는 합비전투에서 장료에게 완전히 발린다음부터 점점 북벌에 소극적이게 됩니다.

    젊은날의 총기를 잃어버리고 말년에 맛이 가버린 손권에게 삼국통일은 별 관심없는 주제였습니다.

    그리고 오나라는 촉나라 보다도 더욱 더 중앙집권이 되지 못한 나라였습니다.

    강동 귀족들을 손가의 이름으로 억지로 묶어놓고 있었을 뿐이지요.

    합비전투에서 그렇게 처참히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손권이 맛이간 오나라는 개판 오분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갈량이 생각한 북벌은 오와의 양동작전이지 촉나라의 단독 공격이 아니였죠.

    따라서 북벌을 통해 성과를 내어서 국가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어 보려고 했던 제갈량의 생각은,

    성과없는 북벌에 의해 나라가 피폐해 지는 역효과만 불러 일으켰습니다.

    목적은 정확하고 바람직했지만, 결과는 안좋게 된것이지요.

    그렇다고 북벌을 해선 안되는거였다고 말하는것은

    촉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듯이, 유선은 성도에서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죠.

    유선은 무능했지만, 다른 신하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그런 인물은 아니였습니다.

    잘 보필할 수 있는 능력있는 신하가 있었다면, 유선은 알아서 잘 따라올 그런 인물이였습니다.

    물론 황제가 신하가 하는데로 따라가는 상황 자체로도 유선이 무능함을 드러내긴 합니다만...

    결국 촉나라에는 인재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장완, 비의(비위가 아니라 비의 입니다), 동윤을 끝으로

    능력있는 인재의 대가 끊긴거지요. 그에 반해 위나라에는 인재가 넘쳐흐르고 있었고...

    따라서 아마 유선이 그때 항복하지 않았어도 촉나라가 더이상 유지되기는 힘들었을거라고 봅니다.

    부족한 인재, 동맹을 맺어야 하는데 맛이 가버린 오나라, 그만 둘 수도 없는 북벌...


    촉의 멸망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뭐합니다.

    유선은 정치적 눈이 없는 순해빠진 바보였고, 강유는 제갈량만큼의 능력이 없는 장수였습니다.

    그리고 촉나라에는 인재가 너무 부족했고, 이미 오랜 북벌로 백성은 힘든 상태였습니다.

    제갈량이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해서 야심차게 실행했던 2번의 출사가 실패한 그때

    촉의 국운은 끝난거나 다름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13.03.03 07:45
    • 체리블로거  수정/삭제

      솔직히 유선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일단 한 나라의 주인은 군주라고 보기에 결과적인 책임이 군주에게 있다고 적은것입니다 ㅎ

      일단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촉의 가장 큰 실패 원인 인재발굴이었고,
      두 번째는 아무것도 안한 유선의 무능함, 세번째는 그런 촉의 상황에도 지겹도록 북벌을 계시하기로 한 강유의 고집이었겠죠.

      비위에 관해서는 그냥 삼국지 표기를 적었습니다 ㅎㅎ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ㅎ

      2013.03.03 09:31 신고
  10. 메트로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필요없슴다 당시 위나라 땅넓이나 가옥수 그리고 지형 정통성 어느것을 봤을때 누가 맡아도 촉은 망했을겁니다

    2013.03.29 19:16
  11. gggggg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갈량 은 내정에 관련된 능력이 뛰어났고 실질적으로는 봉추 방통이 군사적으로는 대단했다고 왠만한 학자들은 아는 사실인데 말이죠.....

    2013.04.07 09:15
    • ㅅㅅㅅㅅ  수정/삭제

      맞아요
      다들 연의 이야기 하시는듯...
      정사에서는 군사적 재능도 제갈량보단 유비가 뛰어났다는 말이 있고 제갈량은 내정은 잘했지만 그리 뛰어난 군략가는 아니었다고 하네요..
      유비 생전에 제갈량과 함께 승리한 전투도 대부분 유비의 전략이었습니다
      제갈량은 뻥튀기가 심한것이 소설 삼국지연의입니다

      2013.06.29 23:37
  12. 뒷북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좋은글을 이제야 봤네요
    제갈량은 단연 삼국지 최고의 영웅입니다만 몇살어린 사마의보다 일찍 세상을떠났죠
    창과 방패의 싸움은 사파에 가까운 사마의가 결국 제갈량을 막았고 장수하고 자식농사도 잘한거 같습니다

    한 두가지 능력이 출중한가가 중요한게 아니며 영웅놀이가 아닌 삼국지의 교훈은 균형이라 봅니다

    자존심강한 관우의 아집이 남긴교훈도 작지않고 유비마저 수많은 군사들을 사지로 내모는 바보짓을 합니다 오히려 위를 쳤으면 오가 미안헤서 라도 같이 손잡고 위를 망하게 했을듯한데 무릇 높은자리에 있을수록 크게 봐야하는데 감정은 사람을 바보로 만듭니다

    2014.08.05 15:00
  13. 지금이라도 검색해 들어오시는 분들께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정사 쪽보단 연의를 기반으로 이야기 하시고 계신것 같은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0947
    이 글을 참고하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사, 각 인물전들을 참고하여 정리해놓은 자료입니다.)
    물론 역사는 직접 보지 않는한 확신 할 수 없고 개인의 의사가 들어갈 수 밖에는 없지만
    다른 생각을 비판만 하기보단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7.08.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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